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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불언(食不言)과 침불언(寢不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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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21.11.02 조회3,66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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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는 글

 

  『전경』에 “식불언(食不言)이라 하였으니 먹는 것을 말하지 말며 침불언(寢不言)이라 하였으니 남의 누행을 말하지 말라.”(교법 1장 60절)는 가르침의 구절이 있다. 이 성구는 상제님께서 식불언(食不言)과 침불언(寢不言)을 근거로 ‘먹는 것을 말하지 말고, 남의 누행을 말하지 말라’는 교훈을 주신 말씀이다. 식불언과 침불언은 한문의 특성상 식(食)과 침(寢)을 중심으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식불언은 먹을 때 말하지 않았고(또는 먹는 것을 말하지 말고), 침불언은 잘 때 말하지 않았다(또는 자는 것을 말하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식불언과 침불언의 출전과 의미는 무엇이며,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먹는 것’과 ‘남의 누행’을 말하지 말라고 하신 상제님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논의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해보고자 한다. 첫째 상제님의 말씀이 오늘날에도 보편타당한 윤리적 교훈이라는 점에서 문화적 다양성과 상대성을 인정하는 문화상대주의 입장에서 살펴볼 것이다. 둘째 상제님께서 가르침을 펼치셨던 시대와 장소가 조선이라는 역사적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당시 사람들의 생활환경과 의식구조가 반영된 조선말 시대적 상황에서 살펴볼 것이다.

 

Ⅱ. 문화상대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본 ‘식불언과 침불언’

 

