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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찰인사케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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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순종교문화연구소 작성일2021.12.11 조회1,84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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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종교문화연구소 최치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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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도통주」에서 우리가 기원하는 것은 상통천문(上通天文), 하달지리(下達地理) 그리고 중찰인사(中察人事)이다. 이를 직역해보면, 사람을 중심으로 위아래의 하늘과 땅에 통달하고 그 가운데서 사람의 일을 살핀다는 뜻을 지닌다. 여기서 인사(人事), 즉 사람의 일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옛적부터 상통천문과 하달지리는 있었으나 중찰인의(中察人義)는 없었나니 이제 나오리라.(교법 3장 31절)”에서는 사람의 일을 인의(人義)라고 언급하고 있다. 인의는 사전적 의미로 “사람으로서 행해야 할 도리”이다. 『공자가어』에 언급된 인의를 통해 그 의미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무엇을 인의(人義)라고 하는가? 아버지는 자애롭고, 자식은 효도하며, 형은 선량하고, 동생은 공경하며, 남편은 의롭고, 아내는 따르며, 어른은 은혜롭고, 어린이는 유순하며, 임금은 어질고, 신하는 충성스러운 것이니, 이 10가지를 인의라고 한다.”01

 

   『공자가어』에서의 그 맡은 바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는 정명(正名) 사상에 기반하여 설명되고 있다. 정명은 각자의 이름에 해당하는 덕을 실현하여 예(禮)에 합당한 질서를 구축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안정을 구하고자 하는 사상이다. 제나라 경공이 정치에 대해 공자에게 묻자 공자는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답게 되는 것입니다.(『논어』 12:11, 君君臣臣父父子子)”라고 답한다. 공자는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각자의 실상(實)을 이름(名)에 부합하도록 해야 한다고 여겼다.02 실제의 군, 신, 부, 자가 그 이름에 부합하여 그에 따른 덕을 실현한다면, 예를 지켜 질서를 바로 세우는 것이 되며, 이를 통해 천하에 도가 바로 서게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의를 유교적 정명이나 도덕적 행위, 혹은 인간의 도리로 이해한다면, 중찰인의가 지금껏 없었다는 상제님의 말씀이 언뜻 이해되지 않게 된다. 여러 성인은 물론이요, 기존에 인간으로서 도덕적 삶을 구현한 사람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순사상에서 언급하는 중찰인사나 중찰인의는 기존의 사료적 해석과는 다른 대순사상만의 특별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궁금증에서 본 글은 중찰인사나 중찰인의에 대한 사료적 고찰과 대순사상의 기존 연구에서 이에 대한 여러 관점을 정리하고, 더 나아가 대순사상에서 언급되는 중찰인사에 대한 의미는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2. 사료에서의 중찰인사
  우선 상통천문, 하달지리, 중찰인사는 상중하로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을 구분한다는 것에서 삼재(三才) 사상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삼재 사상은 천지인이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로 세계를 인식한다. 이러한 유기적 세계관에서 인간은 필연적으로 천지의 변화로부터 영향을 받게 된다. 즉, 인간은 스스로 삶을 보전하기 위해 천지의 변화를 감지하여 그것을 해석하고 그 변화에 부합한 행동을 취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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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역』 「계사전」의 “역(易)은 천지에 준하는 까닭에 능히 천지의 도를 다스릴 수 있다. ‘우러러 천문을 관측(仰觀天文)’하고 ‘굽어보아 지리를 관찰(俯察地理)’하기에 무형과 유형의 사물에 대하여 원인을 아는 것이다. 시작의 근원을 돌이켜 끝을 반추하므로 삶과 죽음에 관한 설을 안다.”03에서의 ‘앙관천문’과 ‘부찰지리’는 고래로부터 천지의 변화를 알고자 하였던 인간의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즉, 이를 통해 인간은 변화의 원인을 파악하여 사전에 대처함으로써 죽음을 피하고 삶을 영위하고자 한 것이다. 인간은 천지에 속한 존재이기에 천지자연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생명을 담보할 수 없다. 그리하여 천지의 변화를 파악하는 것은 곧 생사의 문제에 직결된 것으로 이러한 변화를 파악하려는 행위가 곧 ‘앙관천문’과 ‘부찰지리’인 것이다. 『주역』에서 언급되는 ‘앙관천문’과 ‘부찰지리’는 후대로 오면서 성인의 능력으로 여겨지거나 지도자가 갖추어야 하는 역량으로 간주 된다.

