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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낙필 작성일2017.02.20 조회4,0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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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필

(원광대학교 교수, 철학박사, (전)한국도교문화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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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교의 다양한 요소

 

  동아시아의 삼대사상은 보통 유·불·도 삼교라고 일컬어진다. 이중 유교와 도교는 중국에서 형성·발전된 사상으로서 서로 상보적 역할을 담당하면서 중국문화의 원천이 되어왔다. 한대(漢代) 이후 유교사상이 사회의 중요한 지도이념으로 정착된 반면 도교사상은 문화·예술·종교 등의 측면에서 이를 보완하는 역할을 담당해왔다. 후한 말엽 불교가 전래되면서 삼교가 서로 대립, 융합하면서 중국문화를 형성해왔으며 우리나라도 지속적으로 그 영향을 받아왔다.

  도교사상이 종교로서의 면모를 갖춘 것은 후한 무렵부터이지만 그 연원은 훨씬 이전으로 소급된다. 도교사상에는 노자, 장자 등에서 비롯된 도가사상, 전국시대부터 대두된 신선사상의 두 가지가 핵심적 요소를 이루며 여기에 무속을 비롯한 민간신앙과 여러 가지 방술(方術) 등이 혼합되어 형성되었다. 도교에는 다양한 요소를 포용하는 특징이 있다. 불교에도 이런 측면이 있지만 도교에서 더욱 뚜렷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도교에는 소박한 민간신앙에서부터 각종 방술, 고준한 노장철학, 깊은 내단수련의 전통 등 여러 가지가 혼합되어 공존하며 내려왔다. 이를 긍정적으로 보면 여러 가지를 포용하는 관용정신으로 평가할 수도 있으나 다른 면으로 보면 정체성이 모호하다고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여러 이질적 요소를 묶어 도교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은 여러 가지를 하나로 묶는 근본개념이 도이기 때문이다. 도는 세 가지 맥락에서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첫째 우주자연의 이법이라는 의미로서 시간공간을 초월한 절대적이며 영원한 존재라는 의미를 지닌다. 둘째 우주의 근원적 도를 추구해가는 길, 즉 공부론으로서의 도라는 의미이다. 셋째 공부를 통해 체득된 경지로서의 도이다. 깨달음과 덕, 자유로움을 성취한 선인, 또는 성인들의 정신세계를 지칭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 세 가지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물음으로 바꾸어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우주의 근원적 도는 무엇인가⋅ 둘째 우리는 어떠한 길을 통해 도를 체득할 수 있는가⋅ 셋째 도를 체득한 성인의 경지란 어떠한가⋅ 이 세 가지는 근본적 문제로서 수많은 공부인들이 끊임없이 제기해온 공통된 물음이기도 하다. 우리가 도교의 전통에 관심을 지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 세 가지 물음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도에 포함된 세 가지 의미 가운데 중심축을 이루는 것은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의 문제 즉 방법상의 문제이다. 아무리 훌륭한 이상이나 목표가 있다 하더라도 도달하는 방법이 없으면 동경의 대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방법으로서의 공부길에 대한 모색은 도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보다 실질적인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다. 이에 전통적으로 도교사상은 공부로서의 도, 즉 공부론에 비중을 두어왔다.

  도교적 전통에서는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믿음에 바탕하여 선인을 지향하며 이를 위해 다양한 심신의 수련의 방법을 모색해왔다. 구도자들은 도를 성취한 인물을 찾아 방황하였으며 그런 인물이 있다면 불원천리하고 도를 묻기 위해 찾아갔다. 우리에게 친숙한 고대소설의 소재는 주인공이 온갖 고난을 겪으며 스승을 찾고 스승을 만난 후에는 심신수련을 통해 도를 배운 후 도를 성취하여 만인의 고난을 구제한다는 스토리이다. 도교적 상상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러한 낭만이 요즈음 우리의 삶에 내면화되어 있지 못하고 갈증으로 남아있는 듯하다.

