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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된 高麗葬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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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1.02 조회3,2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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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 사회는 이미 2000년에 노인 인구 비율이 7.2%가 됨으로써 고령화 사회로 진입했고, 그 비율은 계속 늘어나 2020년에는 15.1%가 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게다가 80세 이상의 고령인구가 급증하고 있는데 비해 핵가족화 현상은 심화되고 있어 이로 말미암아 노인세대는 가족 부양으로부터 더욱더 방치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실제로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현대판 고려장’이라 하여 늙은 부모를 양로원이나 혹은 효도관광을 이용하여 버리고 오는가 하면, 뚜렷한 병이 없는데도 장기간 병원에 입원시키거나 간병인을 고용하여 돌보게 하는 젊은 자식들도 늘고 있다. 게다가 일부 자식들은 부모의 임종조차도 간병인에게 맡긴다고 한다. 이런 패륜은 물론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일부 언론매체와 사람들 사이에서 늙은 부모를 버리는 이러한 비윤리적인 작태를 ‘고려장의 부활’이라고 하여 마치 우리나라에 부모를 버리는 풍습이 있었다는 생각을 자아내게 하는 표현이란 점에 문제가 있다.

한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고려장이 우리나라에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대다수가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는 응답이 나와 고려장에 대한 왜곡이 얼마나 심한가를 알 수 있었다. 사실 우리나라에 고려장설화[高麗葬說話: 기로전설(棄老傳說)이라고도 불림]라는 것이 전해지고는 있지만 고려장이란 풍습은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그것은 일본이 우리 문화재의 도굴을 위해 만들어낸 거짓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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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우리나라를 강제로 차지한 일본은 우리의 문화재를 약탈하여 자기네 나라로 실어 보내다가 우리 조상의 무덤 속 보물까지 탐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효를 숭상하는 우리 민족의 특성상, 일본인이 한국인의 조상 무덤을 파헤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의 경로효친 정신을 역이용하여 ‘조선에는 고려시대부터 고려장이란 게 있었다. 부모를 산 채로 내다 버리는 못된 풍습이니 여기 묻힌 사람은 자기 부모를 생으로 고려장시킨 나쁜 놈이므로 이 무덤은 파헤쳐도 괜찮다.’라는 유언비어를 날조하고 조선인 인부를 회유하여 무덤을 파헤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꾼들의 입을 타고 고려장이라는 말이 퍼지게 된 것이라 한다. 01

그렇다면 일본이 고려장이란 유언비어를 퍼뜨릴 수 있었던 근거가 된 고려장설화의 진실은 무엇일까? 본래 고려장설화는 부모를 내다버리는 것을 강조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노인에 대한 공경과 부모에 대한 효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설화였다. 이것에는 대표적으로 두 가지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첫 번째는 고려시대에 늙은 부모를 산 채로 내다버리는 법이 있었던 때라고 하며 얘기가 시작된다. 이때 중국에서 한국을 얕잡아보고 사신을 보내 우리나라에 문제를 내어 풀어보게 하였는데, 문제를 풀지 못하면 국가적 망신이었던지라 왕과 모든 대신이 이것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이때 법을 피해서 숨겨놓았던 늙은 아버지의 지혜로 해결해내자 이에 기뻐한 왕이 그 법을 폐지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이 설화는 불교경전인 『잡보장경(雜寶藏經)』의 「기로국조(棄老國條)」에 실려 있는 내용과 동일한데, 불경의 이야기가 설화로 둔갑된 형태이다. 잡보장경의 기로국 이야기에 나오는 기로국의 풍습이 고려장(高麗葬)으로 변용되어 고려시대에 마치 실제로 존재한 풍속처럼 믿어지게 되어버린 것이다.

또 다른 설화는 늙은 아비를 산 채로 져다버리자 그 아버지가 내버린 지게를 아들이 후일 다시 쓰기 위해 가져와 자신도 아버지가 늙게 되면 써야 되지 않겠냐고 하여 그의 아버지로 하여금 불효를 깨우치게 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도 우리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중국 『효자전(孝子傳)』의 ‘원곡 이야기’가 국내에 유입되어 둔갑된 것이다. 한편 일본에서도 『명의해(命義解)』란 책에 중국의 『선현전(先賢傳)』을 인용해 기로전설의 내용을 전하고 있는데, 『선현전』에 나오는 민족이 유주(幽州) 가까운 곳에 사는 북적(北狄: 고대 중국에서 북쪽에 사는 이민족을 얕잡아 이르던 말)이라는 점만 『명의해』와 다를 뿐이다.