  상제님께서 “식불언이라 하였으니… 침불언이라 하였으니”라고 밝히신 말씀을 볼 때 식불언과 침불언은 일반에 두루 쓰였던 격언이라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조선 시대의 문헌 기록에서는 이와 정확히 일치하는 용례를 찾아볼 수 없다. 다만 이와 관련된 내용을 공자(孔子, 기원전 551~ 기원전 479)의 가르침에서 찾을 수 있다. 『논어(論語)』의 「향당(鄕黨)」편에 “식불어(食不語) 침불언(寢不言)”이라는 구절이 나오는데01, 이를 상제님의 말씀과 비교하면 ‘식불어’와 ‘식불언’에서 ‘말’을 뜻하는 글자인 ‘어(語)’와 ‘언(言)’이 다르게 쓰였다. 『논어』의 이 구절에서 ‘어’와 ‘언’은 굳이 양자를 구분한 말이라기보다 단조로움을 피하느라 표현을 달리했을 뿐 궁극적으로 뜻하는 바는 마찬가지라는 주장도 있다.02 그러므로 문장의 구조에서 ‘어’와 ‘언’의 뜻이 다르지 않다는 관점에서 보면 상제님께서 말씀한 식불언과 침불언은 『논어』의 “식불어 침불언”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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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어』의 “식불어 침불언”은 ‘먹을 때 말하지 않았고 잘 때 말하지 않았다.’라는 직역이 가능한데, 여기서 문제는 그것이 누구의 말인지 또 어떤 상황을 설명하는지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해석의 논란이 따른다는 점이다. 원래 「향당」편의 향(鄕)과 당(黨)은 주(周)나라 때의 행정단위를 말한다. 그러나 『논어』에서 향당은 행정단위의 의미보다는 부모 형제와 종족(宗族)이 함께 사는 마을이라는 의미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 「향당」편은 공자의 말이나 제자들과의 문답을 기록한 『논어』의 다른 편과 달리 주로 공자의 일상생활에 관한 여러 가지 사항, 즉 몸가짐, 옷차림, 식습관 등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그래서 「향당」편의 다양한 기록과 정황에 근거하여 “식불어 침불언”의 행동 주체가 공자라는 주장이 일반적인 통설이다.
  그렇다면 공자가 “식불어 침불언”을 했다는 구절은 후대의 학자들에게 어떻게 해석되고 이해되었을까? 주자(朱子, 1130~1200)가 주석한 『논어집주(論語集註)』에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다. 주자는 식불어 침불언에서 “답하여 진술하는 것을 어(語)라 하고, 스스로 말하는 것을 언(言)이라 한다(答述曰語, 自言曰言.)”라고 하여 글자에 나타난 ‘어’와 ‘언’의 의미 차이를 기술하였다. 그리고 “범씨(范氏)는 성인의 존심(存心: 마음을 보존하는 것)은 다른 것이 없으니 먹을 때는 먹기만 하고 자야 할 때는 자기만 하니 이때 말하는 것은 적당한 시기가 아니라고 말하였고, 양씨(楊氏)는 폐는 기(氣: 숨)의 주인이 되고 소리가 거기에서 나오니, 잠을 자고 음식 먹을 때 기가 막혀 통하지 않으므로 말을 하면 폐를 상하게 할 수 있다고 말했으니 이 또한 의미가 통한다.”라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03 즉 성인은 마음의 보존과 신체의 건강을 위해 먹을 때 먹기만 하고 잘 때 자기만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자의 주석에 따르면 공자의 “식불어 침불언”은 ‘식사를 하시면서 대화를 하지 않았으며, 잠자리에 드시면서 혼잣말을 하지 않았다’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논어』의 구절인 “식불어 침불언”, 즉 ‘먹을 때 말하지 않았고 잘 때 말하지 않았다.’라는 내용은 오늘날 현실에서 쉽게 통용될 수 있는 가르침은 아닌 것 같다. 특히 현대의 사교 활동이 대화 중심의 식사문화를 동반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상제님께서는 “식불어 침불언”과 관련하여 “식불언(食不言)이라 하였으니 먹는 것을 말하지 말며 침불언(寢不言)이라 하였으니 남의 누행을 말하지 말라.”는 교훈을 말씀하셨다. 즉 식불어 침불언을 식불언 침불언이라고 말씀하시고, 이를 타인의 먹는 것과 누행(陋行: 누추한 행동 또는 행실)을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우리의 도덕적 실천에 관한 가르침으로 적용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천하 창생을 구제하기 위해 천지공사를 행하시던 상제님께서는 타인에 대한 윤리적 실천의 문제로 왜 식불언과 침불언을 말씀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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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과 침, 이 두 가지 범주는 우리의 생존과 더불어 삶의 질을 결정하는 문제인 만큼 매우 중요한 욕구의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의 성향과 건강, 식생활 습관과 주거환경에 따라 음식을 먹고 잠을 잘 때의 태도와 모습은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이를테면 개인마다 음식을 먹는 방법과 선호하는 음식이 다를 수 있고, 잠을 자는 버릇이나 선호하는 잠자리의 환경도 서로 다를 수 있다. 개인의 성향과 습관은 먼저 일상생활에서 행동이나 몸가짐으로 드러나게 되고, 그것이 지속하면 자신의 장단점으로 발전하게 된다. 문제는 인간사에서 남의 장점보다 단점을 말할 때 상극의 원인이 되는 갈등을 조장할 가능성이 훨씬 커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상생활에서 식불언과 침불언을 실천한다는 것은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적극적인 태도의 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개인인 남과 나의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존중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상제님께서 말씀한 식불언과 침불언의 내용을 문화상대주의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우리와 다른 타자의 문화를 바라보는 태도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지금도 지구촌에서는 먹고 자는 생활양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개인의 생존권과 인격권을 침해하는 반인륜적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상극적인 행위와 분쟁은 존귀한 인간 존재에 대한 자각과 확신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식불언과 침불언은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실천행위라는 점에서 타자의 문화적 상대성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문화상대주의의 관점을 견지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상제님께서 “천존과 지존보다 인존이 크니 이제는 인존시대라. 마음을 부지런히 하라.”(교법 2장 56절)는 가르침인 ‘인존(人尊)’ 사상의 발현과 궁극적으로 다르지 않다.

 

Ⅲ. 조선말 시대적 상황에서 바라본 ‘식불언과 침불언’

 

  상제님께서 이 땅에 오시고 천지공사를 처결하셨던 시기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로 제국주의 침탈이 극렬하던 시기와 겹친다. 상제님께서는 “부자의 집 마루와 방과 곳간에는 살기와 재앙이 가득 차 있나니라.”(교법 3장 4절)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은유적 표현 속에는 상극으로 점철된 현실 세계의 참혹한 실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말씀을 조선 말기의 사회정치 현상과 결부하여 살펴보면 국가재정[수취제도]의 근원인 ‘삼정(三政: 전정·군정·환정)의 문란’으로 강권을 가진 부자와 달리 생존의 위기에 처한 민생들의 원한 맺힌 시대상과 맞닿아 있다.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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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벨라 비숍이 촬영한 1890년대 조선

 

