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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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21.01.30 조회1,571회 댓글0건본문
연구원 김귀만
인간 사회에서 권위는 늘 존재해 왔다. 과거나 현재나 할 것 없이 권위는 주로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관계에서 잘 드러난다. 임금과 백성, 부모와 자식, 상사와 부하뿐만이 아니라 교수와 학생,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도 겉으로는 확연히 드러나지 않지만, 둘 사이 관계의 지점에서 포착되는 힘의 치우침이 바로 권위와 관련되어 있다.
연운(緣運) 속에서 사람을 만나고 방면을 형성하며 수도하는 우리도 선각과 후각, 임원과 수반이라는 체계에서 권위가 드러난다. 그런데 공동체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권위 혹은 권위의 부재는 인간관계에서 여러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문제를 일으키는 권위에 대한 이해가 서로 다른 것이다. 권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권위에 대한 공통된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것은 ‘진정한 권위란 무엇일까?’라는 질문 속에서 답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권위(權威)란 무엇일까? 권위와 권력, 혹은 권위와 권위주의는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지금 나에게 발생하는 문제가 혹시 체계 속에서 발생한 권위와 관련된 문제가 아닌지 판단하기 위해서는 권위와 권력 그리고 권위주의에 대한 인식을 정확히 할 필요가 있다. 우선 권위란 다른 사람을 통솔하여 이끄는 힘이다.01 남을 지휘하거나 통솔하여 나를 따르게 할 때, 그것은 강제적으로 일어날 수 있고 또는 자발적으로 일어날 수도 있다. 만일 강제성을 띤다면 그것은 조직 내에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공인된 법이 이미 갖추어진 상태이다. 이러한 힘을 권력이라 한다. 반면 권력이나 위력으로 남을 억누르거나, 권위에 맹목적으로 순종하려는 태도를 권위주의라고 한다.02
권위와 권력은 모두 ‘권(權)’이라고 하는 한자를 가지고 있다. ‘권’은 원래 들저울에서 사용하는 저울추를 의미한다. 들저울은 맞저울처럼 양쪽에 접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한쪽에 물건을 매달고 다른 한쪽에서 저울추[權]를 움직여가면서 전체의 균형을 잡아 무게를 재는 기구다. 만일 저울추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저울은 당연히 무거운 쪽으로 기울고 말 것이다. 권위와 권력을 이해하는 데는 저울추가 자신을 ‘움직여’ 저울 전체의 수평을 유지하려는 성질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저울추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저울의 수평을 이루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만일 과거의 권력자들이 자신이 가진 권위나 권력이라는 추[權]가 목적이 아니라 단지 수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민심에 따라 자신의 권력을 잘 움직였을 것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권력과 권위가 일치되지 않았을 때,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분열상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상(商)나라 주왕(紂王)은 왕으로서 합법적 권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권력을 향락을 일삼는 데 썼고 그것이 잘못되었음을 간하는 신하를 잔인하게 죽였다. 왕실의 사치는 백성들의 세금과 노역으로 가능했으나 주왕에게 백성의 고통은 뒷전이었다. 이것을 보다 못한 제후들이 힘을 합쳐 주왕을 끌어내리게 된다. 반면 주나라 문왕(文王)이 영대를 짓는데 백성들이 함께 나서 몇 날이 안 되어 완성했다고 한다. 왕이라는 권력으로 백성을 사역에 동원했지만, 백성은 문왕의 선정에 감사한 마음이 있어 마치 자기 아버지의 일인 양 기쁘게 건물을 지었다는 것이다.03
주왕의 경우는 권력은 있으나 권위가 없을 때의 상황을 엿볼 수 있고, 문왕의 경우는 권력과 권위가 함께 있을 때 벌어지는 조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주왕은 자신에게 주어진 저울추를 움직이지 않고 자신에게 맞추도록 강요하다 결국 몰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에 문왕은 평소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저울추를 사용했으니 자신의 권위가 저절로 세워진 것이다.
권력과 권위의 괴리에 못지않게 권위주의 역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권위주의가 팽배한 조직에서는 리더의 잘못된 결정이 조직에 치명적인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권위주의는 리더의 탁월함과 의사결정의 합리성이 아닌 리더의 권위에 의해 강제되는 것이므로 리더가 잘못된 선택을 내려도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다. 권위주의의 문제를 비판하는 전형적인 예로 항공기 참사를 들곤 한다. 사고의 원인을 분석해보면 기장과 부기장 사이에 권위주의적인 문화로 인해 기장의 잘못된 판단을 부기장이 제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1997년에 발생한 대한항공 여객기 괌 추락 사고도 이러한 예에 속한다.04
우리의 체계 질서 역시 권위와 권력의 조화, 그리고 권위와 권위주의의 분별이라는 과제를 떠안고 있다. 더구나 인권과 평등을 강조하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상제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각자 어떻게 진정한 권위를 발휘할 수 있을까?
겉으로 위엄을 세운다고 해서 엄하게 보이고 권위가 서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올바른 수도를 하며 성(誠)·경(敬)·신(信)을 다할 줄 아는 도인이 됨으로써 타인으로부터 존경을 받고 또한 신뢰가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위엄이며 권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05
도전님께서 걱정하신 ‘겉으로 위엄을 세우는 행위’는 실상 권위보다는 권위주의를 말씀하신 것이다. 권위주의는 위계에 내재된 힘을 내세워 권위를 세우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전님의 말씀을 찬찬히 되짚어보면 권위는 원래부터 주어진 게 아니라 자신의 책임을 다하고 상호 존중하는 속에서 세워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올바른 수도를 하며 성·경·신을 다할 줄 아는 도인이 되는 게 우선이고, 이렇게 되었을 때 후각과 수반의 존경을 받게 되며, 이러한 신뢰 관계가 형성되었을 때 생기는 권위가 진정한 권위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도전님께서는 “아랫사람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존중함으로써 권위가 서지 않는 것이 아니고, 권위가 바로 선다.”06 라고 말씀하셨다. 이것 역시 진정한 권위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존중하고 그것으로부터 발생하는 아랫사람의 자발적인 수긍과 인정으로 생기는 것임을 알려주신 것이다.
저울추는 그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저울대를 통해 무게를 재는 수단일 뿐이다. 우리의 임원 체계 역시 상제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지 그것 자체가 목적은 아닐 것이다. 임원이라는 직위 자체를 목적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권력이나 권위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도전님께서도 “우리의 일에서 임원의 권력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07 라고 단언하셨다. 임원이 먼저 모자지정(母子之情)의 마음으로 수반의 마음에 맞추고 소통하는 것도 필요하다.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저울추를 움직여 권위주의를 허물고 타인과 소통하며 서로 간의 신뢰를 형성하는 것이 결국 상생이며, 이렇게 했을 때 비로소 진정한 권위, 상생적 권위가 생기는 것이다.
01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국어사전편찬실,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서울: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2009), p.790.
02 민중서림편집국, 『엣센스 국어사전』 (서울: 민중서림, 2004), p.304.
03 『맹자』 「양혜왕상」 참고.
04 박무성, 「조종석 위계문화」, 《국제신문》 2013. 3. 1. 참조.
05 《대순회보》 11호, 「도전님 훈시」.
06 「도전님 훈시」(1986. 7. 4).
07 《대순회보》 12호, 「도전님 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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