 

『주역』에 말했다. “우르러 천문을 관측(仰觀天文)하고 굽어보아 지리를 관찰(俯察地理)하기 때문에 무형과 유형의 사물에 대하여 원인을 아는 것이다.” 천문과 지리와 인정(人情)의 효험(效驗)을 마음에 보존하면 슬기로운 지혜의 보고(寶庫)를 이룬다. 이 때문에 고대의 성왕(聖王)이 이미 천하에 군림하여 반드시 사시(四時)를 변경하며, 악률(樂律)과 역법(曆法)을 제정하며, 천문을 고찰하며, 계절의 변화를 추측하고 영대(靈臺)에 올라 길흉이 나타나는 기운을 살폈다. 그러므로 요임금(帝堯)은 “아, 너 순(舜)아. 하늘이 명하는 제위(帝位)의 차례가 너의 몸에 있으니, 진실로 중정(中正)의 도를 지켜라. 온 천하의 백성이 곤궁에 빠지면 하늘이 주는 녹위(祿位)가 영원히 끊어질 것이다.” 하였고, 『서경』에는 “선기옥형(璿璣玉衡)으로 천체를 살펴서 칠정(七政)을 일치시키라.” 하였으니, 선기는 북진(北辰)·구진(勾陳)·추성(樞星)을 이른다.04

 

  전한(前漢) 말 지어진 설화집인 『설원』에서는 천문과 지리 그리고 인정(人情), 이 세 가지에서 배울만한 효과나 작용을 마음에 보존하여 지혜를 이룰 것을 언급한다. 그리고 옛 성인들은 이러한 지혜를 가지고 천지의 변화를 예측하여 길흉을 살폈음을 말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제왕의 위치에 있는 자는 하늘의 명을 받는 위치로 천문과 지리를 살피는 동시에 천체의 운행에 맞춰 정치를 시행하며, 스스로 마땅히 중도를 지켜야 함을 언급하고 있다. 즉, 성인은 천문과 지리의 기운을 살펴 인사에 이를 적용하거나 나라를 경영해야 하며, 인의나 인륜을 다함으로써 천지와의 조화를 이룬다고 볼 수 있다.
  중찰인사에 관련한 옛 사료들을 더 찾아보면 천문과 지리를 살펴서 이를 인간사에 참고하고 적용한다는 의미로 ‘참제인사(參諸人事)’05, 삼재를 살피는 능력을 마땅히 갖추어야 한다는 의미에서 ‘중청인사(中請人事)’06의 표현이 사용되기도 하며,07 인의나 인륜을 실천해야 하는 인간이라는 의미에서 ‘중찰인륜(中察人倫)’08 등의 어휘를 사용하기도 한다.

 

신이 생각하기에, 성인은 위로 천문을 통하고, 아래로 지리에 달하며, 가운데로 인사를 살피니(中察人事), 이 셋은 함께 갖추는 것으로 누락 할 수가 없습니다. 대개 천시의 적부적과 지리의 유불리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곧 하늘과 땅에 있는 것입니다. 오직 사람의 화불화(和不和)만이 자기 스스로 사용하는 것이니 가장 믿을 만한 것입니다.09

 

