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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이야기이허대전설(上) -도를 닦은 이서방과 허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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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21.12.19 조회4,8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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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금강 백운동의 마하연(摩訶衍) 터를 지나 만폭동 계곡의 상류인 사선교(四仙橋)까지 약 2km 구간을 화개동(花開洞)이라 한다. 화개동은 탁 트인 넓은 골짜기 안으로, 맑은 물이 바위 위를 미끄러져 흐르고 갖가지 꽃들이 만발한 아름다운 골짜기다. 마하연 터에서 화개동 쪽으로 난 개울을 따라 한참 오르다 보면 비교적 넓은 평지에 자리 잡은 절간이 나타난다. 이 절이 옛날 어떤 스님이 땅을 파다가 부처를 발견하여 절을 지었다는 불지암(佛地庵)이다. 불지암은 백운대를 등에 지고 골짜기 안쪽을 향해 앉았는데 세 면이 산봉우리에 에워싸이고 물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대단히 고요하고 아늑한 곳이다.

 

  불지암 앞의 오른쪽 길옆에는 옛날에 선학(仙鶴)이 마셨다는 ‘감로수’라는 샘이 있다. 이곳에서 감로수 한 모금을 마시고 다시 개울을 따라 오르면 얼마 안 가서 개울가에 둥글넓적하게 생긴 큰 바위가 나타난다. 이것이 신라의 사선(四仙: 열랑 ⋅ 술랑 ⋅ 안상 ⋅ 남석)에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 1517~1584)을 끼워서 오선(五仙)이라 하였다는 오선암(五仙岩)이다. 이 바위를 지나면 골짜기 안의 경치가 완연히 달라진다. 너럭바위 위로 수정 같은 물이 흐르면서 폭포와 소(沼)를 이루며 빼어난 절경을 연출하고 있다.

 

  오선암을 지나 올라가다가 낮고 평평한 언덕 뒤로 돌아가면 거대한 삼각형의 매끈한 암벽에 조각된 마애불상(磨崖佛像)이 나타난다. 높이가 40m에 이르는 큰 바위 벽에 조각된 마애불의 높이는 무려 15m이고 앉아 있는 상태의 두 무릎 사이도 9.4m나 된다. 불상을 새긴 바위 왼쪽에는 직암(直庵) 윤사국(尹師國, 1728~1809)이 썼다는 ‘妙吉祥(묘길상)’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 불상은 지금으로부터 600여 년 전인 고려말기에 묘길상암을 중창한 나옹(懶翁)조사가 직접 새긴 것이라고 전해온다.

 

  묘길상은 얼굴 부분에서 입체감이 돋보이는데, 이마에는 백호가 있고 웃음을 머금은 입술의 표정이 미묘하다. 우리나라 마애불상 가운데 가장 크고, 예술적으로도 잘 조각된 불상이다. 부처의 손가락 하나가 보통 사람의 몸체보다 굵으며 가부좌를 튼 두 다리의 높이는 사람의 키를 훨씬 넘는다. 귀의 길이만도 1.5m, 손과 발의 길이도 각각 3m에 이를 정도로 조각이 크고 웅장하면서도 인체 비례가 정확하다. 이 불상은 바로 앞에 놓인 높이 3.6m의 석등과 어울려 더욱 크게 보이고 주변의 경치와 어우러져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그런데 사실 이 불상은 원래 ‘아미타여래상’으로 문수보살을 뜻하는 ‘묘길상’이 아니다. 이러한 명칭의 혼란은 윤사국이 착각하여 아미타여래상 곁에 묘길상이라고 써놓는 바람에 생긴 일이다.