  
 

2. 도교의 성립과 역사적 흐름

 

  후한 무렵 성립된 초기도교는 오두미도(五斗米道)와 태평도(太平道)의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장도릉(張道陵)의 오두미도에서 받드는 중요경전은 『노자상이주(老子想爾注)』로서 이 책에서는 노자를 도가 화현한 인물인 태상로군(太上老君)으로 받들고 도를 인격신적으로 해석하는 특징을 보인다. 장도릉은 치병을 통한 민중의 구제라는 교화방편을 쓰는 한편 도계(道誡)의 실천과 여러 가지 양생적 노력을 권장하였다. 나아가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선인의 경지에 도달함을 이상으로 제시하였다. 도에 대한 해석, 도를 체득하는 방법, 도달한 선인의 경지에 대한 세 가지 측면에서 종교적 해석을 가하고 나아가 최초의 도교교단을 형성한 것이다.

  장각(張角)의 태평도에서 받드는 『태평경(太平經)』은 매우 방대한 경전으로서 저자는 분명하지 않다. 『태평경』에는 당시의 원기론적 (元氣論的) 세계관을 비롯한 각종 양생론, 여러 가지 민간신앙과 방술 등 매우 다양한 요소가 혼합되어 있어 하나로 관통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태평경』에서도 궁극적 이상인격을 선인으로 제시하는 것은 공통된다. 나아가 『태평경』에서는 원한과 갈등이 풀린 태평세계를 지향하는 관점이라든가 새 시대를 여는 메시아의 출현을 예언함으로써 이후 억압받는 민중들이 기존의 체제에 저항하는 이념적 원천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노자상이주』, 『태평경』 외에 주목할만한 문헌은 비슷한 시기에 출현한『노자하상공장구(老子河上公章句)』로서 노자 『도덕경』을 원기론적 세계관과 관련시켜 양생론에 초점을 두고 해석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역시 선인을 이상적 인격으로 제시하고 있고 치신(治身)과 치국(治國)을 한 구도에서 보는 당시의 관점을 담고 있다. 이상 몇 가지 초기문헌들에서 알수 있듯 도교사상에서는 노자가 제시한 도를 인격신적으로 해석하거나 기와 관련시켜 해석하였다. 『하상공장구』에서는 원기에 관해 도에서 파생되어 나온 일차적 존재라고 보았으나 후에는 도와 원기(또는 眞氣, 선천일기) 를 일치시키는 관점도 있어 한결같지는 않다.

  이 세 가지 문헌이 출현할 무렵 한대에는 황로학(黃老學)이란 사조가 널리 유포되었다. 황로학은 황제와 노자를 함께 연결하여 사상적 원류를 찾는 관점으로서 전국시대 제(齊)에서 태동되어 한대에는 매우 융성하였다. 한대의 황로학은 원기론적 우주생성론의 관점을 받아들이고 개인, 국가, 우주를 관통하는 관점을 제시하였다. 이후 도교에서는 이러한 관점을 수용하는 한편 황제·노자를 아울러 받들고 신격화하였다. 황제·노자에 가탁된 수많은 경전이 출현한 것이 그 단적인 예이다.

  초기교단의 성립 이후 도교에는 역사적 변천과정을 따라 북천사도(北天師道), 영보파(靈寶派), 상청파(上淸派) 등 다양한 교파가 출현하였다. 이에 따라 수많은 경전들이 출현·결집되고(道藏의 결집) 도교사원 즉 도관(道觀)이 세워졌으며 도교의식도 제정·정비되었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토속적 무속과 민간신앙이 거의 대부분 융합되었고 불교의 영향도 매우 크게 작용하였다. 당 이후 도교를 장려하는 황제가 다수 출현하면서 도교교단의 영향력이 증대하면서 유·불·도 정립의 국면을 맞이하였으나 청대 이후는 점차 쇠퇴의 길을 걸었다. 원대를 거쳐 명청시대에 이르면 북방은 깊은 철리와 엄밀한 수련체계를 갖춘 전진도(全眞道)가, 남방은 민중적 윤리의 실천과 도교적 의식에 치중하는 정일교(正一敎)가 주류를 차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교단도교의 부침과는 별도로 민간에 유포된 도교적 습속과 윤리관념 각종 양생술 등은 중국인의 삶과 문화에 광범하게 영향을 끼쳤다. 민간들뿐 아니라 사대부계층에도 도가적 풍류나 은둔의식, 양생론적 관심은 넓게 유포되었다. 입신양명하여 이름을 떨치고 국가에 공을 세운 후 은둔하여 전원생활을 즐기고 자연과 함께 하나가 된다는 것이 사대부들의 삶의 이상으로 회자되었다.

