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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성소조와 십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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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3.22 조회3,2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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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예로부터 ‘길성 소조(吉星所照)’라 하여 길성을 구하러 다니나 길성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니라. 때는 해원시대이므로 덕을 닦고 사람을 올바르게 대우하라. 여기서 길성이 빛이 나니 이것이 곧 피난하는 길이니라.(교법 2장 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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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후기 민간에 유포되어 널리 유행하였던 『정감록』01 「양류결(楊柳訣)」에는 “그런즉 어느 땅에서 살아야 할 것인가⋅ 길성이 비치는 땅이라. 길성은 어느 별인가⋅ 길성은 이십팔수로다.(曰然則可居地, 何也. 吉星所照之地. 曰 吉星何星也 曰二十八宿也)”라고 하여, 길성 즉 28수(二十八宿)가 비춰주는 땅을 피난처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정감록』에는 이 피난처와 관련하여 열 군데의 명승지가 제시되어 있다. 이 지역을 십승지지(十勝之地)라고 하여 기근과 병화의 염려가 없는 안전한 땅이라고 하였다. 실제로 조선 후기와 일제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정감록』의 십승지지설을 믿고 그 지역으로 이주하였다.

  사람들이 십승지지설을 믿는 데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삶의 터전을 옮긴 것은 당시의 시대상과 관련이 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영남 지방을 제외하고는 성리학의 민중에 대한 통제력이 점점 약화되었다. 각지에서 민란이 발생하였으며 견고하였던 사회체제가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민중들은 자신들을 위안해 줄 새로운 사상과 희망을 갈구하였다. 이런 민중들의 심리에 편승하여 여러 예언서가 유행하였으며 그 중 『정감록』의 영향력이 가장 막강하였다. 민중들은 어지러운 현실에 적극 대처하기보다는 예언서를 믿었으며, 이것을 믿어서 목숨을 구하고 복을 얻고자 하였던 것이다.

  이런 시대상이 십승지지설의 유행을 부채질한 것이지만 원래 그 원리는 동아시아 전통의 기(氣) 사상을 근간으로 한다. 기 사상은 천지인 삼계가 기(氣)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기가 서로 감응한다는 것이다. 즉 하늘의 기운 변화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며 반대로 사람의 기운 변화가 하늘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또한, 땅의 기운의 변화가 국가, 사회와 개인의 흥망성쇠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고대에는 소박한 원리였던 것이 차츰 이론화되었는데 이것이 천인감응론과 풍수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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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인감응론(天人感應論)

  고대 중국에서는 천 ⋅ 지 ⋅ 인이 같은 원기(元氣)에서 비롯되어 상호 대응의 관계를 갖기 때문에 서로 감응하여 상통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런 이론이 점차 체계화되어 한(漢) 무제(武帝) 시대의 동중서(董仲舒, BC 170⋅~BC 120⋅)는 천(天)이 이 세상을 주재하며 천과 인간은 대우주와 소우주 관계로 서로 같은 체(體)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상응한다는 천인감응(天人感應) 이론을 설하였다. 그리고 그는 천인감응의 원리를 기와 음양오행설로 설명하였다. 하늘과 땅 사이에는 눈으로 볼 수 없지만, 기가 있어 서로 감응한다는 것이다.

  동중서는 이런 논의를 확장하여 인간은 하늘의 복사본이기 때문에 인간의 몸이 하늘의 체계로 이루어졌다는 ‘천인동류(天人同類)’를 주장하였다. 그가 설한 천인동류설의 예를 몇 가지만 들자면, 하늘에 사시가 있어 인간에게 사지가 있고 일 년이 366일이라 인간에게 366개의 뼈마디가 있으며 오행이 있어 인체에는 오장이 있다고 한다. 그는 이런 설명을 통해 하늘과 인간은 같은 부류이며 서로 감응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인간의 대표인 군주가 정치를 잘못하거나 악한 마음을 가지면 그 기운이 하늘에 작용하여 하늘이 이를 견책하고 재앙을 내린다고 하였다. 이를 재이(災異)라고 하며 재이에 대하여 “작은 것을 ‘재(災)’라 하고 큰 것을 ‘이(異)’라고 한다. 항상 ‘재’가 먼저 이르고 ‘이’는 ‘재’를 따른다. ‘재’라는 것은 하늘의 천견(天遣)이고 ‘이’는 하늘의 위엄이다.”라고 하였다.

 b556153429cb806c18ed464cd95dc7eb_1490329 이런 동중서의 천인감응설과 재이설은 역(易)과 결합하여 하늘의 별자리 변화에 대해 음양의 해석을 덧붙여 기후의 변화 및 인간사를 예측하는 점성술로 변화하였다. 또한, 동중서의 사상은 그의 제자인 사마천에 의해 천상의 세계를 지상의 세계처럼 조직을 부여함으로써 천상의 별자리를 나누고 그에 상응하는 특정 지역을 연결하는 분야설(分野說)로 체계화되었다02. 이 분야설에 의하면 하늘의 특정 별자리는 땅의 특정 지역과 관계되어 있다고 하며 북경을 중심으로 중국의 각 지역을 특정 별자리에 대응시켰다.