  당시 조선을 답사했던 영국인 비숍(Isabella Bishop, 1831~1904)은 조선의 사회를 지배층과 피지배층, 즉 ‘착취하는 사람들과 착취당하는 사람들’만이 존재하는 구조로 파악했다. 그리고 전자는 허가받은 흡혈귀라 할 수 있는 양반 계층의 관리들이고, 후자는 전체 인구의 4/5를 차지하고 있는 하층민으로서 하층민들의 존재 이유는 흡혈귀에 피를 공급하는 것이 일이라고 설명했다.05 이렇게 상극의 이치에 지배된 병든 조선 사회의 모습은 상제님께서 “이제 천하 창생이 진멸할 지경에 닥쳤음에도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오직 재리에만 눈이 어두우니 어찌 애석하지 않으리오.”(교법 1장 1절)라고 진단하신 세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선말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부조리는 피지배층인 기층민의 생활과 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하고, 그 결과 삶의 터전을 상실한 절대다수의 최하층민은 굶주림과 추위에 허덕이는 극빈 상태로 전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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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이 시기를 전후로 조선말의 대중매체인 신문과 잡지에서는 근대적 의미인 ‘위생(衛生)’과 관련된 수많은 기사가 등장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06 당시 개화파의 주도로 갑오개혁(甲午改革: 1894년 7월~1896년 2월)을 추진한 조선 정부는 개화 정책의 하나로 위생국(衛生局)과 위생경찰(衛生警察)을 설치하고 대대적인 위생 운동을 전개했다.07 이들 개화파의 궁극적 목적은 위생을 통한 질병 퇴치와 문명국가의 건설이었다. 1899년에는 괴질인 콜레라[호열자(虎列刺)], 이질(痢疾), 두창(痘瘡) 같은 전염병이 유행하자 위생과 관련한 「호열자 예방 규칙」이 발표되었고08, 이 시기를 계기로 의학적 지식이 사회 전반에 보급되면서 위생과 청결에 대한 계몽적 담론을 형성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근대적 위생개념이 사회 전면에 등장하면서 전염병의 원인으로 지목된 불결함은 가장 시급한 척결의 대상이 되었다. 언론매체에 소개된 위생론은 대부분 기거(起居)와 음식(飮食)이 이루어지는 집안의 불결함과 잘못된 습관을 고치는 청결에 계몽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09
  여기서 식불언과 침불언이라는 가르침이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단서를 발견하게 된다. 바로 조선 말기에 삼정의 문란으로 야기된 피폐한 민생경제와 문명국가의 건설을 위해 기획된 위생 담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신문기록을 볼 때 계몽적 교육내용이었던 위생의 문제가 많은 사람의 관심 대상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위생 담론의 전개 과정에서 발생한 부정적 측면인 차별과 억압이 만연했다는 사실 또한 간과할 수는 없다. 근대 위생 담론은 문명과 야만이라는 이항대립, 즉 야만의 문명화로 설정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도식화된 위생론은 민중들의 삶을 도리어 통제하고 억압하는 방향으로 드러났다.10 당연히 계도의 대상은 상대적 약자이면서 가렴주구와 수탈로 생활 경제가 파탄에 이른 가난한 기층민에 더욱 집중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 전반에서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문명과 야만이라는 위생 담론에 근거하여 상대적 약자인 기층민의 먹고 자는 문제를 비하하고 조롱하는 비인간적 차별행위를 서슴지 않았으리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먹는 것과 자는 것에 대한 근원적 문제는 결국 우리가 삶을 영위하고 생존을 지속하기 위해 꼭 필요한 활동이자 긍정되는 욕구라는 점이다. 인본주의 심리학을 주창한 매슬로(Maslow, 1908~1970)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생리 욕구, 안전 욕구, 애정과 소속 욕구, 자아존중 욕구, 자아실현 욕구]로 구분하고 아래 단계가 만족하지 못하면 그 위 단계를 추구하는 것은 어렵다고 한다. 그는 1단계 생리 욕구인 식욕과 수면욕 등이 충족될 때 더 높은 차원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11 그리고 이러한 생리적 욕구의 결핍과 불만은 부정적 감정인 의심, 이기심, 광기, 증오, 분노 등을 만들어 내는 원인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12 매슬로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의 생활에서 비롯되는 다양한 활동과 성취는 곧 먹고 자는 욕구에 기반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조선말 암울한 질곡에 빠진 기층민들에게 먹고 자는 일은 예의와 위생의 문제보다 앞서는 생존의 문제였다. 그리고 그들이 먹고 자는 일상적 행위는 생리적 욕구로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 타인의 궁핍한 생활 형편을 위생론에 근거하여 야만의 풍속이라고 함부로 말한다면 상대방의 열등감을 조장시켜 종국에는 원한을 쌓게 하고 척을 맺게 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므로 상제님께서 말씀한 식불언과 침불언의 가르침은 조선말 사회문화구조에서 남의 열악한 식사와 잠자리에 대하여 상극적인 비하나 조롱의 행위를 하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그것은 『전경』에 “빈천하고 병들고 어리석은 자가 곧 나의 사람이니라”(교법 1장 24절)라고 하신 말씀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직접적인 민중들의 아픔에서 비롯된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식불언과 침불언을 조선말 시대적 상황에서 살펴보면 당시에 경제적 착취와 근대의 위생 담론에서 비인간적인 사회적 차별로부터 고통받는 기층민들을 보호하고자 하셨던 상제님의 뜻이 담긴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상극으로 인명 경시가 만연하던 선천에서 인간존중과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신 것으로 볼 수 있다.


