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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예(禮)의 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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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3.22 조회3,8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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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예의’니 ‘예절’이니 하는 말 속의 ‘禮’는 언뜻 이해가 쉬운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예절이나 에티켓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예는 인간이 자신을 되돌아보며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원리로 제시되기도 하고, 일상생활에서 개인을 가르치고 통제하며 사회적 질서를 유지하는 힘으로도 작용했다. 특히, 수천 년 동안 동아시아의 한자문화권에서 유학의 경전이나 주석서, 개인 문집 등에 예에 관한 다양한 논의가 등장하였고, 조선 시대에는 16세기 이후 성리학(性理學)이 체계화되면서 예학(禮學)이 성립하게 될 정도로 우리의 전통과 현재의 문화 속에 중요하게 자리매김한 개념이다.

  하지만 근대화라는 미명(美名) 아래 서구적 가치를 우선시했던 사회풍토의 영향으로 구습(舊習)철폐와 아울러 허례허식이라는 예의 부정적인 이미지가 부각되었다. 이로 말미암아 예가 인간이 마땅히 갖춰나가야 할 도리(道理)이며 우리 삶 속에 대단히 중요한 개념임에도 그것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선행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먼저 예의 체계를 종합적으로 완성한 공자(孔子)를 중심으로 유학의 주요 경전에 나타난 예의 의미와 공자 이후 여러 유학자의 예에 관한 논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나아가 대순사상의 바탕이 되는 『전경』과 『대순지침』에 나타난 예의 의미를 고찰하여 우리 수도인이 예를 어떻게 이해하고 생활 속에서 실천해 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그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유학에서 말하는 예의 의미

  문자학적으로 예를 분석해 보면 허신(許愼)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예(禮)는 실행한다는 뜻이며 신(神)을 섬겨서 복을 얻고자 함이다. 示와 ?에서 뜻을 취했으며 례(?)는 또한 소리이다.”01라고 하였다. “시(示)는 신의 일이요 대체로 신의 일에 속하는 글자는 시부(示部)에 썼다.”02 또한, “례(?)는 예를 행하는 그릇이니 豆에서 뜻을 취한 상형(象形)자이다.”03라고 했다. 이렇듯 예는 신 앞에 제물을 올리며 복을 비는 종교의례(儀禮), 특히 제사의례의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은(殷)나라의 종교의례로서의 예는 주대(周代)에 이르러 주공(周公)의 노력으로 크게는 국가의 전장제도(典章制度)와 관혼상제(冠婚喪祭) 등의 의례절차에서부터 작게는 세세한 행위규범에 이르기까지 인간사회의 전 영역을 포괄04하는 인문적 문화형태로 변모하게 된다. 그리고 춘추시대 이전에는 귀족계급에 한정되어 적용되던 예가 공자에 의해 그 체계가 종합적으로 완성되었고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정당성을 갖게 된다. 이제 예는 신분의 고하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날까지 개개인의 도덕성을 배양하기 위하여 반드시 받아들여야 할 구체적 대상이 되었고05 국가·사회의 질서까지 포괄하는 개념이 되었다.

 

 

 

 

  먼저 유학의 주요 경전에 나타난 예의 개념을 살펴보자. 공자보다 약간 앞선 시대를 살았던 정(鄭)나라의 대부(大夫) 정자산(鄭子産)의 말을 인용하여 『좌전』 소공(昭公) 25년 조에 실린 글은 고대인들의 예에 대한 관념을 잘 나타내고 있다.

