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문사람을 맹수로 만들 수 있는 감정, 질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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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9.12.15 조회7,046회 댓글0건본문
조직사회에서 한 개인과 조직에 대한 시기, 질투, 불평, 불만 같은 부정적인 감정은 오래 지속할수록 상극을 조장하여 자신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해를 끼친다. 이러한 경우는 상호 소통 없이 남과 비교하는 자신의 고집스러운 자존심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열고 항상 반성과 성찰로 자신의 감정을 살필 필요가 있다. 도전님께서도 “자기를 반성하여 보지 않고 불만과 불평을 감정화하여 고집한다면 스스로 상극을 조장하는 것이다.”01라고 하셨다. 또한 “자존 때문에 시비와 곡직(曲直)을 판득(辦得)하지도 않고 적개심을 품는다면 자신을 어둡게 만드는 것이다.”02라고 하셨다. 이렇듯 부정적인 감정은 상극을 조장하고 자신을 어둡게 만든다.
이와 같이 약자의 질투 혹은 패배자의 시기심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지칭하는 용어로 ‘르상티망(ressentiment)’이라는 프랑스 말이 있다. 이 용어는 승자를 인정하지 않는 원한, 증오, 분노, 질투 따위의 감정이 반복되어 패배자의 마음속에 가득히 쌓인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이 단어는 현대인들의 가슴에 도사리고 있는 ‘막연한 분노’ 또는 ‘질투’를 의미한다.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는 르상티망을 바로 약자가 강자에 대해서 지니는 ‘복수심 어린 원한 감정’이라고 하였다.
33세의 나이로 요절한 일본의 천재작가 나카지마 아쓰시(中島敦, 1909~1942)의 단편소설 『산월기(山月記)』에는 ‘르상티망’과 관련된 아주 교훈적인 이야기가 있다.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실린 이 글은 분노로 인해 인간이기를 포기한 한 사내의 고백을 통해 막연한 분노나 질투심이 인간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 지를 알려준다.
중국 당나라 현종 때, 박학다식하고 출중한 능력을 갖춘 이징(李徵)은 진사 시험에 급제하면서 입신출세의 꿈에 부풀지만 외고집에 자부심이 강한 그는 자신의 능력에 비해 천한 직위에 안주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관직을 물러나 고향 땅에 칩거하며 명성을 얻기 위해 오로지 시작(詩作)에만 몰두하였다.
그러나 문명(文名)은 쉽사리 오르지 않았고, 생활은 날로 궁핍해지기만 했다. 이징은 빈곤을 견디지 못해 처자를 먹여 살리려고 어쩔 수 없이 미관말직으로 복직했으나 더 비참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예전에 그가 우둔하다고 깔보던 과거의 동료들은 이미 높은 지위에 올랐고, 또한 그들의 명령을 받아야 하는 것은 그의 자존심에 깊은 상처가 되었다. 그는 늘 불만에 가득 차 마음이 즐거울 때가 없었으니, 괴팍한 그의 성질을 억누르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그는 결국 어느 날 발광을 하고 종적을 감추었다.
이듬해에 원참(袁參)이라는 감찰어사가 어명을 받고 지방으로 파견되어 가는 길에 어느 산골짜기를 지나게 되었다. 산속을 지나가는 도중에 갑자기 호랑이 한 마리가 뛰쳐나와 그에게 달려드는가 싶더니, 갑자기 몸을 획 돌려 숲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숲속에서 “큰일 날 뻔했군” 하며 거듭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호랑이가 된 이징은 그가 같은 해 진사에 급제한 가장 친한 친구였던 원참임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원참도 그 중얼거리는 소리가 이징임을 알아보고 두려움을 잊고 숲 속으로 다가갔으나 이징은 자신의 모습을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원참은 숲가에 서서 보이지 않는 이징의 목소리와 서로 재회의 인사를 나누었다. 원참이 이징에게 어떤 연유로 지금의 몸이 되었는지 묻자 그가 대답하였다.