   
 

3. 도교의 신관(神觀)

 

  도교사상을 이해하려면 근본개념인 도에 관한 인식의 변천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노자가 제시한 도는 매우 함축적이어서 다양한 해석이 가해졌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도는 인격신적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만물생성의 근원적 원기로 해석되기도 했다. 이와는 별도로 도를 지극한 허(虛)나 무(無)로 풀이하는 관점도 여전히 남아있었다. 따라서 도교사상에서 도는 신과, 기, 및 허무 등의 의미가 복합된 근원적 존재로 이해되었다고 볼 수 있다. 도교가 교단을 형성하며 많은 민중들이 귀의하는 과정에서 도는 특히 신으로 해석되는 경향이 많았다.

  그 과정은 장도릉이 도의 화현으로 제시한 태상로군 외에 반고진인(盤固眞人), 원시천황(元始天皇) 등의 명칭이 사용되다가 남북조시대에는 원시천존(元始天尊)이란 표현이 최고신의 명칭으로 정착되었다. 원시천존은 후에 삼청(三淸)에 주재하여 천상선계를 다스린다는 삼신일체적(三神一體的) 신으로 받들어졌다. 옥청경원시천존(玉淸境元始天尊), 상청경영보천존(上淸境靈寶天尊),태청경도덕천존(太淸境道德天尊)의 삼신일체적 신관이 확립된 것이다. 도교도관에서는 삼청전(三靑殿)이 세워져 삼신일체적 신을 봉안하고 있다.

  이러한 삼신일체적 최고신과는 별도로 도교에는 많은 다신들에 대한 믿음이 더욱 널리 유포되었다. 도교 성립 이전에 믿어졌던 산신, 지신, 등 자연신들뿐 아니라 많은 영웅들이 신격화된 데 기인한다. 도교사에서는 인간이 구도노력 끝에 도달한 경지인 선인과 다양한 다신들 간에 상호 교섭하는 경향이 나타났으며 후에는 두 가지의 구별이 모호해졌다.

  송대 이후 옥황신(玉皇神)에 대한 믿음이 유행하였는데 옥황신은 최고신은 아니지만 인간의 길흉화복을 주재하는 신으로 받들어졌다. 칠성, 관운장을 신격화한 관제(關帝). 북극성을 신격화한 자미대제(紫微大帝) 등도 많은 신봉자가 있었으나 최고신에 대한 믿음은 상대적으로 약하였다. 어떤 의미에서는 최고신은 이론적 전제로 설정된 느낌이 강하였다. 이밖에 주목할 만한 신은 『옥추경(玉樞經)』을 설한 보화천존(普化天尊)으로서 그 신은 원시천존 앞에서 일체중생을 남김없이 구제하기 위한 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말세가 되면 중생들이 어리석어 힘든 수행을 하기 어려우므로 보화천존의 이름만 부르면 구제받을 수 있도록 서원을 세웠다는 것이다. 보화천존은 태을구고천존(太乙救苦天尊)과 함께 중생들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중요한 신격으로 부각되었다.

  

 

4. 도교의 수행관

 

  앞에서는 우주의 궁극적 본원인 도의 성격에 관해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을 통해 도를 체득하여 하나가 될 것인가가 문제이다. 도를 인격신적으로 보면 신의 가호를 받아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 당연한 귀결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도교경전을 보면 궁극적 구원의 문제에 관한한 선인의 경지를 증득해야만 가능하다는 관점이 흔히 발견된다. 이것도 몸과 마음의 통합적 인격체로서 전인적 성취를 통해 가능하다는 것이 기본입장이었다.