  조선 후기 가암 김귀주(可庵 金龜柱, 1740-1786)의 문집인 『가암유고』에서는 삼재를 살피는 것 중에서 인사를 살피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늘의 때에 적절히 들어맞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지형의 유리함과 불리함은 사람이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형세를 맞춰 적응해야 한다. 하지만 중찰인사의 경우 사람이 화합하고 불화함은 스스로 사용하는 것으로 제어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그리하여 사람의 인사는 하늘의 때와 땅의 형세에 맞추어 조화롭게 시행할 수 있으며, 이런 까닭에 중찰인사의 화불화만이 의지하여 믿고 행할 수 있는 것이라 언급한다고 볼 수 있다.
  사료에서 중찰인사는 대략 세 가지 의미로 축약될 수 있다. 첫째는 천문과 지리를 살펴서 이를 인간사에 참고하고 적용함을 말한다. 둘째는 삼재를 살피는 능력을 마땅히 갖추어야 한다는 것에서 성인이나 지도자의 역량이나 자질을 상징한다. 셋째는 삼재와의 조화를 위해 인의나 인륜을 실천해야 하는 주도적 인간상을 의미한다.
  유기적 세계관과 봉건 이념의 융합으로 인해 당시의 중찰인사는 주로 성인이나 제왕을 중심으로 한 지도의 이념적 성격으로 언급되고 있다. 또한 천문과 지리는 인간의 주재를 벗어나는 영역으로 살펴서 참고하거나 이러한 변화에 순응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대순사상의 이상적 인간상이 갖추게 되는 중찰인사는 대순진리회라는 도를 중심으로 해석되고 있다. 그렇다면 대순사상에서는 이러한 중찰인사가 어떻게 논의되어 왔을까?

 

 

3. 중찰인사에 대한 다양한 관점
  우선 언급하고자 하는 중찰인사에 대한 해석은 성스러움[聖]과 세속적[俗]인 것에 대한 조화로 보는 시각이다. 이는 과거의 도(道)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속세와 떨어져 수도를 행하거나 자신의 종교적 완성을 추구했다는 것에서 설명되어 진다. “과거의 역사에서 세속을 초월하여 자유롭게 살다 간 은둔의 도인들이 있었다고 하여 지금 그런 모습들을 흉내 내는 것은 천하의 형세를 모르는 것이며, 개벽과 혁신의 새 세상에 맞지 않는 구태의연함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대순의 도는 중찰인사(中察人事)의 도이기 때문이다. 이 중찰인사라는 말은 사회와 도문(道門)의 조화로운 공존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10 즉, 성과 속을 구별하는 수도법은 변해버린 천하의 형세와 부합되지 않는 수도법이다. 수도는 세속에서 그 성스러움을 드러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순진리회의 수도인들은 ‘중찰인사의 도’로 사회 사람들 가운데서 수도를 한다고 여기는 것이 중찰인사에 대한 첫 번째 관점이다.11 


인의(人義)를 중찰(中察)하기 위해 마음을 부지런히 하여 인세(人世)에 수행(修行)의 적절한 살핌을 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12

 

인간사 속에서 대순진리를 구체적으로 적용하여 실천해 나가는 일이 바로 중찰인사(中察人事)이며 윤리도덕의 실현이다.13


  도와 사회와의 조화 즉 성과 속의 조화라는 관점은 나아가 이러한 조화를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 언급하게 한다. 이에 관해 기존 연구에서는 인의(人義)나 윤리도덕의 측면에서 조화를 위한 인간의 수행을 말하고 있다. 특히, 대순진리의 실천이 곧 중찰인사이고 윤리도덕의 실현이라고 지적하고 있는데, 대순진리는 곧 대순진리회의 종지를 말하는 것으로 종지를 중심으로 한 윤리도덕의 실천을 언급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중찰인사에 대한 두 번째 관점이라 할 수 있다.
  중찰인사에 대한 세 번째 관점은 인간의 일이라는 인사를 마음의 영역에서 인지하려는 견해이다. 그리하여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렵다는 관점에서 “중찰인의(中察人義)는 없었나니 이제 나오리라.”라는 구절을 이해한다.14 이를 바탕으로 옛적에 성인들은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지 못하였다고 여김과 동시에 이와 달리 상제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며 이를 통해 사람들의 척과 원을 풀 수 있는 천지공사를 보셨다고 언급한다.15 즉, 상제님은 중찰인사나 중찰인의에 통하고 계시기 때문에 기존의 성인들과 그 차원을 달리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네 번째 관점은 중찰인사를 도통으로 보는 것이다. “지난 날에는 도통이 나지 아니하였으므로 도가에서 도통에 힘을 기울였으나 음해를 이기지 못하여 성사를 이룩하지 못했도다. 금후에는 도통이 나므로 음해하려는 자가 도리어 해를 입으리라.(교운 1장 40절)”, “옛적부터 상통천문과 하달지리는 있었으나 중찰인의는 없었나니 이제 나오리라”의 두 구절을 같이 이해하면 중찰인의가 없었다는 말이 곧 지난 날에 도통이 없었다는 것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도통에 대한 이상은 아직 그 누구도 실현한 바가 없으며 오로지 신도에 나타나는 천부의 종통 안에서 부여되는 것임을 말해주고 있으며, 이는 도통이 인존과 중찰인의라는 개념과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16라고 이해하기도 한다.