 

“대저 예라는 것은 하늘의 벼리요, 땅의 마땅함이요, 사람이 행하여야 할 바이다. 천지의 핵심적 질서를 사람이 실제로 본받아 구현하는 것이 예인 것이다. … 이러한 예의 질서를 흔들어버리면 혼란한 세상이 되고 백성은 그 본성을 잃어버리게 된다. 이 때문에 예를 제정하여 인간의 본성을 받들고자 하는 것이다.06

 

  이 글에서 예라는 것은 천지의 질서를 압축하여 인간세(人間世)에 효칙(效則: 본받아 법으로 삼음)하여 놓은 것으로서 인간세의 제도나 질서의 근원을 대자연에 근거 지우려는 사유(思惟)가 드러나 있음을 알 수 있다.07 이러한 사유가 『예기』 「예운(禮運)」편08에도 나타나 있는데, 이것을 보면 공자 당시에 이미 인간이 천지와 더불어 어떻게 조화롭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예론(禮論)과 결부시켜 논의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예론을 바탕으로 공자는 형식화되어가는 주례에 대하여 그 내재적, 정신적 근거로서 인(仁)의 관념을 제시하였다. 공자는 “사람이 인하지 못하면 예인들 무엇하겠는가(人而不仁 如禮何)?”라는 말에서 인한 마음이 없이 행하는 예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곧, 예의 실천은 내적 도덕성을 전제로 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자기를 이기어 예로 돌아가는 것을 인이라고 한다(克己復禮爲仁).”라는 말 속에서 예의 실천이 타율의 강요나 형식적인 의례(儀禮)를 위한 것이 아닌 자율의지에 의한 자기반성의 실천적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임방(林放)이 예의 근본을 물었을 때 답한 “훌륭하도다, 그 질문이여! 예는 사치스럽기보다는 검소해야 하고, 상은 형식적 질서를 따르기보다는 차라리 슬퍼야 한다(大哉問 禮 與其奢也 寧儉 喪 與其易也 寧戚).”라는 말 속에서는 예의 본질은 사회적 과시나 외면적 허례가 아닌 인성 내면의 자연스러운 표출이며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합리주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공자가 태묘(大廟)에 들어가 제사가 진행됨에 매사를 묻자, 어떤 사람이 “누가 저 추인(鄹人)의 자식이 예를 안다고 하는가?”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묻는 것이 곧 예니라(是禮也).”라고 하였다. 여기서 예는 고정불변의 절차적 지식이 아니요,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황적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공자가 예의 전문가로서 많이 알고 있다 할지라도 지금 여기 이 상황에 벌어지고 있는 태묘의 제식은 공자에게 물음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나의 고정적 관념으로서 임하면 실수를 범하게 될 것이다. 사회적 질서가 시대상황에 따라 변하여 생성되는 것이 아니고 고정된 존재가 되어버릴 때 그것은 인간을 질식시키는 독선이 되어버릴 뿐이다. 예는 끊임없는 우리의 물음을 통하여 새롭게 형성되는 것이고 고정불변의 예는 없다.09

 

 

 

 

  그리고 중국고전에서 예는 반드시 악(樂)을 동반하는데 『논어』 「학이」편에 유자[有子: 공자의 제자 유약(有若)]의 말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예의 쓰임은 악의 조화로움을 귀하게 여긴다. 선왕의 도는 이 조화를 아름답게 여겼다(禮之用 和爲貴 先王之道 斯爲美).”

 

  여기에서 선왕의 도는 고례(古禮)로서 인간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모든 의례를 총칭하는 것이다. 선왕은 그러한 의례를 최초로 만든 분들이며 이 예야말로 문명의 본질이고 끊임없는 문화의 생성이다. 그런데 이 선왕의 도는 예와 악이 어우러지는 경지를 가장 아름답게 여겼다는 것이며, 예와 악의 관계를 잘 설명한 기록이 『예기』 「악기(樂記)」에 보인다.

 

 

  “악이란 같아짐을 위한 것이요, 예란 달라짐을 위한 것이다. 같아지면 친해지고, 달라지면 공경하게 된다(樂者爲同 禮者爲異. 同則相親 異則相敬).”