  도교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모토는 마음과 몸을 아울러 닦아 완성시킨다는 관점, 즉 성명쌍수론(性命雙修論)이다. 이는 몸과 마음을 분리될 수 없는 전체로 보는 인간관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영가천도를 위한 도교식 의례 중 수화연도(水火煉度)라는 독특한 개념이 있다. 수기와 화기를 충분히 보충해주는 상징적 의식으로서 인간생명의 두 가지 요소 중 하나도 빠트릴 수 없음을 상징한다. 여기서 수기는 생명의 원기를, 화기는 정신적 밝음을 상징한다. 두 가지가 아울러 갖추어질 때 영가는 재생하거나 영적 상승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때 의식을 집행하는 도사가 내단수련을 통해 수승화강(水升火降)이 잘 이루어져 있다면 자연의 수승화강과 동조함으로써 영가를 실질적으로 천도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흥미롭다.

도교수행의 기본구도가 형성된 한대(漢代)에는 원기(元氣)의 작용에 의해 우주만물이 생성된다는 관점이 일반화되어 있었다. 원기론적 세계관에 의하면 인간의 몸과 마음은 모두 원기의 작용에 의한 산물로 설명된다.

  인간이 형신(形神: 즉 몸과 마음)의 통합체이기 때문에 형과 신이 분리되지 않도록 통합성을 유지하는 것이 실천수행에서 긴요하다. 이에 초기도교에서는 육체적 생명의 보전[養形]과 마음의 보전[養神]이 아울러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당말(唐末) 이후부터는 형의 측면을 명(命), 신의 측면을 성(性)이라 하여 양자를 아울러 닦는다는 의미에서 성명쌍수(性命雙修)라는 개념이 대두되었다. 이중 명공(命功)은 인체 내의 수화이기(水火二氣, 또는 陰陽二氣)를 단련하여 몸 안에 금단(金丹)을 형성하는 것을, 성공(性功)은 본성의 자각을 통한 도의 증득을 의미한다. 두 측면은 선후를 논할 수 없으나 편의상 어느 것에 먼저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방법론상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몸과 마음 자체가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가 아닌 만큼 연속적인 체계를 통해 파악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인간의 생명요소를 정(精)·기(氣)·신(神)이라는 세 가지 양태로 구분하여 정을 단련하여 기로 변화시킴(煉精化氣) - 기를 단련하여 신으로 변화시킴(煉氣化神) - 신을 단련하여 허로 변화시킴(煉神還虛)이라는 단계로 설명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이중 연정과 연기의 과정은 주로 몸의 수련에, 연신 이후의 과정은 마음의 수련에 중점이 두어져 있다. 이 과정을 통해 보통의 몸을 선천의 진기로 가득 찬 새로운 몸으로 탈바꿈하고 이에 상응하여 선천의 본성을 함양하자는 것이다. 수련을 통해 몸과 마음 모두 근본적 변화를 이룩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도교수행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내단사상에서 성명쌍수를 주장하는 것은 건강만을 강조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깨달음과 자유의 달성에 전인적 수련이 매우 긴요하다는 인식에서이다. 인간이 전인적 존재라는 시각에서 몸과 마음을 조화롭게 함양하고 궁극적으로는 깨달음과 자유를 증득하는 것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인간의 몸을 소우주로 보고 우주적 신비가 농축된 존재로 보는가, 아니면 주로 집착의 근원으로 보는가의 문제는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이다. 내단사상은 인간을 소우주로 보는 관점, 우주적 생명이 농축되어 있다는 시각에서 생명의 비밀을 주체적으로 탐색하려는 오랜 노력을 통해 전승된 수련이론이다. 이는 근본적으로 사람 몸에 내재한 신성한 자연을 조화롭게 유지하는 것으로 천인합일(天人合一)할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다. 실존하는 몸 안으로 신성한 자연을 철저히 내재화한 것이다.

  도교의 마음수련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사항은 청정한 생활을 통해 마음을 텅비고 고요하게 간직하는 외에 이타적 선행의 축적, 즉 덕의 실천의 공부에 진력해야 진정한 자기완성의 길이 열린다는 관점이다.

