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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원상생(解冤相生)의 시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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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3.22 조회3,3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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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께서 七월에 “예로부터 쌓인 원을 풀고 원에 인해서 생긴 모든 불상사를 없애고 영원한 평화를 이룩하는 공사를 행하리라. 머리를 긁으면 몸이 움직이는 것과 같이 인류 기록의 시작이고 원(冤)의 역사의 첫 장인 요(堯)의 아들 단주(丹朱)의 원을 풀면 그로부터 수천 년 쌓인 원의 마디와 고가 풀리리라. 단주가 불초하다 하여 요가 순(舜)에게 두 딸을 주고 천하를 전하니 단주는 원을 품고 마침내 순을 창오(蒼梧)에서 붕(崩)케 하고 두 왕비를 소상강(瀟湘江)에 빠져 죽게 하였도다. 이로부터 원의 뿌리가 세상에 박히고 세대의 추이에 따라 원의 종자가 퍼지고 퍼져서 이제는 천지에 가득 차서 인간이 파멸하게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인간을 파멸에서 건지려면 해원공사를 행하여야 되느니라”고 하셨도다.(공사 3장 4절)
 
 
  선천에서는 상극(相克)이 인간과 사물을 지배하고 수천 년 동안 쌓인 원(冤)이 극에 달해 인류와 신명계가 진멸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자 원시의 모든 신성·불·보살들이 회집하여 구천(九天)에 계시던 상제님(上帝任)께 이러한 참상을 호소하며 천지를 바로잡아 달라고 청원하였습니다. 이에 천하를 대순(大巡)하시며 천지인 삼계를 둘러보신 상제님께서는 1871[辛未]년 9월 19일에 전라도 고부군 우덕면 객망리(客望里: 현 전북 정읍시 덕천면 신월리 신송마을) 강씨가(姜氏家)에 인신(人身)으로 강세(降世)하셨습니다.
  상제님께서는 삼계가 개벽(開闢)되지 않고 참혹한 재화(災禍)가 생겨난 것은 선천에서 상극이 인간지사를 지배하고 모든 인사(人事)가 도의에 어긋나서 원한이 쌓여 천지인(天地人) 삼계가 서로 통하지 못하게 된 데에 그 원인이 있다고 진단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삼계 대권을 주재하시는 권능을 가지신 상제님께서는 1901[辛丑]년부터 1909[己酉]년에 화천하실 때까지 선천의 모든 겁액과 재앙을 해소하고 영원한 평화를 이룩하시기 위해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행하셨습니다.
  상제님께서는 명부공사를 필두로 지기통일공사, 해원공사, 정음정양공사, 개벽공사 등 다양한 천지공사를 행하셨습니다. 이러한 공사들은 해원(解冤)을 위주로 하여 보은(報恩)으로 종결하신 것이기 때문에 그 중심축을 이루는 내용 또한 해원공사(解冤公事)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의 『전경』 구절에서 보듯이, 상제님께서는 해원공사의 시발점을 초통 초회의 성군(聖君)인 요[堯: 제요도당씨(帝堯陶唐氏)]의 아들 ‘단주(丹朱)의 원(冤)’으로 잡으시고, 이것을 풂으로써 수천 년 동안 쌓인 모든 원의 마디와 고01가 풀어지도록 하셨습니다.
