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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靑紗燭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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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1.20 조회1,18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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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 밝힌 길은

情人이 오시는 길

   

劫厄의 돌밭 길에

행여 님 채이실까

    

몸사루어 밤을 태우고

새벽차운 이슬로

  

남한강 벼랑위에

초롱되어 탑니다.

 

   

  어두운 밤에 빛만큼 사람의 마음을 안도케 하는 게 있을까? 하물며 달빛 없는 칠흑 같은 밤 한들거리며 앞장서는 청사초롱은 어떤가?

  치성날 도장은 여느 때보다 감동적이다. 한복 입은 도인들의 물결이 그렇고, 숭고한 도장의 자태가 또한 그러하다. 그곳에 청사초롱이 없다면 어떨까? 아마도 분위기는 많이 달라질 것이다. 도장의 어느 것 하나 중하지 않은 게 없겠지만 치성날 밤에 사람을 맞이하는 데 청사초롱의 역할은 생각할수록 큰 것이다.

  청사초롱(靑紗燭籠)이란 얇고 가벼운 깁(얇은 비단)으로 된 홍사(紅紗) 바탕에 청사(靑紗)로 단을 한 초롱을 일컫는 말이다. 초롱의 홍색은 양(陽)을, 청색은 음(陰)을 상징한다. 초롱은 철사, 놋쇠, 대나무, 나무 등으로 골격을 만들고 그 위에 종이나 깁을 발랐으며, 유리가 수입되면서는 유리를 끼우기도 하였다. 이때 종이를 바른 것을 지초롱(紙燭籠), 비단을 바른 것을 사초롱(紗燭籠)이라 한다.

  초롱 위에 자루를 달아 들고 다닐 때 편하게 한 것을 제등(提燈)이라 하는데 손잡이는 끈을 꼬아 만들거나 죽절 마디를 이용했다. 때로는 그 자루 손잡이를 원형이나 팔각형으로 만들어 비상용 초를 넣을 수 있게 만든 것도 볼 수 있다. 들고 다니는 제등 외에 궁중의 들보에 매달아 사용한 현등(懸燈)이 있었다.

  등의 형태는 원형, 사각형, 팔각형이 대부분인데, 도장(道場)의 등은 육각형이다. 등잔을 이용하여 불을 밝히면 등롱(燈籠), 초로 밝히면 초롱(燭籠)이라 한다. 롱(籠)은 새장을 의미하며 물건을 담는 그릇이라는 뜻이다. 굳이 청사등롱이라 않고 초롱이라 한 것은 초의 가치 때문이다. 지금은 초가 흔하지만, 옛날 밀랍이 귀하고 값이 비쌌을 때는 굉장한 사치품이었던 것이다. 실학자 이익(李瀷, 1681~1763)은 밀랍대신 기름등잔을 넣어 만든 등롱(燈籠)을 고안하여 혼례에 사용할 것을 장려하기도 했다. 이처럼 조선 초·중기까지도 절약을 위하여 초의 사용을 억제하였으므로 초롱이 많이 쓰이지 않았다. 궁궐에서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아 1746년 영조 때에는 왕의 거동 때 사초롱을 맨 등롱군(燈籠軍)과 등롱의 수(數)와 색(色)을 정하기도 하였지만 이의 시행은 1804년(순조 4)에 와서야 처음으로 실시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혼례식에 청사초롱을 쓰게 된 것은 각종 초가 양산되기 시작한 조선후기에 들어와서야 가능해졌다. 1844년(헌종 10)에 편찬된 『사례편람(四禮便覽)』을 보면 사혼례(士婚禮)에 2~4개의 초롱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 청사초롱은 신랑이 말을 타고 신부 집으로 떠날 때와 신부가 가마를 타고 시집에 올 때 비추는 데 쓰였다. 초롱이 없을 때는 횃불을 이용해 길을 밝혔다. 청사초롱이 혼례에 널리 쓰였던 이유는 예로부터 우주만물이 음양의 조화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사상에 기인한다. 혼례야말로 천지 음양 조화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므로 음양이 어우러진 청홍의 배색으로 축하할 만한 일이었던 것이다. 이후 청사초롱은 곧 혼례식을 의미하는 뜻으로 통용되어갔다.

  초롱은 이렇게 관혼상제나 예식(禮式), 임금의 행행시(行幸時)01 등에 사용되었다. 단순한 조명의 의미를 넘어 인간과 인간의 만남. 덕을 펴기 위해 궁궐 밖을 나선 임금과 백성의 만남. 서로 다른 상대 음양이 만나 밝게 조화를 이뤄야 하는 그 가운데에는 청사초롱이 있었다.

  청홍의 태극의 색체로, 어두운 밤 정인(情人)의 발걸음과 임금의 앞길을 호위했던 청사초롱. 말로 표현 못할 설렘과 기대를 갖게 했던 청사초롱은 오늘날 신명(神明)과 인간(人間)이 합덕(合德)하는 도장건물 곳곳에 걸려 잔잔한 미소로 고운 빛을 발(發)하며 도인들을 맞고 있다.

 

《대순회보》 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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