  중국의 분야설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기는 했지만, 우리나라에도 중국과 다른 토속적인 분야설의 흐름이 있었다. 도선대사의 영향을 받아 화담 서경덕에 의해 창안된 『홍연진결』에 나타난 분야설이 그것이다. 『홍연진결』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전역 또한 중국과 마찬가지로 하늘의 28수와 대응된다고 한다. 이런 원리를 토대로 사람들은 천문을 관측하여 인간사의 길흉을 예측하며 길성이 비치는 곳을 찾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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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수사상과 십승지지

  우리나라에는 이처럼 하늘과의 상관관계 속에서 지역을 나누었으며 각 지역의 흥망성쇠를 예측하였다. 그러나 지역의 흥망성쇠를 예측하는 근거로 이보다는 풍수설이 널리 쓰였다. 풍수설은 음양오행설을 근간으로 천문사상, 도참사상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발전하였으며 지역의 방위나 지리적 조건과 관련하여 인간사의 길흉화복을 예측하는 것을 말한다. 땅 속에 만물을 생육하는 생명력인 기(氣)가 있어 이것이 인간의 복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풍수사상은 기의 개념을 바탕으로 한 동양의 자연관이며 기의 감응을 위해서 선(善)을 행해야만 한다는 도덕관이 내포되어 있다.

  풍수사상은 후한시대 청오선생(靑烏先生)이 지었다는 『청오경(靑烏經)』에서 구체화되며 동진의 곽박(郭璞)이 쓴 『장서(藏書)』에서 그 이론이 정립되었다. 그것이 우리나라에 점차 전해졌고 고려의 국사인 도선에 의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도선으로부터 비롯된 풍수설은 나라의 수도와 관련된 국도(國都) 풍수로 발전하였다. 고려의 전 시대와 조선 초기까지 풍수는 국가의 사업 또는 권문세가의 귀족을 위한 것이었다. 이런 상황이 바뀌어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천민을 빼놓고는 모든 신분층이 풍수설을 활용하였다. 성리학적 지배질서가 확립되면서 조상의 묘지숭상의 관념이 고조되어 풍수에 대한 관심이 지대해졌다. 실제로 사료를 살펴보면 송사에서 묘지에 대한 소송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서로 좋은 땅에 조상묘를 쓰려고 문중 간, 가문 간에 치열한 소송이 있었던 것이다.

 b556153429cb806c18ed464cd95dc7eb_1490329 풍수설에는 조상묘와 관련된 음택풍수(陰宅風水) 외에도 산 사람의 주거를 결정하는 양기풍수(陽基風水)가 있다. 양기풍수는 근본적으로 음택풍수에서 파생되었으며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원리도 음택풍수와 같다. 이중환(李重煥, 1690~1752)은 『택리지』에서 이 양기풍수의 구비조건으로서 수구(水口), 야세(野勢), 산형(山形), 토색(土色), 조산조수(朝山朝水)의 6가지 사항을 들고 있다. 이런 담론은 점차 확대되었는데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양란을 겪으면서 민중은 난리를 피하고 몸을 보전할 만한 지역을 찾았다03. 오랜 세월 동안 영향을 미친 풍수설과 전쟁이라는 끔찍한 민중의 경험을 토대로 십승지지설이 출현한 것이다. 종교학자 황선명은 십승지지설은 상고시대부터 유장한 세월을 거치면서 조선 후기의 민중의 정서적 공간에 잠재적으로 자리한 심의(心意)현상의 하나라고 보았다04. b556153429cb806c18ed464cd95dc7eb_1490329 

  한편, 십승지지가 제시된 『정감록』에는 진인인 정씨가 남쪽바다의 섬에서 출현하여 군사를 일으켜 크게 난리가 일어나며, 몇 년간의 전쟁 끝에 정씨가 왕위를 찬탈하고 계룡산에 도읍하여 조선왕조를 멸망시킨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의 화란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십승지지를 들고 있다. 십승지지에 관해 여러가지 설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예를 현재 지명으로 바꾸었을 때 풍기 금계촌, 봉화 춘양면 소라리, 보은 마로연 적암리, 지리산 북쪽 운봉면, 예천 금당실, 공주 마곡산, 영월읍 연하리, 무주 설천면 벌한, 부안 내변산 청림리, 합천 가천리다05. 십승지지설에 의하면 이 지역은 굶주림과 전쟁의 피해가 없어 모든 재난을 피할 수 있는 피난처이자 자손만대의 번영과 미래가 약속된 땅이며 지상에 있으면서도 완전한 성스러운 장소다. 이중 풍기는 제일의 승지로서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일종의 종교취락이 형성되었으며 당시 풍기는 ‘작은 서울’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06.

