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순진리에 감화된 서양인, 프루너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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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1.09 조회1,661회 댓글0건본문
연구위원 박인규
1995년 입도한 후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선각에게 이런 교화를 들었다.
독일에 프루너 박사라는 서양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기독교의 종말론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 학자였습니다. 종말론에 의하면 세상이 종말할 시기에 하나님이 이 세상에 출현하시어 선과 악을 심판하시고 신천지를 연다고 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도둑처럼 몰래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프루너 박사는 당시의 어지러운 세상의 상황을 보고 절대자 하느님이 혹시 벌써 왔다 가신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 세계의 종교를 살펴보고 연구해보기로 하였습니다.
서양의 종교 상황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그는 하느님이 오셨다면 서양이 아닌 동양으로 오셨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먼저 중국으로 가서 중국의 여러 종교를 탐문하였지만 종교를 억압하는 공산주의 아래에서는 설령 하느님이 오셨다하더라도 그 가르침이 펼쳐질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중국을 떠나 일본으로 가 일본의 여러 종교를 연구 조사하였지만 그곳에서도 하느님이 오셨다는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아직 하느님이 오시지 않은 것이라 생각하고 독일로 돌아가려고 하였는데, 지인의 권유로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한국을 방문하였던 그는 한국에 여러 신종교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느님이 오셨다면 기존의 종교가 아닌 새로운 종교로 오셨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기독교에서 예수가 유대교 밖에서 온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한국의 신흥종교를 유심히 관찰한 결과 대순진리회의 구천상제님이신 강증산 성사님이 바로 인간의 몸으로 오신 하느님이심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는 도전님을 뵙고 『전경』을 연구하면서 대순진리에 크게 감화되었습니다. 진리를 발견하였다는 것에 너무나 기뻤던 그는 그 후 본국에 돌아가서 대순진리와 관련된 박물관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독일의 한국 유학생들을 만나게 되면 그들에게 한국 땅에 하느님이 강림하셨음을 열정적으로 알려주었습니다.
당시 이 교화 내용을 상당히 재미있게 들었다. 정작 한국인들 중에서도 우리나라에 하느님이신 구천상제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신 것을 아는 사람이 드문데 벽안의 외국인이 그 사실을 알았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너무나 엄청난 진리를 가깝게 두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음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외국의 전문 지식을 갖춘 학자는 이렇게 대순진리에 감화가 되는데 어째서 어떤 사람들은 오해를 하고 색안경을 끼고 볼까라는 의문이 들면서 아마 그것은 인간의 교만과 편견 그리고 어설피 아는 얄팍한 지식때문이라는 해답을 스스로 얻기도 하였다. 제대로 아는 사람일수록 그리고 그 앎의 과정이 성실하고 진실한 사람일수록 도의 진리를 알게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 후로도 가끔 교화나 도담에서 프루너 박사와 관련하여 위와 유사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교무부 연구위원이 된 후 연구를 하던 중 서울대 종교학과 김종서 교수의 저서인 『서양인의 한국 종교 연구』에서 그의 정확한 이름을 알게 되었다. 이 책에서 김교수는 프루너가 한국 신종교 전반에 걸쳐 다양한 글을 썼으며 주로 한국 사회에서 신종교가 어떻게 발전해 왔고 그 신종교들이 현 사회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어떤 대안과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지에 관심을 두었다고 한다.01 실제 그가 쓴 몇 편의 논문들을 확인하였고 서울대 도서관을 검색하여 읽어볼 수 있었다.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쓰인 것이라 비록 상당한 세월이 흘렀지만 그의 대순진리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프루너의 삶과 대순진리에 대한 연구

게르노트 프루너(Gernot Prunner)는 1935년 8월 23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건축가의 아들로 태어났다.02 비엔나대학교에서 중국어, 일본어, 산스크리트어 등을 공부하였다. 1961년에 그는 국립대만대학교의 인류학과 고고학 센터에서 연구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1964년 독일의 마인츠대학교에서 인류학과 중국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5년에는 함부르크 민족학 박물관의 큐레이터 및 동양부장(東洋部長)이 되었다.
그의 다방면에 방대한 지식을 갖춘 호기심 많고 열정으로 가득 찬 학자였다. 그는 일본어와 중국어에 능통하였으며 일본과 중국의 종교와 예술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앞에서 언급한 교화에서처럼 1965년 그는 일본을 방문하여 일본의 종교와 예술에 관한 연구를 하였다. 일본에 하느님이 오심을 확인하려는 목적으로 일본의 종교를 연구하였는지는 그의 생애에 대한 자료에서는 확인해볼 수는 없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추측은 해볼 수 있겠다. 다음 해인 1966년에는 중국을 방문하여 중국의 소수민족과 민간신앙에 대해 연구하였고 이듬해에 그에 관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즈음 그는 전 세계에서 신흥종교가 활발하게 생성되고 있는 현상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는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 세계 어디에선가 아마 적어도 또 다른 한 사람의 예언자가 참된 메시지를 받았다고 확신해서 또 다른 종교가 태어나고 있다고 하였다.03 1976년에 프루너는 독일 폴크스바겐재단의 후원을 받고 한국의 신흥종교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 한국에 오게 되었다. 그가 대순진리회와 인연을 맺은 것이 바로 이때쯤인 것 같다. 이 해에 도주님 탄강치성에 대해 논문을 썼기 때문에 그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논문의 영어 제목은 「The birthday of God: a sacrificial service of Ch?ngsan’gyo」04이며 코리아저널(Korea Journal)05에 실렸다.
프루너 박사는 이 논문에서 당시 한국에 300개가 넘는 신흥종단이 활동하고 있는데 그 중 58개가 상제님의 가르침을 근거로 하고 있다고 한다. 그 중 가장 큰 단체가 대순진리회라고 밝히고 있으며 상제님의 강세와 생애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하였다. 또한 도주님의 감오득도, 무극도의 창도와 화천 그리고 도전님의 종통계승에 대해 비교적 자세하게 밝히고 있다. 대순진리회의 교리, 의례 및 체계, 영대의 15신위, 치성일과 치성의 의미에 대해서도 서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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