 

  묘길상을 뒤로 하고 다시 개울을 따라 오르다가 왼편으로 접어들면 비로봉(毘盧峯: 해발 1,638m)으로 오르는 길이 나온다. 이 길로 조금만 더 가면 네모난 바위가 있으며, 그 위에 ‘李許臺(이허대)’라는 글자가 새겨진 전망대가 나온다. 이곳에 올라서면 비로봉이 아득하게 쳐다보이고, 개울 건너편으로는 내무재령(內霧在嶺: 일명 안무재)이 마주 보인다. 이허대에서 조금 더 가면 ‘사선교(四仙橋)’가 나오고 여기서 화개동은 끝이 난다. 개울을 마주선 바위 위에 놓였던 다리는 없어지고 그 자리만 남아 있다. 이곳을 건너 내무재령을 지나면 내금강에서 외금강 지역으로 넘어갈 수 있다. 한편 이허대에는 이(李)씨와 허(許)씨 성을 가진 사람이 여기서 만난 것을 계기로 함께 글과 무예를 익히며 도(道)를 닦았다는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전해오고 있다.

 

  옛날 경상도에 이씨(李氏) 성(姓)을 가진 한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남들보다 뛰어난 글 솜씨와 재주를 지녔지만 서자(庶子)라는 이유로 자신의 뜻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울적한 심정을 이기지 못한 그는 차라리 산수 좋은 금강산에 들어가 풍월을 벗 삼아 살리라 마음먹고 길을 떠났다.

 

그가 대지팡이를 짚고 내금강 입구에 이르러 바라보니 금강산의 봉우리란 봉우리는 모두 희게만 보였다. 그런데 막상 산으로 들어가니 단풍나무가 타는 듯이 붉고 벚나무, 가래나무도 누렇게 물든 가운데, 그 사이사이에 있는 전나무, 노가지나무는 한층 더 푸르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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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으로 갈수록 절벽은 가파르고, 봉우리와 기암괴석들이 다가섰다가 물러서고 물러섰다가는 다시 다가서니 쳐다보면 높은 봉우리들이 구름 속에 아득히 보이고 발아래를 굽어보면 희고 깨끗한 돌을 씻으며 흘러내리는 아름다운 계곡이었다. 또 한쪽을 바라보면 봉우리 말기의 기암괴석들이 금방 떨어질 듯 내려다보이고 바람에 날듯 간들거리니 참으로 그 풍경이 기이하였다.

 

  다시 오르고 또 오르는데 높이 오를수록 바위 위에 뿌리를 드러낸 노송과 잣나무가 우거져 넝쿨들이 얽히고 서린 가운데 머루, 다래 또한 무르익어 향기롭기 그지없었다. 그는 다래를 입으로 가져가며 “한 치의 흙도 없는 이 돌산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수목들은 과연 무슨 조화인가.” 하고 중얼거리는데 어디선가 아름다운 새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나무 위에 고운 새가 깃을 다듬으며 노래하고 발아래에는 다람쥐들이 무엇을 물었는지 볼이 불룩하였다. 사람을 보고도 피하지 않는 것이 괴이하여 발을 한 번 “쾅!” 하고 굴러보았으나 그것들은 달아나지 않았다.

 

  다시 발길을 옮겨 한곳에 이르니 갑자기 눈앞이 번쩍 열리고 귀를 울리는 물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넓어진 골짜기 안을 에워싼 봉우리들과 겹겹이 쌓인 바위 벼랑들이 마주보고 늘어선 가운데 맑고 푸른 비취색 물이 희고 깨끗한 돌을 넘고 솟구쳐 물보라를 날리며 흐르고 있었다. 물도 바위도 봉우리도 모두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아 참으로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장쾌한 풍경이었다.

 

  그가 만폭동(萬瀑洞) 절경에 끌려 좀 더 오르니 개울물은 쪽빛 같은 푸른 못과 눈발 같은 폭포를 이루며 흘렀다. 그가 황홀경에 취해 얼마쯤 오르니 오른쪽에 수건을 건 것 같은 ‘수건바위’가 우뚝 서 있고 거기를 지나자마자 보덕각시가 머리를 감았다는 ‘세두분’이라는 세수대야 같은 옴폭 패인 돌이 있었다. 거기에서 물살이 거센 개울을 건너고 깎아지른 절벽을 조금 더 가니 흰 용이 서린 것 같은 반듯한 못 하나가 있었다. 그 속이 우묵하고 그늘이 져 사람이 서면 거울같이 얼굴이 비친다. 못 옆의 바위에는 다음과 같은 시구가 새겨져 있다.