 

 

4. 중찰인사와 신봉어인
  중찰인사에 대한 다양한 견해 가운데 우리는 무엇을 중심으로 이를 이해해야 할까? 『전경』, 『대순지침』, 『대순진리회요람』에서는 중찰인사에 대한 직접적인 해석이 없어 이를 특정하여 정의 내리기에는 모호한 측면이 있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중찰인사의 해석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다행히도 도전님 훈시 말씀 가운데 중찰인사에 대한 언급이 있어, 본 장에서는 이를 기준으로 삼아 그 의미에 대해 이해해 보고자 한다.

 

지금 세상에서 평화, 인권을 주장하나 우리 진리가 아니고서는 평화, 인권이란 있을 수 없다. “천존(天尊)과 지존(地尊)보다 인존(人尊)이 크니 이제는 인존시대라.”고 하시고, “옛적부터 상통천문(上通天文)과 하달지리(下達地理)는 있었으나 중찰인의(中察人義)는 없었나니 이제 나오리라.”하셨다. “상통천문(上通天文)하고 하달지리(下達地理)하고 중찰인사(中察人事)케 하옵소서”에서 중찰인사는 도통을 뜻하며, 이것은 앞으로 모든 권리나 그 어떠한 것이라도 사람이 다 갖는다는 뜻이다. 그러니 사람이 가장 높아진다. 상제님께서 모든 인존도수를 해원상생 도수로 봐 놓으셨다. 그것을 사회에서는 평화, 대화라 말하는데, 그 시기가 오면 실(實)보다 허(虛)가 먼저 동한다. 옛날에는 신봉어천(神封於天)으로 모든 권한을 하늘이 맡아서 행사하여 천존시대였고, 현재는 신봉어지(神封於地)로 땅이 맡아서 행사하니 지존시대다. 지금은 지존시대가 다 되었다 하나 이사 갈 때 방위 보고 묘자리를 보는 등, 아직도 땅에 의존하는 것은 땅에서 권한을 가졌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신봉어인(神封於人)으로 이 권한을 사람이 맡아서 하게 된다.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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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찰인사는 도통을 뜻한다”의 훈시는 앞서 언급한 관점 가운데 네 번째 관점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중찰인사가 도통을 뜻하는 것에 중찰인의·신봉어인·인존의 개념이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이다. 사람에게 신이 봉해지는 시대인 신봉어인에 이르러서 사람은 천지와 우주의 모든 권한을 가지고 일을 행하게 된다. 이때의 일은 인간의 일인 인사(人事)이지만 모든 권한을 담당하므로 이것은 천지의 일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즉, “대순사상에서 중찰인사의 인사는 천지의 모든 권리를 사람이 갖는다는 의미”를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그 가운데서 인사를 살피는 것’은 인간이 중심이 되어 천지를 주재하는 ‘신봉어인의 도통’을 지칭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닦는다는 게 앉아서 태을주 읽고 주문 읽는 것으로 되는 게 아니다. 물론 신도(神道)이니 주문을 읽으면 신명이 응한다. 신명이 계시기 때문에 주문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닦는다는 것은 운수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을 잘 실천해 나가는 것이다. 그 조건의 근본이 인륜 도덕이다. …  우리가 도를 닦아 나가는 데 있어서 인륜 도덕을 지켜야 잘 닦는다고 하고, 잘 닦았을 때라야 대운 대통이 된다.18

