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부(金一夫)의 영가무도(詠歌舞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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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1.10 조회1,468회 댓글0건본문
연구위원 신상미
금구 내주동을 떠나신 상제께서는 익산군 이리(裡里)를 거쳐 다음날 김 일부(金一夫)를 만나셨도다. 그는 당시 영가무도(詠歌舞蹈)의 교법을 문도에게 펼치고 있던 중 어느 날 일부가 꿈을 꾸었도다. 한 사자가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일부에게 강 사옥(姜士玉)과 함께 옥경(玉京)에 오르라는 천존(天尊)의 명하심을 전달하는도다. 그는 사자를 따라 사옥과 함께 옥경에 올라가니라. 사자는 높이 솟은 주루금궐 요운전(曜雲殿)에 그들을 안내하고 천존을 배알하게 하는도다. 천존이 상제께 광구천하의 뜻을 상찬하고 극진히 우대하는도다. 일부는 이 꿈을 꾸고 이상하게 생각하던 중 돌연히 상제의 방문을 맞이하게 되었도다. 일부는 상제께 요운(曜雲)이란 호를 드리고 공경하였도다. (행록 2장 2절)
상제님께서 인심과 속정을 살피고자 주유의 길을 떠나셨을 때 제일 먼저 만난 이가 김일부(金一夫, 1826~1898)였다. 김일부는 상제님을 뵙게 될 당시 영가무도(詠歌舞蹈)의 교법을 문도에게 펼치고 있었다. 그는 후천역(後天易)이라고도 하는 정역(正易)을 찬술한 인물로 훗날 상제님께서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행하실 때에 김일부에게 청국(淸國)의 명부(冥府)를 관장하는 직책을 맡기기도 하셨다.01 『대순회보』에서는 김일부의 생애와 정역사상02에 대해 여러 차례 다루었으나 그의 영가무도에 대해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았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김일부의 영가무도가 어떤 것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1. 영가무도의 유래와 ‘영동천심월(影動天心月)’의 깨달음
김일부는 조선조 성종 때 좌의정을 지냈던 광산(光山) 부원군 김국광(金國光, 1415~1480)의 13세 후손으로 아버지 김인로(金麟魯, 1801~1845)와 어머니 대구서씨(大邱徐氏, 1804~1853) 사이에서 2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족보명은 재일(在一)이고, 초명(初名)은 재악(在樂)이요, 자(字)는 도심(道心), 초호(初號)는 관벽(觀碧), 개명(改名)은 항(恒), 개호(改號)는 일부(一夫)였다. 그가 태어난 곳은 지금의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남산리 당골 오도산(五道山)의 기슭이었다.03




종합해 보면 유교적 성향의 영가무도는 선비의 정신 수양을 위한 운동법이었다. 김일부의 증손자 또한 유교적 성향의 영가무도를 주장한다. 그러나 종교인들은 영가무도를 종교적 성향의 수행으로 구원을 목적으로 후천세계에 갈 수 있는 하나의 주문 수련법으로 보았다. 이에 따르면 달의 위상(位相)으로 선천세상은 가고 후천세상이 올 것을 깨달은 김일부는 영가무도를 후천세상으로 갈 수 있는 하나의 방법으로 내세운 것이 된다. 이러한 엇갈리는 주장은 『정역(正易)』에 관한 성학적(聖學的) 연구보다 김일부의 후학들이 김일부를 개인적으로 자신이 믿고 있는 교단의 교주로 삼아 연구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김일부의 영가무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의 저서인 『정역(正易)』을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日月光華兮 琉璃世界 해와 달이 빛이 나니 밝고 맑은 유리세계 되는도다.
世界世界兮 上帝照臨 유리세계 되고 보니 상제께서 오시어 굽어 살피시는 것이로다.
『정역(正易)』 「십일음(十一吟)」 후면(後面)에서
《대순회보》 1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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