  한대 위백양의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에서는 “도와 덕을 성취한다(道成德就)”란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의 도란 성선(成仙)을 향한 수행을 의미한다면 덕은 이타적 선행을 의미한다. 그 후 위진시대의 인물 갈홍(葛洪)이 『포박자(抱朴子)』에서 덕행의 실천을 매우 중시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덕행의 구체적 내용은 천지의 호생지덕(好生之德)을 본받아 생명을 사랑하고 위난을 구하라는 내용이 위주가 된다.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는 선인에게 생명은 어느 것보다 고귀한 것이므로 생명이 잘 보존되도록 지켜주는 것이 소중하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유교사상에서 역사의 전면에 나서서 수(修)·제(齊)·치(治)·평(平)의 길을 걷는 것을 중시하는 것과는 달리 도교사상에서는 음덕(陰德)을 쌓는 것을 권장한다. 다른 사람이 모르게 하기 때문에 드러나게 세상을 위해 덕을 쌓는 것과 다르다는 의미이다. 도교수행자들은 일정한 덕이 있어야 일정한 도의 진보가 있다는 믿음을 지녔다. 다시 말해 덕과 도가 한꺼번에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덕을 쌓으면 신명이 도와 순조롭게 되지만 덕이 부족하면 걸음마다 함정으로 진전이 없다는 관점이다.

  심화된 단계를 제시하는 도교수행의 방편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다양한 종교의식이나 주문수련 등의 법술적(法術的) 측면이며 다른 하나는 심신을 수련하여 몸 안에 금단을 제련하고 본성을 자각하는 내단수련의 길이다. 광물질의 합성을 통해 금단을 제련한다는 외단술은 수당대까지는 성행했으나 그 후 거의 사라져 역사적 유물로 전락하였다. 법술적 측면은 주로 교단도교에서 권장하는 방법으로서 의식의 집행이나 축원, 주문, 부적 등 대중들이 공감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으나 개인의 깊은 내적 성찰과 수련의 측면에서는 일정한 한계를 지닌다. 대신 내단수련은 사자상승(師資相承)을 통해 깊이 침잠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대중적 응집력은 약한 단점이 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융합하지 못하다가 송대 이후 두 가지를 융합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기도 했다.

  이중 도교적 수행을 대표하는 것은 역시 내단사상으로서 이중에서도 몸 안의 수화이기(水火二氣)의 만남을 통해 금단을 제련한다는 『참동계(參同契)』류와 체내신(體內神)에 대한 내적 존사법(存思法)을 통해 정기를 보존하는 『황정경(黃庭經)』류로 구분된다. 두 가지 역시 송대 이후에는 종합되는 경향도 있는 등 명확한 흐름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이중에서 우리에게 알려진 주류는 참동계류로서 송대 장백단(張伯端, 987-1082))의 『오진편(悟眞篇)』에서 이를 환기시켜 수련방법을 정비한 후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장백단류의 내단사상에서는 도로부터 음양이 분화되고 선천에서 후천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순(順)’이며 음양으로부터 도를 찾으며 후천에서 선천으로 소급하여 돌아가는 것이 ‘역(逆)’의 과정이라고 본다. 내단수련은 유한한 후천에서 선천으로 돌이키는 도이므로 선천대도(先天大道)라고 말한다.

  발생론적인 의미에서 선천은 본원적 세계라는 의미를 지니지만 발생론적 설명에 역점이 있다기보다는 두 세계가 지니는 가치의 차별성에 역점이 두어져 있다. 선천이 사람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영원하고 무한한 도의 세계라면 후천은 거짓된 환의 세계로서 초극해야 할 생멸의 세계이다. 영원함과 자유로움이 참의 세계요, 선천의 경계라면 유한한 망상의 세계가 거짓의 세계요, 후천의 영역이다. 이를 절실히 깨달아 참된 선천의 세계로 반본 환원하자는 것이 내단사상의 관점이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은 몸 안에 진기를 발현시켜 금단을 제련하는 것이다. 선천의 진기를 발현시켜 금단을 제련하는 과정을 마친 후의 수행은 어떻게 진행되는가⋅ 이에 관해 『참동계』에서는 “태을(太乙)이 부르면 지상의 선계로 옮긴다. 수련의 공이 더욱 향상되면 하늘로부터 록(⋅)과 도(圖)를 받아 간직한다(太乙乃召 移居中洲 功⋅上升 膺⋅受圖)” 라고 하여 그 단초를 열었다. 이는 금단의 증득이 공부의 끝이 아니며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이다.