 

 

  선생과 제자, 임금과 신하,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 이 모든 관계에 존재하는 예란 이들 사이의 마땅한 바를 분별키 위함이요, 이들의 다름을 확실케 하고자 함이다. 다르면[異] 서로 공경[相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다름과 공경으로만 살 수가 없다. 그러면 인간은 소원해지고 고독해지고 엄숙해지기만 하는 것이다. 바로 음악, 예술이란 이러한 이화(異化)의 방향을 동화(同化)의 방향으로 전화(轉化)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곧 화(和)요 동(同)이다. 동(同)하면 상친(相親)인 것이다.

  또한, 「악기」에 “악은 인간의 내면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요, 예는 인간의 외면으로부터 사회적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대악(大樂)은 필이(必易)요, 대례(大禮)는 필간(必簡)이다.10 예는 천지지별(天地之別)이요, 악은 천지지화(天地之和)인 것이다. 예는 우리에게 질서의 아름다움을 제공하고 악은 우리에게 생명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것이다(樂者樂也).”라는 내용이 보인다.11 이렇듯 예와 악의 기능을 통하여 인간세의 조화로운 삶을 구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다음으로는 공자 이후의 대표적인 몇몇 학자들의 예에 관한 논의를 살펴보겠다. 맹자(孟子)는 “사양하는 마음은 예의 단서이다(辭讓之心 禮之端也).”라는 말로 예를 설명하였고, 순자(荀子)는 그의 「예론(禮論)」에서 생명의 근본인 천지와 혈연의 근본인 선조, 국가질서의 근본인 군사(君師)를 섬기는 것이 예의 세 가지 근본이라 했으며12, 예를 옛 성현(聖賢: 선왕)에 의해 제작된 역사적 산물로 이해했다. 그런데 맹자 류의 유학을 신봉하는 주자(朱子)는 “예라는 것은 천리의 절문이요, 인사의 의칙이다(禮者 天理之節文, 人事之儀則也).”13라고 말했다. ‘천리의 절문’이라는 말은 예의 유래가 선왕들에 의해 제작된 역사적 산물로서 인간세계의 사회 정치적 질서에 있지 않고, 인간이 있기 이전부터 있어온 자연세계의 내적 질서 즉 천리에 있음을 뜻한다. 장재(張載)는 자연세계에 이미 예가 있었다고 보아 그 예를 “천지의 예”라 부른다. 그는 “예가 반드시 모두 인간에게서 나온 것은 아니다. 인간이 없는 지경에 이르러도 천지의 예는 저절로 있게 마련이니 어찌 인간에게 의존하겠는가?”라고 말한다.14

  그리고 중국에 통일제국이 등장하면서 한무제(漢武帝)는 군주의 통치체제를 확립하기 위해 유학을 국가 통치이념으로 채택한다. 이때 삼강(三綱)의 왕도는 하늘처럼 영원히 변치 않는다는 삼강설이 등장하고 그 이후로 상호적·수평적인 오륜(五倫)보다 수직적이고 종속적인 삼강의 질서를 강요하는 예교(禮敎: 예를 교육함)에 의해 예는 그 본질을 상실하게 된다.

  한편, 송대(宋代)에 와서 주자는 쇠퇴한 유학의 가치를 회복하고 민족적 정체감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그는 명분과 애경(愛敬)이 예의 근본이라 생각하고, 쓸데없는 허례를 생략하고 근본과 진실에 바탕을 둔 예를 시행함으로써 유학의 이념을 실현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번잡하고 현실에 부적합한 고례(古禮)를 극복하고 예의 보편적 원리와 시대적 형식에 부합하는 예식(禮式)들을 일반 대중에게 널리 보급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소학』과 『주자가례』를 편찬하였다. 하지만 후대에 이르러 주자학이 입신양명의 수단으로 변질되는 등의 사회적 영향과 정치적 의도에 의해 그 본뜻이 왜곡되게 된다.

