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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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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3.09 조회2,27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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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옛날 씨름은 씨름꾼과 구경꾼들이 한데 어우러져 살기 어려웠던 시절에 고달픈 삶의 아픔을 잊게 해주고 삶에 활력까지 불러일으켜 주기도 한 민속놀이였다. 사람과 사람의 굴레를 벗게 해주고 격의를 없애며 집단과 집단의 합일을 나타내게 하는 씨름 속에서 우리 조상들의 지혜를 느낄 수 있다. 온 국민이 흥겨워 하고 화합의 한마당을 갖게 하는 씨름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씨름의 발생

 

  씨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경기 중 하나다. 씨름으로 뭉뚱그릴 수 있는 여러 나라의 격투기 역사는 인류의 생존 과정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씨름을 고유의 민속경기로 즐기는 나라는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가깝게는 중국[솨이자오]01이나 일본[스모]02, 몽골[부흐]03, 러시아[삼보]04 등 30여 개국에 이른다. 그와 관련된 가장 오래된 역사 기록은 4,6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이라크 왕도(王都)의 토토브에서는 투기 장면이 그려진 항아리가 발굴되었다. 기원전 2,000년경 고대 문명이 번성했던 이집트 제12왕조의 고도(古都) 베니핫산에 있는 바케트 3세의 분묘벽호에는 격투기 장면이 담겨 있다. 또한 기원전 221~207년경 진(秦)시대의 한서에는 “진의 무왕이 각력(角力)을 좋아했다” 거나 “각저(角抵)를 시켰다” 는 기록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이 시대에 씨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씨름의 기원과 유래는 확실치 않다. 다만 1905년에 고구려의 도읍지였던 환도성(丸都城: 현재 만주 집안현 통구)에서 4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각저총(角塚)이 발견되었는데, 이 분묘 현실의 오른쪽 벽에 씨름하는 모습이 그려진 것으로 미루어 보아 삼국시대 초기에 이미 씨름이 퍼져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씨름은 한자어로 각력(角力), 각저(角抵, 角), 각지(角支), 각희(角戱), 각저희(角抵戱), 상박(相撲), 고려기(高麗技), 치우희(蚩尤戱) 등으로 불려 왔다. 여기서 각저와 각력이 언제부터 ‘씨름’이라는 우리말로 부르게 되었는지 확실하게 규명된 바는 없다.

  이러한 가운데 민속학자 최상수(崔常壽, 1918~1995)는 영남 지방의 우리말에서 서로 버티고 힘을 견주는 것을 ‘씨룬다’고 하며 버티고 힘을 견주어 보라는 ‘서로 씨루어 보아라’라는 말이 있고, 꽤 오래 버틴다는 말에 ‘씨룬다’ 또는 ‘대기 씨루네’ 하는 말이 있음을 보아 ‘씨름’이란 말은 타동사 ‘씨룬다’에서 ‘씨름’으로 명사화된 말이 분명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말에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버티어 팔의 힘을 겨루는 내기를 ‘팔씨름’이라고 하며, 그 외에도 서로 버티는 것을 ‘입씨름’이라 하는 것으로도 예증할 수 있을 것이다. 속설로 ‘씨름’을 ‘씨[種]의 겨룸’으로 보아 남자들끼리의 힘겨룸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역사 속의 씨름

 