  십승지의 특성을 살펴보면 10군데 모두 우리나라의 중부에 위치한다. 십승지의 선결조건이 난을 피하는 데 있는데 한반도의 북부와 남부지역은 오랫동안 외국의 침략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십승지는 각 도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이는 지방 행정력의 범위에서 벗어나 지방관료들의 착취를 벗어나고자 했던 이유가 아닌가 한다07. 그리고 그 지형은 태백산, 소백산, 덕유산, 가야산, 지리산 등 명산에 자리 잡고 있으며, 산이 높고 험해 외부와의 교류가 차단되어 있다. 외부 세계와 연결하는 통로가 대개 한 곳밖에 없는데 물이 빠져나가는 곳으로 험한 계곡과 협곡으로 되어 있다. 산이 사방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수량이 풍부한 평야가 있어 식량의 자급자족이 가능하다. 대개 십승지는 정치, 경제, 사회, 군사적으로 가치가 별로 없는 곳으로 발전이 없으며 전쟁이 일어나도 적들의 접근이 전혀 없다고 한다08. b556153429cb806c18ed464cd95dc7eb_1490329 

  이처럼 십승지에 대한 담론은 당시에 널리 유행하여 불안한 민심을 부채질하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였다. 이런 십승지설에 영향을 받아 실제로 고향을 떠나 이주를 하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았으며 이런 민중의 심리를 겨냥해 당시의 개신교인들은 십승지지를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승리한 땅이라 해석하여 예수를 믿어야 난을 피하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며 포교하기도 하였다.

  상제님께서는 『정감록』의 예언처럼 장차 난이 발생할지 모른다고 두려워하며 난을 피하고자 하였던 당시 사람들의 불안한 심정을 살피시어 “때는 해원시대이므로 덕을 닦고 사람을 올바르게 대우하라. 여기서 길성이 빛이 나니 이것이 곧 피난하는 길이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즉 난리와 화를 피하는 것은 공간적 이동 등의 현실적이고 표면적이며 직접적인 대처보다는 도덕을 실현하고 윤리를 실천하는 데 있다고 하신 것이다.

  이러한 상제님의 말씀을 잘 비추어볼 때 설령 앞으로 어떤 전쟁, 질병, 경제적 위기 등의 난리가 닥치더라도 불안해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도인의 본분을 다하는 정신과 자세가 중요할 것이다. ‘평상심이 도심이라’이라는 말이 있듯이 평소 상제님을 믿고 일상생활의 수도에서 남에게 척을 짓지 않고 남을 잘 되게 하는 해원상생의 원리를 실천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수양에 있어서는 무자기를 바탕으로 참된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여야 한다. 이렇게 올바른 수도를 하였을 때 상제님의 덕화와 신명의 도움으로 앞으로 닥칠지도 모르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하여 무사히 운수마당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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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순회보 132호>

 

01 조선 중기 이후 민간에 성행하였던 국가운명ㆍ생민존망(生民存亡)에 관한 예언서. 제작 시기는 임진왜란ㆍ병자호란 이후로 보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다. 참서(讖書)의 하나인 이 책은 여러 비기(⋅記)를 모은 것으로, 참위설(讖緯說)ㆍ풍수지리설ㆍ도교사상 등이 혼합되어 이루어졌다. 원본도 저자도 알 수 없는데다가 오랜 세월을 거쳐 민간에 전해오는 동안에 다양한 이본(異本)이 생겨 그 종류가 40∼50종류에 이른다. 또한 책 이름이라기보다는 정체불명의 말세예언(末世豫言)을 추종하는 민간신앙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02 강윤곤, 「홍연진결의 분야설 연구」, 원광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2010, p56.

03 이와 관련하여 『전경』에도 류훈장과 최풍헌의 고사가 있다.

04 황선명, 「십승지 고」, 『종교와 문화 5』, 서울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9, p.166.

05 신종일, 「십승지지 마을에 대한 고찰」, 국립문화재연구소, 1992, p.7.

06 허남진, 「한국의 종교성지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 논문, 2010, p.70

07 신종일, 앞의 논문, p.7.

08 허남진, 앞의 논문, p.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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