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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이야기백천동 잣송이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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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21.12.20 조회4,24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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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금강의 입구인 내강리에서 내금강 중심부의 모든 개울물을 다 받아들이는 만천(萬川)의 맑은 물을 따라 2km 정도 오르면 ‘신선들이 사는 곳을 향해 간다’는 뜻의 향선교(向仙橋)라 불렀던 만천교가 있다. 이 다리에서 오른쪽으로 갈라진 길로 들어서면 백천동(白川洞) 골짜기와 거기에 잇달린 영원동, 수렴동, 백탑동의 계곡경치, 그리고 백마봉, 차일봉의 전망이 좋기로 유명한 명경대구역이 나온다. 이 구역은 산림이 풍부하고 높은 봉우리들이 삐죽삐죽 솟아 있는 깊은 골짜기로서 폭포나 소(沼)보다 봉이나 대, 탑을 이룬 크고 기묘한 바위들이 절경을 이룬 명승지이다.

 

  바위 경치로 유명한 명경대구역에서 커다란 거울을 산에 의지하여 세워놓은 듯한 백천동의 명경대(明鏡臺: 높이 90m, 폭 30m의 거대한 규모임)도 좋지만 영원동 근처의 옥초대(沃焦臺), 책상바위, 영월대(迎月臺) 등도 금강산의 절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이다. 이 구역에서 특히 이채를 띠는 것이 수렴동의 수렴폭포(水簾瀑布)이다. 깨끗한 물이 흰 바위들 사이를 빠져나갈 때 조약돌 굴리는 소리가 정겹게 들리고, 미끈한 바위면 위에 푸른 물이끼가 돋아 마치 녹색주단을 드리운 것 같다. 그래서 옛날 어느 묵객(墨客)은 이 폭포의 경관을 보고 이렇게 읊었다.

 

 

 

 

흩뿌리면 구슬이 되고 모이면 비단 필이 되는데 얼씬얼씬 내달리니 사람의 눈동자도 이를 따라 내려간다. 그러다가 눈을 돌렸더니 곁에 있던 바위들이 다 빙빙 돌아 배를 타는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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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경대구역의 첫 번째 지역인 백천동은 만천에 백천(白川)이 합치는 데서부터 백천동 골짜기의 막바지인 조탑장까지의 계곡경치를 이룬 곳이다. 석가봉(釋迦峰: 946m)과 시왕봉(十王峰: 1,141m) 두 산줄기 사이에 펼쳐진 백천동에는 하나의 전설로 엮어진 명경대, 배석대(拜石臺), 판관봉(判官峰), 죄인봉(罪人峰), 사자봉(使者峰), 지옥문 등 경치 좋은 곳들이 많다.

 

  백천동에 들어서면 개울 양쪽으로 절벽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산봉우리에는 치마를 입은 듯 중턱까지 활엽수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고 그 위로 흰 바위가 드러나 있다. 골짜기 안으로 갈수록 점점 좁고 깊어지는데, 10m 안팎의 개울 양쪽으로 절벽들이 높이 솟은 데다가 골짜기는 마치 베틀 북처럼 이리 비틀 저리 비틀 꼬여서 사방이 꽉 막힌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개울물은 맑고 깨끗하며 돌들이 때를 벗은 듯 유난히 흰 탓에 정신은 맑고 상쾌해진다.

 

  개울을 따라 한참 오르면 아담한 백천폭포와 그 물을 받아들이는 기묘한 소가 있다. 여기서 얼마간 더 들어가면 개울이 좀 넓어지면서 앞이 열리는데, 왼편의 석가봉 곁가지가 쭉 뻗어 내린 벼랑 위에 마치 오리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개울물에 꼬리치는 물고기라도 노리는 양 골짜기 안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 바위가 오리바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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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옛날 전라도에 조순이라는 스님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불경을 열심히 공부하여 아는 것이 많았다. 그가 금강산을 유람하다가 이곳 백천동에서 겪었다는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전해오고 있다.

 

  젊은 시절 조순은 금강산이 빼어나다는 소문을 듣고 천리 길을 마다않고 유람을 나섰다. 그가 백천동의 시왕봉을 구경할 때였다. 이리저리 살피면서 길을 가다 보니 바위틈에 잣송이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그가 자세히 살펴보니 씨는 다 까먹고 껍데기만 남은 것이었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심심산골에 이렇게 많은 잣 껍데기가 쌓여 있다니! 이는 필시 어떤 사람이나 산짐승이 까먹은 게 분명해….’라고 생각하였다.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둘러보니 며칠 전 내린 비가 아직 마르지 않아 땅이 질척거리는 가운데 사람의 발자국 같은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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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옳지, 이 발자국을 따라가 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그는 그 발자국의 뒤를 쫓았다. 때로는 발자국이 보이지 않아 헤매기도 했지만 한번 호기심이 동한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그 발자취를 추적하였다. 이렇게 몇 리쯤 가는데 문득 저 앞에서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게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그 사람은 옷을 입지 않은 알몸이었지만 온 몸에는 한 자 남짓한 길고 푸르스름한 털이 가득 덮여 있었다. 푸른 털의 사내는 낯선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자 망설이다가 이내 달아나려고 하였다. 그러나 조순이 다가가서 앞을 막아서니 그가 먼저 손을 들어 인사하며 말을 건넸다.

 

  “혹 전라도 말을 알아듣소⋅” 하고 묻기에, 조순은 자신이 바로 그곳에서 오는 길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푸른 털이 돋친 사람은 자기를 따라 오라고 하면서 앞장서서 걸어갔다. 어느 깊은 산골로 들어가자 맑은 시냇물이 흰 돌을 적시며 졸졸 흐르는 가운데 바람도 없이 아늑하고 경치 좋은 곳이 나타났다. 그러나 사방의 봉우리들이 얼마나 날카롭고 지세가 험한지 나무꾼들의 발자취도 쉽게 닿지 못할 곳이었다.

 

  시냇가 큰 바위에는 마치 솥처럼 생긴 돌확이 있었는데 한 말 남짓한 곡식을 담을 만하였다. 거기에는 잣을 쪄서 누룩덩이처럼 만든 것이 가득 차 있었다. 푸른 털이 돋친 사람은 거기서 한 덩어리를 갈라내어 먹으라고 권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는 본시 전라도 사람입니다. 출가하여 이 산으로 들어왔는데, 먹을 것이 없어서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었소. 그래서 잣을 따다가 요기를 하곤 했는데, 처음에는 피부에 윤기가 돌더니 점점 몸에 푸른 털이 나기 시작했지요. 그러다가 결국 온몸에 푸른 털이 잔뜩 돋아나는 것이 아니겠소. 이제는 옷을 입지 않고도 한겨울의 추위를 느끼지 못할 정도가 되었지요. 이렇게 지낸지가 어느덧 백여 년이 넘었소이다.”

 

  그날 밤 조순은 움막에서 그 사내와 나란히 누워 함께 잠들었으나, 아침에 깨어보니 벌써 어디론가 떠나고 없었다. 그 후 조순도 오랫동안 금강산에 혼자 살면서 푸른 털이 돋친 사람처럼 잣을 따먹으며 지냈다고 하는데 그가 어디서 생을 마쳤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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