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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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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3.22 조회2,94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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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력술을 배우지 말지어다. 기차와 윤선으로 百만 근을 운반하고 축지술을 배우지 말라 운거(雲車)를 타고 바람을 제어하여 만 리 길을 경각에 왕래하리라. (예시 75절)

 

붓다의 한 일화이다. 붓다와 제자들이 강을 건너고자 뱃사공을 기다리던 어느 날이었다. 기다리는 시간이 아쉬워 제자들과 주위 사람들은 붓다에게 설법을 청했다. 강가에는 어느덧 향기로운 진리의 말씀이 연꽃으로 피어올랐다. 그런데 그때 한 요가 수행자가 기적을 행하듯 거만하게 물 위를 걸어 붓다 앞에 섰다. 그리고는 붓다에게 자신과 여기 모인 사람들 앞에서 이런 신통력을 부릴 수 있는지 물었다. 요가 수행자는 성자로 추앙받는 붓다를 보란 듯이 능가할 것이라는 기대에 잔뜩 부풀었다. 이에 붓다는 차분히 반문했다. “그 전에 한 가지 물어 볼 것이 있소. 이 강을 건너는 뱃삯이 얼마요?” 뜻밖의 물음에 의아해하면서 그는 “동전 몇 푼이면 충분하지 않겠소?”라고 했다. 그러자 붓다는 이렇게 전했다. “그것이 바로 그대가 행한 신통력의 가치인 것이오.”01

기적(奇跡)과 같은 초자연적인 힘은 종교인과 수도인에게 빼놓을 수 없는 신앙적이며 수행적인 관심의 하나이다. 그것은 때로 신앙을 지속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신앙의 대상에 대한 증거가 되기도 한다. 현실을 초월하는 힘 그것은 분명 힘겨운 현실 가운데 놓인 인간에게는 한 줄기 빛과 같은 희망일 수 있기 때문이다.

붓다와 요가 수행자의 이야기는 그런 면에서 기적의 진정한 의미와 수행의 올바른 방향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게 한다. 붓다의 설법을 듣던 이들이 물 위를 걷는 요가 수행자의 기행이적을 보며 느꼈을 놀라움은 누구에게나 비슷할 것이다. 물 위를 걷는다는 것은 분명 그 누구의 넋이라도 잃게 할 만큼 신기하고 놀라운 능력이다. 그렇지만 붓다는 그것을 동전 단 몇 푼의 가치에 불과하다고 설했으며 그 현상에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붓다의 말씀과 태도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을까?

『전경』을 보면 상제님께서 축지술과 용력술을 배우지 말라고 하셨고 영학에게는 도술을 배우기보다는 『대학(大學)』 읽기를 권하신 부분이 있다. 이 말씀 속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축지술과 용력술을 기차와 운거(雲車)가 대신한다는 말씀은 인간이 육체의 한계를 초월한 비범한 능력을 지니더라도 그것은 한낱 기계가 대신해도 될 하나의 기능에 불과하다는 말씀일 것이다. 또한 영학에게도 도술보다는 『대학』을 권하신 이유가 도술을 얻기보다 『대학』을 통해 올바른 사람됨을 갖기를 바라신 뜻일 것이다. 이것은 독일 철학자 칸트(1724~1804)가 도덕적 분별력과 실천의 의지를 인간의 다른 능력보다 특히 중요하게 여긴 것을 통해서도 이해해 볼 수 있다.

어쩌면 기행이적을 쫓는 인간의 마음속에는 특별한 권능으로 세속의 부귀영화를 차지하고자 하는 궁극적인 욕망이 숨어 있을는지도 모른다. 또한 그 힘을 가진 자를 추종하는 이들도 동일한 목적을 가진 이들일 것이다. 이것은 신앙 속에서 수행하는 이라면 그 누구라도 고민하고 반성해야 할 중요한 문제이다. 모두가 수행 과정에 있고 아직까지는 완성에 이르지 못한 상태이므로 늘 그러한 욕망의 소용돌이를 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종교는 신령한 힘 내지는 기행이적의 현상이 실재함을 인정한다. 그중에서 올바른 신념을 가진 종교는 그 힘을 영적 성숙의 결과로 보지 않고 영혼의 자유와 깨달음이라는 종교적 취지에 대해 부수적인 것으로 본다. 그래서 기행이적의 능력을 궁극적인 수행의 대상으로 삼지 않으며, 만약 그런 힘이 주어진다면 겸손한 마음으로 만물이 잘 되게 하는 데 그 힘을 써야 한다고 여길 뿐이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기적이라 부를 만한 일들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그것을 예로 들자면 아마도, 화기(和氣)를 잃고 어둡던 가정에 환한 웃음꽃이 피어나는 일, 불효하던 자녀가 깊이 뉘우쳐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 서로 싸우던 나라와 민족 사이에 화해와 상생의 온기가 깃드는 것 등등 말로만으로도 따뜻한 그 일들이 진실로 기적이라는 말에 어울릴 만한 아름다운 일들이 아닐까 한다.

기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특별하고 이색적인 것도 아니다. 그것은 늘 우리 상식과 일상의 한편에서 피어나는 참된 삶과 수행의 기쁨인 것이다. 그것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남을 잘 되게 하라는 훈회ㆍ수칙이 전하는 진리에 의한 소박한 삶의 아름다움이다. 욕망과 허욕이라는 짙고 화려한 색채와 맛에 길들여진 이들은 느낄 수 없는 그러한 기쁨이다. 그 기쁨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밝은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으로 바른 수도의 길을 밝힐 것이요, 삿된 욕망의 화려한 색채에 현혹되는 일 또한 없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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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순회보 112호>

 

--주--

 

01 로저 월시, 『7가지 행복명상법』, 김영사,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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