Daesoon_145_대원종3.jpg  그렇다면 단주가 품었던 ‘원’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상제님께서 “단주가 불초하다 하여 요가 순에게 두 딸을 주고 천하를 전하니…”라고 하신 대목을 통해서 그 의미를 고찰해 볼 수 있습니다. 역사상의 실존 인물인 단주는 기원전 24세기경에 임금이었던 요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요는 성이 이기(伊嗜)이고 이름은 방훈(放勛)이며, 도당씨(陶唐氏) 혹은 이기씨(伊祁氏)라고도 불렀습니다. 그는 중국 고대의 성왕(聖王)인 오제(五帝)02 가운데 한 사람인 제곡(帝嚳)의 아들로서, 순임금과 더불어 유교(儒敎) 사회에서 가장 이상적인 정치를 펼쳤다고 믿어지는 성군입니다. 요임금은 하늘처럼 어질고 신처럼 지혜로웠기 때문에 백성이 태양처럼 그를 의지하며 우러러보았습니다. 그가 큰 덕(德)으로 선정(善政)을 베푸니 백성이 화목하고 백관은 공명정대하였으며, 모든 제후국이 화합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태평성대에 성장한 단주는 자신도 아버지인 요임금처럼 제위(帝位)에 올라 천하를 다스리고자 하는 이상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임금은 단주의 기대와는 달리 자신의 제위를 천하를 다스릴 만한 덕과 능력을 지닌 사람에게 선양(禪讓: 임금의 자리를 물려줌)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만년에 신하들에게 자신의 후임으로 누가 적합한지 물었을 때 방제(放齊)가 요의 아들인 단주가 사리에 통달하고 명석하다며 천거했지만, 요임금은 그가 불초(不肖)03하다 하여 일언지하에 거절하였습니다. 다시 적합한 인물을 두루 찾으니 많은 신하가 순(舜)을 천거하므로, 요임금은 그에게 두 딸인 아황(娥皇)과 여영(女英)을 시집보내어 그의 덕행을 관찰함으로써 순의 인물됨을 시험해 보았습니다.04 그리고 그를 등용하여 20년간 자신을 보좌케 하고 다시 8년간 자신을 대신하여 정사(政事)를 보게 했습니다. 이러한 모든 시험을 통과한 순은 요의 신임을 얻었지만 요가 승하하자 삼년상을 마친 뒤 제위를 단주에게 양위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민심과 천명이 자신에게 있음을 확인하고 마침내 61세에 천자(天子)의 자리에 올라 39년 동안 천하를 다스렸습니다.
  전국시대 위(魏)나라의 역사서인 『죽서기년(竹書紀年)』05에 의하면, 순이 제위에 오르자 단주는 하남성(河南省) 서남쪽의 단강(丹江) 일대인 단수(丹水)로 유배되었다고 합니다. 이를 계기로 본래 ‘주(朱)’였던 그의 이름도 ‘단주(丹朱)’로 바뀌었습니다. 단수 일대에는 중앙정부와 갈등을 빚어오던 삼묘족(三苗族)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단주는 그들과 연합하여 자신이 추구하는 새로운 세상을 이룩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순임금이 군대를 파견해 단수 기슭에서 그들을 진압하자, 크게 낙담한 단주는 결국 스스로 물에 빠져 목숨을 끊고 말았다고 합니다.06 이처럼 단주는 천자가 되어 새로운 세상을 펼치고자  하는 원대한 꿈이 있었지만 선친인 요임금이 순에게 제위를 선양함으로써 그것이 좌절되었습니다. 유배되고 나서 다시 한번 대사를 도모했지만 이것 또한 실패로 끝나자 자결할 만큼 답답하고 원통한 마음을 지녔던 것으로 보입니다. 상제님께서는 이렇게 형성된 단주의 원(冤)이 마침내 순을 창오의 들(蒼悟之野: 현재의 광서성 창호현 동남쪽)에서 세상을 떠나게 하였고 두 왕비를 소상강(瀟湘江)07에 빠져 죽게 했다고 하셨습니다.
Daesoon_145_대원종4.jpg  당시의 상황을 보면, 순임금은 만년에 두 왕비와 함께 남쪽 지방으로 순행을 나갔습니다. 그들이 남방지역의 상수(湘水)에 이르렀을 때 왕비들은 그곳의 아름다운 경치에 도취하여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순은 차마 떠나자고 말할 수가 없어서 자신이 먼저 출발하고 나중에 사람을 보내어 그들을 맞이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순이 창오에서 갑작스러운 발병으로 사망함에 따라 구의산(九疑山) 아래에 묻히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아황과 여영은 너무도 돌연한 순의 죽음에 비통해하면서 상수의 푸른 대나무를 붙잡고 대성통곡을 하였습니다. 한동안 넋을 잃은 채 구의산 쪽을 향해 눈물만 흘리던 두 왕비는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 강물에 몸을 던지고 말았습니다. 그 후 상수 주변의 대나무들은 두 여인이 뿌린 눈물에 젖어 얼룩진 반점을 남겼습니다. 