 

  한편으로 중찰인사를 중찰인의와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이유는 사람에 있어 도통을 위한 수도의 핵심은 인의에 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신이 봉(封)해짐과 천지를 주재하고 모든 권한을 담당할 수 있는 기본조건은 인의이다.19 그러므로 대순사상의 중찰인의에서 인의는 단순히 인륜도덕의 실천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륜의 실천으로 도덕을 밝혀 도통을 받는 것’ 20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접근할 때 비로소 우리는 왜 상통천문과 하달지리는 있었으나 중찰인의는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 사료에서 보듯이 천문과 지리를 살펴서 이를 인간사에 참고하고 적용한다거나, 성인이나 제왕의 상통천문과 하달지리의 자질이라는 측면은 예부터 존재하였다. 하지만 여기서 상통천문과 하달지리는 어디까지나 천지에 순응하여 이를 인간사에 적용한다는 의미일 뿐이다. 또한 사료에서 중찰인의는 덕을 실현하여 예에 합당한 질서를 구축하여 사회적 안정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지만, 이를 통해 운수를 받거나 신봉어인의 도통을 이룬다는 의미가 아니다. 즉 이 구절은 이제껏 인의를 통한 도통법이 없었기 때문에 중찰인의가 없었으며 앞으로는 인의를 통한 도통법이 나오게 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대순사상에서 신봉어인의 도통은 천지를 주재하는 인간으로서 인사가 곧 천지의 일이자 우주의 일이 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상제님의 천지공사를 통한 인존 도수, 신봉어인 도수의 실현으로 가능한 것이다. 그러기에 천지공사 이전은 대순사상에서 언급하는 중찰인사와 중찰인의가 가능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평화와 인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현대에 인권은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와 자유를 말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사회와 국가에 한정되어 있다. 즉 사람으로서 누리는 권리이지 도통에서처럼 천지를 주재하는 권한이 아니다. 인권이라는 단어는 같지만, 그 의미나 범위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또한 신봉어인의 도통을 통해서 개개의 인간은 지극히 존귀하게 되어 자연히 서로를 존중하며 진정한 평화와 인권의 세상을 이룩하게 되는데, 이러한 세상을 곧 인존시대라 칭할 수 있는 것이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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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나가는 말


‘상통천문하고 하달지리하고 중찰인사’라고 도통주(道通呪)에 있듯이, 앞으로는 사람이 할 것이다. 쉽게 말해서 년·월·일·시·분·초·각까지 전부 사람이 맡는다. 천지를 다 운용해 나가는 것을 사람이 한다. 우리가 해나간다. 성·경·신으로 해야 한다. 도라고 보통 아는 작은 도통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천지를 운용해 나가는 것이다.22

 

  상통천문, 하달지리 그리고 중찰인사(中察人事)를 기원하는 주문은 「도통주」이다. 중찰인사가 도통을 뜻함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론일 수밖에 없다. 이전부터 ‘도’, ‘도통’, ‘중찰인사’, ‘인권’ 등의 말을 써왔지만, 그것은 대순사상에서 언급하는 것과 범주와 내용 면에 있어서 큰 간격을 지니고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신봉어인이나 천지를 운용한다는 측면은 이제껏 존재하지 않았던 도통의 양태이다. 이는 오직 우주를 총할하시는 천존이 행하신 천지공사에 의해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수도인들은 상제님에 대한 믿음에 성심을 다해야 하며, 도통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가 성경신을 다해 수도해야 할 것이다.