  주자의 본래 의도와는 다르게 『소학』과 『주자가례』는 예의 정신적인 측면보다는 형식이 중요해지고, 예를 본래의 내용에 따라 융통성 있게 해석하기보다는 외형적 문식(文飾)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이로 말미암아 가례가 그 자체로 하나의 본질주의의 형식적 엄격성을 띰에 따라 오히려 예의 가변적 적용을 시도하는 다른 움직임을 방해하고 통제하는 힘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경우가 조선 시대에 있었던 예에 관한 일련의 논쟁이었다.15

  유교의 예가 가례를 통해 형식적 규범으로 자리 잡게 됨에 따라 개인들의 일상에서 모든 삶의 영역에 침투하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했다. 가례의 보급과 확산에 개입한 권력의 의도는 무엇보다 피지배자에 대한 교화로 정당화된다. 특히, 조선 시대에 지배계급은 개국(開國) 이후 가장 시급하게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가치관의 정립을 통해 정치체제와 사회체제의 정당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목적에 의해 예서(禮書)의 핵심이었던 『소학』과 『주자가례』는 성리학과 더불어 조선시대 유학의 중요한 경전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순수하지 못한 정치적·사회적 의도에 의해 본질을 망각하고 형식에 치우친 허례허식이 만연하게 되었다.

 

 

 

 

대순사상에 나타난 예의 의미.

『전경』에 기록된 상제님께서 예와 관련하여 말씀하신 구절은 몇 군데 있지만, 그중에서 예의 의미를 유추해 볼 수 있는 부분은 아래의 구절들일 것이다.

 

① 이 세상에 전하여 오는 모든 허례는 묵은 하늘이 그릇되게 꾸민 것이니 앞으로는 진법이 나오리라.(교법 3장 37절)

② 不受專强專便曰禮(교법 3장 47절)

③ 戒爾遠恥辱 恭則近乎禮 自卑而尊人 先彼而後己(예시 55절)

 

  예는 자율적이고 인(仁)함을 바탕으로 공경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나오는 것으로서 질서의 아름다움을 제공하는 데 그 본질이 있다. 먼저 ①의 구절은 이러한 본질이 결여되고 형식과 격식에 치우친 허례와 허식은 모두 묵은 하늘이 그르게 꾸민 것으로 앞으로는 모두 사라지고 진법(眞法)의 참다운 예법이 나올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구절에서 ‘모든 허례는 묵은 하늘이 그릇되게 꾸민 것’이라는 말씀은 정자산이나 주자가 예를 천지와 연관해서 생각하는16 사유의 맥락에서 이해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참다운 예법은 참다운 하늘의 절문이요, 앞으로 진법을 나오게 할 새로운 하늘은 곧 그릇됨을 꾸미지 않는 참다운 하늘이라는 것이다.

  ②의 말씀은 직역하면 ‘오로지 강하기만 하고 오로지 편하기만 한 것을 수용하지 않는 것을 일러 예라 한다.’이다. 한문으로 되어 있어 해석의 개연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만, 여기서 강(强)은 ‘강제로(억지로)’의 의미로 보이며 편(便)은 ‘편하다(간편하다)’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종합해서 보면 ‘너무 강제로(억지로) 하거나 너무 편하게(간편하게) 하지 않는 것이 예이다.’라고 해석해 볼 수 있겠다. 이것은 사회적인 환경이나 명분에 의해 억지로라도 해야 하거나 단순한 인사치레 따위의 간편한 허례는 예가 아니라는 맥락에서 하신 말씀이 아닌가 생각된다. 여기서 ‘간편하다’는 말은 “위대한 예법은 간결해야 한다(大禮 必簡).”라는 「악기」 구절의 ‘간결하다’는 말과 의미가 다르다. 간결하다는 것은 최대한 단순화한 형식을 취해야 한다는 뜻이지만 간편하다는 것은 인간의 편리(便利)를 위주로 한다는 의미에 더 가까워 예의 본질인 공경과 거리가 있다.