후세 사람들은 두 왕비를 기념하기 위해 상수 부근에서 나는 얼룩진 대나무를 상비죽(湘妃竹) 혹은 소상반죽(瀟湘斑竹)이라 불렀습니다.08 이처럼 단주가 품었던 원(冤)은 그것이 씨앗이 되어 순과 두 왕비에게 새로운 원을 맺게 하였습니다. 그들 또한 자신들의 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풀고자 했는데, 이러한 악순환이 세대를 거치면서 반복됨에 따라 원의 종자가 온 세상에 퍼져 나갔습니다. 이 때문에 생긴 불상사가 점차 커져서 천지인 삼계가 진멸할 지경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Daesoon_145_대원종5.jpg  역사의 기록과는 달리 단주가 품었던 원은 단지 자신이 바랐던 제위를 빼앗긴 데서 오는 원통함만은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도 성군인 요임금처럼 태평성대를 열어 이상세계를 건설하고자 하는 큰 포부가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비록 『전경』에는 없지만 상제님의 행적과 언행에 관해 전해오는 내용을 살펴보면, 상제님께서 단주에 대해 『서경』이나 『사기』의 기록09과는 전혀 다른 평가를 하신 바가 있습니다. 즉 단주가 반만 년 동안 불초하다는 오명을 들어왔으나 실제로는 매우 총명하였고 사해(四海)의 이민족과도 화합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순조차 이루지 못한 진정한 대동세계를 구현해 천하가 한집안이 되게 하려고 했던 위대한 인물이라 평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단주가 원대한 이상을 품었던 훌륭한 인물이었다면 그것이 좌절되었을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불초하다는 불명예를 얻음으로써 발생한 원통함 또한 대단히 컸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상제님께서는 해원의 시대를 맞이하여 만고에 쌓인 원한을 풀고 영원한 평화를 이룩하는 공사를 행하시면서 인류 기록의 시작이고 원의 역사의 첫 장인 ‘단주의 원’을 풂으로써 수천 년 동안 쌓인 원의 마디와 고가 풀어지도록 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단주의 해원을 회문산 오선위기혈(五仙圍碁穴)에 붙여 조선의 국운을 돌리고 대운(大運)이 열리게 하셨으며, 후천선경을 열어가는 시기에 단주로 하여금 천명(天命)을 받게 하셨던 것입니다.10 Daesoon_145_대원종6(1).jpg구한말의 이인(異人) 이서구(李書九, 1754~1825)가 남긴 『채지가』에는 요임금이 자식인 단주에게 제위를 넘겨주는 대신 자신이 창안한 바둑판을 전하고 그 속에 담긴 이치를 가르치면서 후천의 운수을 기약하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데11 이것 또한 단주의 해원과 무관하지 않은 듯합니다.
  이와 같이 상제님께서는 ‘단주(丹朱)의 원(冤)’을 기점으로 선천 원들의 마디와 고가 순차적으로 풀어져 상극(相克)에서 상생(相生)의 세계가 펼쳐지도록 도수를 짜놓으셨습니다. 즉 선천 원의 시발점이었던 단주의 원은 상제님의 해원공사(解冤公事)에 의해 후천의 상생 세계를 열어나가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일찍이 도전님께서 “해원 없이 상생 없고 상생 없이 해원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도인은 상제님께서 대순(大巡)하신 진리가 해원상생을 종교적 법리로 지상선경을 건설하고 구제창생키 위한 것임을 명심하여, 해원상생의 윤리를 생활화할 수 있도록 지극한 정성과 노력을 다해야겠습니다.
 
 <대순회보 145호>

01  옷고름이나 노끈 따위의 매듭이 풀리지 않도록 한 가닥을 고리처럼 맨 것.
02 중국 고대의 전설에 나오는 다섯 명의 제왕. 『사기』에는 황제ㆍ전욱ㆍ제곡ㆍ요ㆍ순을 일컫고, 『제왕세기』에는 소호ㆍ전욱ㆍ제곡ㆍ요ㆍ순을 오제로 기록하고 있다.(사마천 저, 정범진 역, 『사기』 「오제본기」, 까치, 2001, p.7)
03 아버지를 닮지 않았다는 뜻으로, 못나고 어리석은 사람을 이르는 말.
04 요임금은 “내 그를 시험하리라. 그에게 딸을 주고, 두 딸들을 통하여 그의 행동을 살펴보리라.” 두 따님을 규(嬀)의 물굽이(순이 살고 있는 곳)로 내려 보내어 우씨네 며느리로 삼게 하시면서 요임금은 그들에게 “잘 공경하라.”고 말씀하셨다.(차상원 역, 『서경』 「요전」, 명문당, 1993, p.37)
05 전국시대(기원전 475~221) 위(魏)나라의 사관(史官)이 썼던 것으로, 중국 고대 초에서 하(夏)ㆍ은(殷)ㆍ주(周)를 거쳐 위(魏)의 양왕(襄王, 재위 기원전 334∼319) 때까지를 편년체로 기록한 역사서이다.