 

 

 

 


01 『孔子家語』, 「標題句解孔子家語卷下」 제32편, “何謂人義오 父慈子孝兄良弟悌夫義婦聽長惠幼順君仁臣忠이니 十者를 謂之人義라.”
02 풍우란, 『중국철학사』, 박성규 옮김 (서울: 까치글방, 2017), p.102.
03 『주역』, 「계사전」, “易與天地準, 故能彌綸天地之道. 仰以觀於天文, 俯以察於地理, 是故知幽明之故知幽明之故, 原始反終, 故知死生之說.”
04 『說苑』, 卷18 「辨物」, 2章, “易曰 仰以觀於天文하고 俯以察於地理라 是故知幽明之故라하니라. 夫天文地理人情之效를 存於心이면 則聖智之府라. 是故古者聖王이 旣臨天下하야 必變四時하며 定律歷하며 考天文하며 揆時變하고 登靈臺하사 以望氣氛이라. 故堯曰 咨爾舜아 天之歷數在爾躬하니 允執其中하라 四海困窮하리라하고 書曰 在璿璣玉衡하사 以齊七政하라하니 璿璣는 謂北辰勾陳樞星也라.”
05 『藥圃集』, 속집 제4권 부록, “臣竊, 仰觀俯察, 參諸人事, 撥亂興衰, 顯有其兆. 歲星色靑, 一也. 大國專援, 二也. 民思討賊, 三也. 年穀屢登, 四也. 舟師得李舜臣爲將, 五也. 有此五者, 倭奴不足平也. 不此之顧, 而遽卽許和, 臣實痛之.”
06 『欽定四庫全書』, 「籌海圃編」 卷十一, “要之上適天文下達地利中請人事必兼此三者而後可以呂將否則不得乎.”
07 『賁需齋集』 卷2 「賁需齋先生文集」 䟽, 擬上時務封事, “上曉天文. 中察人事. 下識地理者. 是將帥之全材也.” 조선 시대 분수재(賁需齋) 강규환(姜奎煥, 1697-1731)의 문집에서는 삼재를 살피는 능력을 성인이나 제왕뿐만 아니라 장수에 있어서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08 『欽定四庫全書』, 「欽定國子監志」 卷五十四, “知天地人之事者盖上通天文下徹地理中察人倫三者明一赤已難矣.”
09 『可庵遺稿』, 卷22 「襍著」, “[立朝日錄, 甲申正月] 賤臣曰 聖人上通天文 下達地利 中察人事 三者俱不可闕 而盖天之時不時地之利不利 非人之所可爲 而卽在乎天在乎地者也 惟人之和不和 在於己之所使 而最爲可恃者也”
10 윤용태, 「조화로운 생활」, 《대순회보》 38 (1993).
11 금동호, 「금년 가을을 위한 각오」, 《대순회보》 16 (1990), “상극에서의 선천적 道는 하늘과 땅의 이치에 순응하면서도 자기만의 세계를 고집하려는 점과 일반 종교의 형식적인 경향을 진리와 行을 적절히 조화하는 가운데 숱한 사람들과의 관계안에서 자기 자신을 스스로 성숙시킬 수 있는 중찰인의 (中察人義)의 道를 세웠다는 점이다.”
12 박운성, 「수심(修心)과 실천(實踐)의 중요성」, 《대순회보》 14 (1989).
13 강남규, 「중찰인사(中察人事)와 윤리 도덕의 실현」, 《대순회보》 188 (2016).
14 교무부, 「선녀직금(仙女織錦)」, 《대순회보》 133 (2012), “『전경』에 ‘옛적부터 상통천문(上通天文)과 하달지리(下達地理)는 있었으나 중찰인의(中察人義)는 없었나니 이제 나오리라.’(교법 3장 31절)고 하셨습니다. 모두 사람의 마음은 헤아리기 어렵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15 박상규, 「修道속에 깨달은 점」, 《대순회보》 35 (1993), “그 동안 모든 성인들이 신명계의 명을 받들고 내려와서 이 땅에 지상선경을 세우려고 하였지만 실패하게 된 원인이 ‘중찰인의’ 즉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지 못했기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상제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척과 원을 풀고 막힘이 없게끔 도수를 짜놓으셨다.”
16 편집부, 「道通」, 《대순회보》 27 (1991).
17 『도전님 훈시』, (1989.4.12).
18 『도전님 훈시』, (1991.10.30).
19 교법 1장 42절 참조.
20 『대순지침』, p.37 참조.
21 『대순지침』, p.20, “(가) 우리 대순진리의 인존사상이 바로 평화 사상이다.”
22 『도전님 훈시』, (1993.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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