  오대말-송초에 흥기한 종려전도파(鍾呂傳道派)의 문헌 『종려전도집』의 경우 선인의 종류를 5종으로 나누어 최후로 천선(天仙)을 제시하고 있다. 천선에 관해서는 “수련의 공과 이타행이 두루 가득하여 하늘이 내린 조서를 받고 동천(洞天)으로 돌아간다(功行滿足 受天書以返洞天 是曰天仙).”라고 말한다. 이는 도덕적 실천, 또는 이타적 구세의식을 강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선인의 사회적 책무를 강조한 의미도 있고 자아의 무궁한 확장의 의미도 있다.

  청대 유일명(劉一明)은 개인의 수행, 즉 도의 체득에는 마침이 있지만 덕의 실행은 끝없다고 하여 덕의 실천이 시간적, 공간적으로 확산되는 무한한 역정이 다시 시작됨을 밝히고 있다. 선인은 완성된 존재라는 개념에서 끝없이 지속되는 과정상의 인격임을, 사회적 존재, 나아가 우주적 존재의 일원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5. 선인(仙人)과 선계(仙界)

 

  다음으로 도를 체득하여 인격화한 이상인격 즉 신선, 또는 선인에 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도를 체득한 선인은 흔히 금단(金丹)을 성취한 경지로 표현된다. 금단이란 표현은 갈홍(葛洪)의 『포박자(抱樸子)』에 보인다. 『포박자』 금단편에서는 선인이 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결정적 방법은 금액(金液)과 환단(還丹) 중의 하나를 복용해야 한다고 보았다. 갈홍은 이 두 가지를 최고의 약이라는 뜻에서 상약(上藥)이라고 불렀다.

  금액은 액화된 금이고 환단은 일종의 제련된 단약(丹藥)을 의미하는데 태청신단(太淸神丹), 구정신단(九鼎神丹) 등 여러 종류가 있다. 금액과 환단을 합친 용어가 금단으로서 이 개념은 후에 도교의 내단 수련에서 달성해야 할 최고목표라는 개념으로 바뀐다. 갈홍의 『포박자』를 통해 볼 때 금단에서 두 가지 의미를 읽을 수 있다.

  금(金)이 불변성을 상징한다면 환단은 변화를 상징한다. 단사(丹砂)를 원료로 해서 단을 만드는데 단사를 가열하면 색이 변하면서 화학적 변화를 일으킨다. 단이 상징하는 의미는 그 환원성·조화성이다. 변화와 불변이 종합된 개념을 금단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선인의 이미지와 관련이 깊다.

  선인은 어떤 능력과 경지에 도달한 인격인가⋅ 도교 경전에서 설명하는 내용을 종합하면 두 가지라고 볼 수 있다. 첫째, 선인은 죽지 않는 존재라는 것, 곧 불사(不死)가 가장 기본 성격이다. 둘째, 선인에게는 자유로우며 추측할 수 없는 조화를 부리는 인물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물에 빠지지도 않고 호풍환우(呼風喚雨)의 도술을 부리는 신비적 능력이 그것이다. 결국 선인의 경지는 자유롭고 조화로운 삶과 불사의 두 가지로 집약할 수 있는데 불사는 불변성과 관련이 깊고 조화력은 변화와 관련이 깊다. 금단이라는 개념을 추적해 들어가면 내용적으로는 결국 선인의 두 가지 특징과 만나게 된다. 금단을 성취했다는 것은 결국 금단이 가진 두 가지 성질을 체득했다는 의미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금단과 선인에 내포된 의미는 서로 상통한다고 말할 수 있다.

  내단사상에서는 그 철학적 기반을 『도덕경(道德經)』과 『주역(周易)』에서 찾는 경우가 많다. 『도덕경』과 『주역』에서 말하는 도, 우주의 원리, 이법(理法)은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지만 역시 불변성과 조화성이라는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이를 종합해 볼 때 결국 금단은 도와 그 성격이 상통된다고 말할 수 있다. 금단의 의미가 결국 도와 일치된다는 관점은 송대 이후의 도교 경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원대(元代) 이도순(李道純)의 『중화집(中和集)』에서는 ‘도는 바로 금단이고 유교의 태극, 불교의 불성과 일치한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금단이라는 개념은 원래 약의 한 종류를 가리키는 용어였지만 나중에 의미가 변화되어 도 자체를 가리키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금단과 도의 의미가 전적으로 일치하는가⋅ 도가 우주 자연의 이법 · 원리를 의미한다면 금단은 인간이 절실한 구도 노력을 통해서 도를 체득했을 때 부르는 개념이라고 구분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금단을 인간의 자력적 구도 노력의 결정체라고 정의내릴 수 있을 것이다.