Ⅳ. 나가는 글

 

  지금까지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식불언과 침불언의 가르침을 문화적 상대주의 관점과 조선말의 시대적 상황에서 살펴보았다. 상제님께서는 『논어』의 “식불어 침불언”을 인용하여 “식불언”과 “침불언”이라 말씀하시고 이를 “먹는 것을 말하지 말며, 남의 누행을 말하지 말라.”고 하여 타인에 대한 윤리적 실천의 덕목으로 가르침을 주셨다. 이글은 식불언을 ‘먹는 것을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측면에서 살펴보면 침불언을 ‘자는 것을 말하지 말라’고 하지 않고 왜 ‘남의 누행을 말하지 말라’고 말씀을 하셨을까? 라는 논자의 어설픈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상제님께서 침불언을 “남의 누행을 말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은 ‘자는 것을 말하지 말라’는 직역(直譯)과 연관해서 이해하면 ‘잠잘 때 드러나는 타인의 단점을 말하지 말라’는 것으로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식불언과 침불언의 가르침은 문화상대주의 입장에서 설명이 가능한 보편적 윤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가르침은 상제님께서 조선말 상극적 사회문화구조에서 열악한 기층민의 생활양식을 비하하고 조롱하지 말라는 민중들의 교화내용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식불언과 침불언은, 즉 “먹는 것을 말하지 말며, 남의 누행을 말하지 말라”는 교훈은 상극을 극복하고 상생을 추구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서 통용되는 보편타당한 도덕적 규범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이타적인 실천행위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지켜야 할 수도의 가르침인 “언덕을 잘 가지라”는 훈회(訓誨)의 준칙과도 연결된다.

 

 

 

 


01 『論語』, 「鄕黨」, “食不語 寢不言.”
02 류종목, 『논어의 문법적 이해』 (서울: 문학과 지성사, 2000), p.337.
03 『論語集註』, “答述曰語, 自言曰言. 范氏曰, 聖人存心不他, 當食而食, 當寢而寢, 言語非其時也. 楊氏曰, 肺爲氣主而聲出焉, 寢食則氣窒而不通, 語言恐傷之也. 亦通.” 범씨(范氏)는 북송의 학자인 범조우(范祖禹, 1041~1098)로 『자치통감(資治通鑑)』의 편찬에 참여하였고, 저서로는 『범태사집(范太史集)』이 있다. 양씨(楊氏)는 북송의 학자인 양시(楊時, 1053~1135)로 정자(程子)의 학술을 계승한 정문(程門四弟子)의 한 사람이고, 저서로는 『구산집(龜山集)』이 있다.
04 우윤, 『전봉준과 갑오농민전쟁』 (서울: 창작과 비평사, 1993), pp.74~80.
05 이사벨라 비숍,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신복룡 옮김 (서울: 집문당, 2014), p.423.
06 특정한 행정조직을 통해 건강에 유익하도록 조건을 갖추거나 대책을 세운다는 근대적 ‘위생’ 개념은 일본 메이지정부(明治政府)의 서구사찰단원이었던 의사 나가요 센사이(長與專齊, 1838~1902)에 의해 창안되었다. 신규환, 「위생의 개념사」, 『동방학지』 138 (2007), p.179.
07 신규환, 「국가 위생경찰체제와 국가의료의 형성」, 『동방학지』 139 (2007), p.139. 
08 「호열자 예방 규칙」, 《독립신문》 1899년 9월 4일.
09 「위생론 제3 가옥과 변소」, 《대한매일신보(국한문)》 1906년 11월 18일.
10 박대현, 「‘국민’ 담론 형성과 균열의 기원」, 『한국문학논총』 45 (2007), p.255.
11 에이브러햄 매슬로, 『매슬로의 동기이론』, 소슬기 옮김 (부산:유엑스리뷰, 2018), pp.38~41.
12 에이브러햄 매슬로, 앞의 책, pp.12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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