이러한 고려장설화가 구전으로만 전해지다가 처음으로 문헌에 등장한 것은 1926년의 일이다. 교사였던 심의련은 그의 저서 『조선동화대집』에서 「노부를 내다버린 자」라는 제목으로 지게에 지고 노부를 내다버린 불효자의 이야기를 실었다. 이후 1987년부터 「지혜로운 어머니」라는 제목으로 교과서에 실리기 시작했으며, 그 내용은 ‘아주 먼 옛날 우리나라에는 고려장 풍습이 있었다’라고 시작된다. 1993년부터는 3학년 국어 교과서에 「소년과 어머니」라는 제목으로 각색되어 실리고 있다. 하지만 설화의 유래에 대한 정확한 소개가 빠진 상태에서 전해지다 보니 자연스레 우리나라의 고유설화로 잘못 알려지게 된 것이다.

실제 있었던 줄로만 알았던 고려장 풍습은 일본에 의해 왜곡된 것이었으며, 그 근거로 삼았던 고려장설화 또한 근거지가 우리나라가 아니었다. 더욱이 옛부터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효라는 것은 부모가 살아 계실 때에 지성을 다하여 모시고 공경할 뿐 아니라, 돌아가신 뒤에도 생전과 마찬가지로 보본반시(報本反始 : 조상의 은혜에 보답함)의 정성을 드리는 것이 우리의 미풍양속이었다. 또한 법제도에 있어서도 효행을 위해서는 형벌의 집행까지도 유예하는 등 효치주의 실현에 주력했었다. 그 속에서 고려장이란 풍습이 있었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효의 가치와 의식이 저하되어 실제 늙은 부모를 내다버리는 패륜이 일어나고 있음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상제님께서는 “복은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이요,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것이 아니니 사람의 도의로서 부모를 잘 공양하라.”(교법 1장 41절)고 하시어, 효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다. 『대순지침』에도 “부모에게 효도, 친족간에 우애와 화목, 국가에 충성하는 일이 모두 성경신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 외인들에게 지탄받는 일은 절대적으로 없어야 한다.”고 하여 효에 힘써야 함을 말하고 있다. 효의 마음이 친족에게 적용되었을 때는 우애와 화목으로 이어질 것이며, 그것이 국가에 이어졌을 때는 충(忠)이 될 것이다. 즉, 우애와 화목 그리고 충(忠)의 기본 덕목이 되는 것이 효라 할 수 있기에 효의 중요성이 얼마나 큰가를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수도인들 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사람의 당연한 도리로서 효란 것을 알고만 있는 데에 그치지 말고, 사람의 도의인 부모의 은혜를 잊지 말고 잘 공양해야 할 것이다.

 

<대순회보 77호>


01 ▶고려의 벽화 고분은 왕이나 민족 또는 상류 지배층 귀족들의 무덤이다. 마치 생존시의 생활상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처럼 꾸며져 있다. 그래서 일제 때에는 많은 고구려 벽화 고분이 도굴되면서 '고려장'이라는 해괴망측한 말이 나돌았다. 지하궁전과 같은 고구려 고분의 음식물이나 타타 남은 촛똥이 남아있어 마치 산사람이 들어가 죽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런 말이 나음직도 하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이 같은 불륜을 저잘렀다고 생각해볼 수도 없고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전설이라도 일제시대부터 있던 것이다. 인륜을 어기면 천벌을 받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일제시대에 남의 나라 무덤을 파헤치기 좋아하는 일부 일본인들이 도굴을 합리화하기 위해 만들어 낸 조어(造語)일 뿐이다. (이형구, 『발해연안에서 찾은 한국 고대문화의 비밀』, 김영사, 2004, pp.252~253)

  ▶MBC는 특선 다큐멘터리 「고려장은 있었는가」(충주 MBC제작)를 통해 고려장풍습이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우리네 무덤을 도굴하기 위해 날조해 퍼뜨린 유언비어라고 밝히고 있다. (서울경제, 『우리 역사에 고려장은 없었다』, 1999.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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