“어느 날 밤, 밖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정신없이 뛰어 나갔다네. 그렇게 한참을 달려 어느 개울가에 당도했는데, 강물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온몸이 털로 뒤덮인 호랑이로 변해 있었다네. 내가 짐승으로 변하다니,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당장 죽을 결심을 했지만 토끼 한 마리를 본 순간 그 생각은 잊어버렸고, 잠시 후 내 입은 이미 토끼의 피로 푹 젖어 있었다네! 그 뒤로 하루에 얼마 동안은 인간으로 돌아와 예전에 읽었던 책의 구절을 떠올리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는 인간으로 돌아갈 수도 없게 되었다네. 그리하여 얼마 전까지는 내가 왜 호랑이가 되었는지를 탄식했는데, 이제는 내가 어찌해서 예전에 인간이었는지를 생각하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두렵고 비통한 일인가?”
원참과 헤어질 때, 이징은 높은 벼슬에 올라 임지로 향하는 옛 친구의 얼굴을 부러운 듯이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을 이었다.
“나는 시로써 이름을 떨치려고 생각하면서도, 스스로 스승을 찾거나 기꺼이 시우(詩友)와 어울리며 절차탁마(切磋琢磨)를 하는 노력도 하지 않았네. 그러면서도 또한 나는 속물들 사이에 끼는 것도 수치스럽게 생각했다네. 이 모두가 나의 소심한 자존심과 거만한 수치심 탓이었네. 내가 옥구슬이 아닐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애써 각고하여 닦으려 하지 않았고, 또 내가 옥구슬임을 반쯤 믿는 까닭에 그저 줄줄이 늘어선 기왓장들 같은 평범한 속인들과 어울리지도 않았다네. 나는 점차 세상에서 벗어나고 사람들과 멀어지며 번민과 수치와 분노로써 내 속의 소심한 자존심을 더욱 살찌게 했네. 인간은 누구나 맹수를 키우는 사육사이며, 그 맹수는 바로 각자의 성정(性情)이라고 하였지! 바로 나의 거만한 수치심이 맹수였다는 것을 알았네. 이것이 나를 해치고 처자를 괴롭히며 친구에게 상처를 주고, 결국에는 내 외모를 이렇게 속마음과 어울리게 바꾸어버렸다네.”03
윗글은 비록 소설이지만, 우리가 수도하면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이징은 자신의 능력만을 믿고 스승을 찾아 배우지 않았고 벗들과 어울리며 절차탁마(切磋琢磨)04하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자신보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질투하며 자존심만 키웠다. 또한, 자기 자신의 자존심과 거만한 수치심을 보지 못하고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만을 원망했다. 그리고 자기 자신보다 못한 자들의 성공에 분노와 질투를 참지 못하면서 맹수가 되어갔다. 이징은 바로 르상티망의 불길에 희생된 전형적인 인물이라 하겠다.
작자는 여기에서 맹수를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각자의 성정(性情)이라고 비유했다. 그 성정은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지니고 온 성질과 성품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타고난 기질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만의 성정을 가지고 있다. 그 각자의 성정을 잘 다듬어 서로 조화롭게 어울린다면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남을 이해하는 소중한 자존감이 될 수 있다. 반대로 각자의 성정이 자신만을 고집한다면 자기 욕망과 아집에 사로잡혀 거짓과 광기로 자신의 내면을 살찌우는 맹수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질투와 분노의 감정인 르상티망은 상극을 조장하여 남들에게 상처를 줄 뿐만 아니라, 결국에는 맹수가 된 이징처럼 자신을 망치게 한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마음 한 구석에 남을 원망하고 증오하며 시기 질투하는 르상티망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자라고 있지 않은지, 항상 자기반성과 성찰을 잃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자기반성과 성찰은 부정적이고 상극적인 감정을 멀리하고 남을 잘되게 하는 상생적인 감정을 자라게 할 것이다.
01 『대순지침』, p.92.
02 같은 책, p.92.
03 나카지마 아쓰시, 『산월기(山月記)』, 김영식 옮김, (서울: 문예출판사, 2017). pp.9-19. 이 소설은 중국 당나라 시대의 기담(奇談)소설인 이경량(李景亮)의 인호전(人虎傳)을 나카지마 아쓰시가 번역하여 쓴 것이다.
04 칼로 다듬고 줄로 쓸며 망치로 쪼고 숫돌로 간다는 뜻으로 학문을 닦고 덕행을 수양하는 것을 비유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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