  신선사상의 초기 단계에서는 불사의 개념이 지상에서 누리는 장생불사에 역점을 두었다. 갈홍의 『포박자』에서나 초기 도교에서는 어디까지나 지상에서 누리는 장생을 중시했다. 그렇다고 하여 선계로 비승함을 부정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 후 점점 시대가 지나면서 선계로 올라가 장생함을 중시하는 관점으로 바뀌게 되었다.

   선계에 올라가서 장생하는 몸은 현재의 몸이 아니라 순수한 선천진기로 이루어진 몸, 즉 양신(陽身)이다. 불교에서 색신(色身)과 법신(法身)을 구분하듯 내단사상에서도 이 용어를 받아들여 색신을 후천기(後天氣)로, 법신을 선천기(先天氣)로 구별하는 경우도 있다. 이에 따르면 색신으로 영원히 산다는 것이 아니라 법신을 성취해 장생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도교사상가들은 유형하고 유한한 후천기와 무형하고 무한한 선천기의 개념을 구별하고 선천기야말로 욕망과 어리석음을 벗어난 참된 인간본성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라는 관점을 제시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신선의 종류를 다섯 가지로 구별하는 견해가 유력하게 제기되어 있다. 당송 이후 주류를 차지한 내단사상의 경로를 살펴본다면 지상에서의 불사를 평가절하하고 선계로 비승(飛昇)함을 궁극의 경지로 간주하는 것이 공통된 입장이다.

 『종려전도집(鍾呂傳道集)』에서는 신선을 귀선(鬼仙)·인선(人仙)·지선(地仙)·신선(神仙)·천선(天仙)의 다섯 종류로 구별한다. 귀선이란 몸을 닦지 않고 마음만 닦은 사람이 도달한 경지로서 엄밀히 말해 선인의 범주에 들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인선은 양생법을 통해 오래 사는 경지로서 선인에 이르는 준비단계의 성격을 지닌다.

  지상에서 불사를 성취한 경지, 곧 지상 어디엔가 있는 삼신산(三神山)과 같은 선계에 사는 단계를 지선이라고 부른다. 신선부터는 하늘의 선계로 올라가는데 마지막의 최고 단계는 천선이라고 부른다. 필자의 사견으로는 귀선·인선·지선·천선·신선의 순서로 개념을 정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은가 생각되는데 『종려전도집』에서는 천선을 최고 경지로 본다.

  송대 이후의 내단사상에서는 지상에서 오래 사는 것을 ‘형체를 남겨서 세상에 머문다(留形住世)’라고 하여 비판적으로 본다. 수행이 미진한 사람들이 지상에 오래 사는 것이고, 능력 있는 수도자들은 바로 선계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자세하게 살펴보면 천선을 궁극 목표로 간주하는 입장에서는 두 가지 의미를 읽을 수 있다. 하나는 지상보다는 선계를 더 동경하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장생의 주체에 관한 문제로 보통의 육체가 아닌 다른 차원에서 몸의 영원성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선계에 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상에 있는 선계를 동천복지(洞天福地)라고 하고 바다에 있는 것을 삼신산(三神山)이라고 하는데 하늘에 있는 선계가 진정한 선계, 천상의 선계로 제시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동천복지 사상이 발전되어 중국의 여러 곳을 동천복지로 규정한다. 36동천 72복지가 그것이다. 여기서 거처하는 선인들이 공부가 깊어지면 바다에 있는 삼신산으로 옮기고 다시 덕을 쌓게 되면 천상 선계인 삼청(三淸)으로 올라가게 된다는 것이다.