  그리고 ②의 구절이 예의 형식적인 면에 중점을 두고 하신 말씀이라면 ③의 구절은 인간이 예를 행할 때 내면적·정신적인 면에서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공(恭)’, 즉 공손함을 말씀하신 것으로 ‘공손함은 곧 예에 가깝다.’라는 뜻이다. 또한, ‘너에게 이르노니 치욕을 멀리하라’는 말씀과 연관하여 예에 가깝게 처신하는 것이 주변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고 치욕을 멀리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전경』 속에 나타난 예의 의미는 다소 개괄적인 측면이 있는데, 그 의미를 좀 더 구체화한 내용이 『대순지침』(p.68·69)에 잘 요약되어 있다.

 

(가) 예라는 것은 사람으로서 일생 동안 움직일 때나, 정지할 때나, 앉아 있을 때나, 누워 있을 때(起居動靜)를 가리지 않고 항상 정도를 넘는 일이 없이, 공경심으로 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여 주는 인도(人道)를 갖추는 것을 이른다.

“도덕과 인의(仁義)도 예가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

(나) 예는 평범하면서 적중(適中)하여야 위의(威儀)가 서고 질서가 이루어져 화합의 바탕이 된다.

(다) 사람의 도가 예를 체로 삼기 때문에 그 체통(體統)을 바로 하여야 체계 질서가 정립(定立)된다.

 

  (가)에서 예는 평생 사람이 갖추어야 할 당위적인 도리로서 도덕과 인의를 이루어 나가는 데 꼭 필요한 덕목이며 그 근본은 남을 공경하는 마음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와 (다)는 예의 효능에 대한 설명으로 올바른 예의 실천은 화합의 바탕이 되며 나아가 체계 질서를 정립하게 한다는 것이다. 결국, 조직의 질서가 유지되고 구성원이 화합하여 발전할 수 있는 바탕에는 적절한 예가 꼭 필요하다는 뜻이다. 위 구절들에는 유학에서 예를 천지의 내적 질서에 근원한 것으로 여기는 사유는 보이지 않지만, 예를 인간의 당위적인 도리로 말씀하신 부분은 유학에서 말하는 개념과 차이가 없다. 또한, 예의 효능에 대한 부분은 『예기』 「악기」에서 말한 예와 악의 기능을 통하여 인간세의 조화로운 삶을 구현하고자 했던 것과 거의 같은 차원의 설명이다. 이것은 예가 곧, 유교문화권에서 생겨나 오랜 세월 속에서 다듬어지며 이해되어온 보편적인 개념이기 때문일 것이다.

 

 

맺음말

  지금까지 유학에서 말하는 예와 대순사상에 나타난 예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예는 그 개념이 문자학적인 분석에서 보았듯이 한자문화권에서 형성된 것이다. 처음에는 종교의례로서 출발하여 주례에서 인문적 문화형태로 변모하였고, 공자에 의해 인간의 도덕성[仁]의 근거인 하늘의 이치[天理]가 현실사회에 다양한 차이의 모습을 구현한다는 의미로 개념화되면서 그 체계가 종합적으로 완성되었다. 하지만 유학이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자리 잡게 된 한(漢)나라 이후 정치적 목적과 연관하여 수직적·종속적인 질서를 강요하는 예교(禮敎)에 의해 예는 그 본질을 상실하고 형식적인 면으로 치우치게 되었다.