06 양산췬, 정자룽 저, 김봉술, 남홍화 역, 『중국을 말하다 1』, 신원문화사, 2008, pp.116~117 참조.
07 중국 호남성(湖南省) 동정호(洞庭湖) 남쪽의 소수(瀟水)와 상수(湘水)를 함께 부르는 말로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08 순의 나이 58살 때 요임금이 붕어하자, 61살에 요임금을 이어서 제위에 올랐다. 순임금은 제위를 이어받은 지 39년 만에 남쪽을 순수(巡狩)하다가 창오(蒼梧)의 들에서 붕어하였다.(사마천 저, 정범진 역, 『사기』「오제본기」, 까치, 2001, p.25)/ 순은 천하를 잘 다스리다가 지방을 순찰하는 도중에 창오에서 세상을 떠났다. 세상은 그의 호를 중화(重華)라 하였다. 두 비가 양자강과 상수 사이에서 세상을 떠나자 세간에서는 그들을 상군(湘君)이라 하였다.(유향 저, 이숙인 역, 『열녀전(烈女傳)』 「유우이비(有虞二妃)」, 예문서원, 1997, p.38 참조)
09 요임금 “누가 때를 따라 등용할 만하오?”라고 묻자, 방제가 “맏아드님이신 단주가 총명하십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요임금은 “아! 그는 말에 충성과 믿음이 없고 말다툼만 잘하는데 되겠소.”라고 하였다.(차상원 역, 『서경』, 명문당, 1993, pp.35~36)/ “요는 아들 단주가 불초해서 천하를 이어받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에 권력을 순에게 넘겨주기로 했다.”(사마천 저, 정범진 역, 『사기』 「오제본기」, 까치, 2001, p.18) 
10 상제께서 각 처에서 정기를 뽑는 공사를 행하셨도다. 강산 정기를 뽑아 합치시려고 부모산(父母山)의 정기부터 공사를 보셨도다. “부모산은 전주 모악산(母岳山)과 순창(淳昌) 회문산(回文山)이니라. 회문산에 二十四혈이 있고 그 중에 오선위기형(五仙圍碁形)이 있고 기변(碁變)은 당요(唐堯)가 창작하여 단주를 가르친 것이므로 단주의 해원은 오선위기로부터 대운이 열려 돌아날지니라. …”(공사 3장 6절)
  또 상제께서 장근으로 하여금 식혜 한 동이를 빚게 하고 이날 밤 초경에 식혜를 큰 그릇에 담아서 인경 밑에 놓으신 후에 “바둑의 시조 단주(丹朱)의 해원도수를 회문산(回文山) 오선위기혈(五仙圍碁穴)에 붙여 조선 국운을 돌리려 함이라. 다섯 신선 중 한 신선은 주인으로 수수방관할 뿐이오. 네 신선은 판을 놓고 서로 패를 지어 따먹으려 하므로 날짜가 늦어서 승부가 결정되지 못하여 지금 최 수운을 청하여서 증인으로 세우고 승부를 결정코자 함이니 …”(공사 2장 3절)
  약방을 설치하신 후 “원형이정 봉천지 도술약국 재전주동곡 생사판단(元亨利貞奉天地道術藥局 在全州銅谷生死判斷)”이란 글귀를 쓰셔서 불사르셨도다. 약장은 종삼 횡오 도합 十五간으로 하고 가운데에 큰 간이 둘 아래로 큰 간이 하나이니라. 상제께서는 그 위 十五간 중의 가운데 간에 “단주수명(丹朱受命)”이라 쓰고…(공사 2장 9절)
11 주인노인 거동보소 일장춘몽 깨어보니/ 상산사호 네노인은 저갈대로 다가고서/
바둑판과 바둑돌은 주인차지 되었구나/ 요지자는 단주로서 바둑판을 받을적에/
후천운수 열릴때에 해원시대 기다리라/ 정녕분부 이러하니 그이치를 뉘알소냐/
오만년지 운수로다 그아니 장할시구 (『채지가』 「초당의 봄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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