  위백양의 『참동계』에는 수련을 마친 인물이 선계에 오르는 계기에 관해서 “태을(太乙)이 부르니 중주(中洲)로 옮기며 공적이 가득하면 선계에 비승(飛昇)하여 도록(圖⋅)을 받는다” 라고 말한다. 태을이란 최고신의 다른 명칭이며 도록은 하늘에서 받는 인증서라고 할 수 있다.

  도교의 세계관에 따르면 불교적 세계관을 받아들여 욕계(欲界)·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삼십삼천(三十三天)을 인정하고 삼십삼천 위에 다시 삼청이 있다고 한다. 인간 세계는 넓은 의미로 욕계에 포함되며 이 밑에 아귀·축생·지하세계가 있다. 선인들은 삼청에 가서 태을의 도록을 받고 맡은바 책임을 다하며 장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관은 우리 눈에 보이는 세계 외에 여러 가지 세계가 중층적으로 중첩되어 있다고 보는 것을 의미한다. 보통 도교의 신선사상이 지상에서의 장생불사를 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지상보다는 천상을, 천상선계도 하나의 단일한 세계가 아니라 여러 가지 층차가 높은 세계가 펼쳐져 있다고 봄으로써 끝없는 전인적 진화의 역정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세계관과 수련의 길, 이상적인 선인과 선계에의 동경의식이 현대의 우리에게 새로운 꿈과 신화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가 주목된다.

 

 

6. 도교의 현황

 

  중국의 도교는 20세기 초엽까지 청대의 상황을 대체로 유지하였다. 공산정권이 세워지면서 전반적으로 종교활동이 위축되는 여파로 도교도 침체기를 맞았다. 1960년대 문혁시기에는 도교도 큰 피해를 입어 많은 도사들이 탄압을 받거나 환속하였다. 그 후 1978년 문혁운동이 정리되고 종교신앙 자유가 공적으로 천명됨으로써 도교도 서서히 부흥하기 시작하였다. 1982년에는 21개 도관을 거점으로 하는 진흥책이 채택되어 점차 옛 모습을 복원하기에 이르렀다. 1992년도 중국도교협회통계에 의하면 큰 도관이 400여개, 거점포교지역 1000여 개소, 전진도의 도사 2000여명, 민간에 활동하는 정일교 도사 5만여명에 달하고 있으며 오늘까지 점점 확대되는 추세이다.

  대륙과는 달리 대만에서는 본토에서 도교가 전래된 후 가장 세력이 큰 주요종교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현재 약 4000여개의 도관과 500만 명 이상의 신도로 파악된다. 대만에도 전진도와 정일교가 함께 전래되어 교화활동을 벌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삼국시대에 중국 도교의 다양한 요소들이 약간의 시차를 두고 전래되었다. 도교가 전래되기 이전에도 고유의 신선사상이나 태양숭배, 산악신앙, 무속적 요소 등 도교적 현상과 유사한 것들이 존재했으나 도교가 전래된 후에는 두 가지가 서로 혼합되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도교는 유·불과 달리 승단이나 유림과 같이 뚜렷한 세력을 형성하지 못하였다. 고려시대에서 조선 중기에 이르는 동안 도교적 제사의식을 담당하는 국가기관이 설치되기도 했고 은둔적 인사들 간에는 도교적 정체감을 지닌 인물들이 다수 배출되기도 했으나 역시 유·불에 비해 사회적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미약했다. 대신 우리의 의식구조나 삶에 상당한 영향을 미쳐왔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이다.

  다만 도교교단이 성립되지 못한 관계로 은둔적 내단수련가를 제외하고는 도교자체의 독자적 형태로 존재하기보다는 민간신앙이나, 유·불과 혼합된 형태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근대 이후 동학, 증산 등 신종교에 도교적 요소가 의미 있게 작용한 것이 주목되고 있다. 해방 후 대중적으로 확산된 단전호흡, 기공 등의 심신수련문화도 도교와 친화력이 깊다고 말할 수 있다. 최근 도교적 사유에 포함된 유기체적 세계관이나, 생태학적 관심 등이 문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주목되면서 특히 심신수련의 분야에서 도교적 전통이 부각되는 추세이다.

 

 
《대순회보》 1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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