 

 

 

산과 물의 아름다운 경치를 즐김은

사람들의 다 같은 심정이로되

이 몸 홀로 산에 울고 물에 우노니

끝없는 내 울음

이 산과 물 좋은 줄 몰라

슬퍼함이 아니어라, 슬프도다.

 

 

  ‘이것은 누구의 시인가⋅’ 하며 벼랑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서 있는 그의 눈에도 뜨거운 이슬이 맺혔다. 이 시를 보고 이서방은 어떤 시인이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강산을 보면서 나라를 사랑하는 절절한 마음과 함께, 어지러운 국정과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비참한 삶을 근심하며 울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이렇게 말했다.

 

  “그랬으리라. 조국강산의 아름다움을 시인인들 어찌 무심히 보았으랴.” 그는 그 시인과 함께 얼싸안고 우는 심정으로 바위에 새겨진 글 앞에서 떠나지 못하다가 다시 산수의 아름다움에 끌려 산 속으로 걸어가던 중 한 노인과 마주치자 이렇게 물었다.

 

  “이 산 어디에 도술을 닦는 스님이 있소⋅”

 

  “글쎄 잘은 모르겠소만 내 며칠 전에 영랑봉 쪽으로 산삼을 캐러 갔다가 해질 무렵에 오색구름이 수미암에 낮게 서리고 싱그러운 바람이 불더니 그 오색구름이 하늘 높이 오르지 않겠소. 그래 이상해서 그 암자에 가보니 스님은 없고 신발 두 짝만 문밖에 놓여 있더군요.” 말을 듣고 난 그는 먼 하늘을 보며 “도를 통해 신선이 되어 선궁(仙宮)에 드신 게 틀림없소이다.” 하며 그곳이 어딘지 알려달라고 하였다. 노인은 그 험하고 외진 곳에 혼자 가서 무얼 하겠냐며 차라리 강을 따라 곧장 올라가서 대장사에나 가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중간에 마하연이란 암자도 있으니 그곳에 들렀다가 사람을 만나면 물어보며 찾아가라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그 고마운 노인과 작별인사를 하고 올라가며 보게 되는 만폭동의 폭포와 담소는 이서방의 걸음을 자꾸 더디게 만들었다. 그렇게 얼마쯤 가다가 뜻밖에도 큰 절이 하나 나타났는데 그 절이 마하연이었다. 암자라고 하기에 작은 암자인 줄 알았더니 너무도 규모가 커서 둘러보니 ㄱ자로 생긴 사찰에는 사방 여덟 자나 되는 방이 무려 53칸이나 있었고, 그 주변의 경치도 아래와 사뭇 달랐다. 좌우 앞뒤로 한꺼번에 모여든 뭇 봉우리들이 마하연을 싸고도는 가운데 각 봉우리들의 독특한 모습은 처음 보는 그의 눈에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이서방이 다시 개울을 따라 오르다가 거대한 자연석에 새겨진 큰 부처를 보고 크게 놀랐다. 앉은키가 여섯 길은 됨직한 마애불을 새긴 석공이 누구인지 몹시 궁금했다. 금강산에 오니 놀라운 재주꾼이 있음을 알게 됐다며 한참 더 오르니 사선교라고 하는 자연석으로 된 다리가 나타났다. 여기서 길이 비로봉과 내무재령으로 나뉘어져 ‘어디로 갈까⋅’ 하고 망설이는데 비로봉 쪽에서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내려온 사람이 남루한 옷을 걸친 채, 손에는 지팡이 같기도 하고 칼 같기도 한 것을 들고 흥얼거리며 마주 오고 있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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