  그 이후로 예의 본질에서 벗어난 허례와 허식으로 많은 사람이 그 폐해17를 입어왔고 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마저 대두하였다. 하지만 자율적인 의지에 따라 자기의 인격을 완성해나가는 기준이 되고 나아가서 사회와 국가의 질서를 유지하고 궁극적으로는 그 구성원들을 화합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는 점에서 예는 반드시 바로 세워야 할 덕목이다. 대순사상에서 예를 이러한 덕목으로 생각하는 효능적인 측면이나 예의 정신, 그리고 그 전반적인 의미에 대한 이해는 유학과 차이가 없다. 이것은 예가 대순사상의 차원에서 달리 해석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닌 오랜 세월에 걸쳐 성현들이 밝혀 놓은 보편적인 이치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를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예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큰 오류가 없을 것이다. 나아가 “도덕과 인의도 예가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는다.”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도덕과 인의를 밝혀 나가야 하는 우리 수도인에게 예의 실천이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의 실천적인 면에서, 일상의 모든 일 가운데 그에 적절한 예가 없는 것은 하나도 없으며 때와 장소, 상황에 따라 그에 합당한 예절은 달라질 수 있다. 그러하기에 그 각각의 예를 다 배우고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몰라 난감해하는 경우를 종종 겪게 된다. 이러한 예의 한계성을 극복하는 방법은 그 행위원리에 담겨 있는 정신을 파악하여 능동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다. 그 정신은 곧 인(仁)한 마음이요, 공경심이다. 이러한 내적 도덕성을 바탕으로 한 예를 갖춰 나간다면 인격완성을 위한 수도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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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순회보 135호>

 

01 허신, 『설문해자』: “禮 履也. 所以事神致福也. ?示 ?? ?亦聲.”

02 앞의 책: “… 示 神事也. 凡示之屬 皆?示.”

03 앞의 책: “? 行禮之器也. ?豆象形 凡?之屬 皆?? 讀與禮同.”

04 『예기』에 주례(周禮)는 경례삼백 곡례삼천(敬禮三百 曲禮三千, 「악기」) 또는 예의삼백 위의삼천(禮儀三百 威儀三千, 「중용」)의 기록에서 알 수 있다.

05 장정호, 「공자 예 개념의 형성과 그 교육적 함의」 『교육사학연구 제20집』, 2010, pp.58~59 참조.  

06 夫禮 天之經也 地之義也 民之行也 天地之經而民實則之. … 淫則昏亂 民失其性 是故爲禮以奉之.

07 김용옥, 『논어한글역주 2』, 통나무, 2009, pp.505~509 참고.

08 공자 말씀하시길 “대체로 예라는 것은 선왕이 하늘의 도리를 이어받아서 사람의 정을 다스리는 것이므로, 이것을 잃는 자는 죽고 얻는 자는 산다(孔子曰 夫禮先王以承天之道 以治人之情 故失之者死 得之者生). … 이런 까닭으로 예는 반드시 하늘에 근본하고 땅을 본받으며(是故 夫禮必本於天 ?於地) … 그러므로 성인이 몸소 예를 보여주어서 천하 국가를 바르게 할 수 있는 것이다(故聖人以禮示之 故天下國家可得而正也).”

09 김용옥, 앞의 책, pp.66~69 참고.

10 위대한 음악은 반드시 쉬워야 하고, 위대한 예법은 반드시 간결해야 한다.

11 김용옥, 『논어한글역주 1』, 통나무, 2009, pp.372ㆍ373ㆍ596ㆍ597 참고.

12 “… 天地者 生之本也, 先祖者 類之本也, 君師者 治之本也, … 故禮上事天 下事地 尊先祖而隆君師, 是禮之三本也.”『순자』 「예론」

13 절문: 하늘의 이치에 부합하는 적절한 규정. 의칙: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의식이나 법. 『논어』「학이」 12장 - 주자주(註).

14 한도현ㆍ김동노 등, 『유교의 예와 현대적 해석』, 청계출판사, 2004, p.166.

15 앞의 책, pp.58~61 참고.

16 정자산의 ‘천지의 핵심적 질서를 사람이 실제로 본받아 구현하는 것이 예인 것이다.’와 주자의 ‘예는 천리의 절문’이라는 생각.

17 중국 여인들의 전족(纏足), 과부의 재가 금지, 과부의 순절, 남존여비의 폐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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