  고구려 영토였던 만주 통화성 집안현 통구에서 발견된 각저총 주실 씨름벽화는 두 사람이 나무그늘 아래에서 서로 맞잡고 씨름을 하고 있고, 그 옆에는 심판인 듯한 사람이 지팡이를 짚고 서 있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이외에도 집안현의 장천 1호분 벽화, 황해도 안악, 평안남도 강서 약수리 등에서 발굴 된 고구려 고분 벽화에도 씨름을 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고구려 귀족들의 무덤에 그려져 있는 씨름 벽화를 통해 고구려시대에 이미 씨름이 성행하였으며, 고분 벽화에 남길 정도로 씨름을 매우 중요시 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를 거치며 유흥과 오락의 일면을 보이던 씨름은 점차 마을과 마을의 대항전이나 풍년을 기원하는 숙원행사, 단오절 씨름놀이 등 연례적인 대규모 축제의 형식으로 자리를 잡는다. 조선시대는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 비해 씨름 관련 자료가 많다. 조선시대의 씨름에 관한 문헌에는 『조선왕조실록』, 『동국세시기』, 『경도잡지』 등이 있고, 그림에는 단원 김홍도의 씨름그림, 혜산 유숙의 대쾌도 등이 있다. 19세기 초 홍석모의 『동국세시기』에는 “젊은이와 어린이들이 왜장(倭將) 북문인 신무문 뒤 터에 모여서 각력, 즉 씨름놀이로써 승부를 걸었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서 무릎을 꿇고 각각 왼쪽 손으로 상대자의 오른편 다리를 끌며 일시에 일어서서 서로 들어서 돌리는데 넘어진 자를 진 것으로 친다. 안걸이[內局], 밖걸이[外局], 둘러메치기[輪起]기술이 소개되어 있고, 힘이 세고 손이 빠른 자가 자주 이기게 되는데 이 사람을 판막음[도결국(都結局)]이라”고 하였다. 판막음은 여러 판에서 다 이기는 장사, 곧 씨름판을 끝막음한 최후의 승리자이다.

  이와 같이 우리 민족이 오랫동안 즐겨 오던 씨름도 한때는 일제에 의해 억압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씨름은 운동 경기의 하나로 채택되어 그 설움을 씻어냈다.

 

끝판을 벼르는 상씨름

 

  씨름은 경기 방식에 따라 선씨름, 띠씨름, 바씨름, 왼씨름, 오른씨름이 있다. 선씨름은 서서 하는 씨름이며, 띠씨름은 허리에 띠를 두 손으로 잡고 하는 씨름이고, 바씨름은 오른손을 상대의 왼쪽 허벅다리에 샅바를 감고 왼손은 상대편의 허리에 얹고 겨루는 씨름이다. 왼씨름은 샅바를 오른쪽 다리에 매고 상대방이 이를 왼손으로 잡고 겨루는 씨름이고, 오른씨름은 왼다리에 맨 샅바를 상대가 오른손으로 잡고 겨루는 씨름이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방식은 왼씨름이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씨름의 주체에 따라 아기씨름, 총각씨름, 상씨름이 있었다. 아기씨름은 열 살 미만의 어린이들의 씨름이고, 총각씨름은 20대 이하 젊은이들의 씨름이며, 상씨름은 20세 이상 결혼한 어른들의 씨름이다. 상씨름을 소걸이05, 큰씨름, 마루씨름이라고도 한다. 씨름판은 한 사람의 심판인 ‘판장’이 몇 명의 장내 정리원인 ‘서두리꾼’을 데리고 통제하며 진행시킨다. 맨 처음이 아기씨름으로 칠 팔세 아이들이 경기를 하고 차츰 열두어 살내지 열여섯 살의 아기상씨름으로, 아기상씨름이 총각씨름으로, 총각씨름이 다시 총각상씨름까지 큰다. 아기씨름은 계속해서 다섯 허리를 이기면 대님이나 허리띠를 상으로 주며, 총각씨름의 경우는 상도 커져서 주머니, 쌈지, 난목으로 감발감[발감개] 등을 준다.

  아기씨름으로부터 어른상씨름까지를 한 둘레라 하는데, 그 한 둘레가 끝나면 씨름은 다시 아기씨름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마지막 어른이 어린아이한테 일부로 ‘쿵’ 지고 물러나간다. 이때 씨름판은 일순간 웃음마당으로 바뀌게 된다. 이렇게 낮과 밤으로 하루에 몇 차례씩 되풀이 하면서 사흘이면 사흘, 닷새면 닷새, 예정한 날 동안 계속한다. 그러고 나서 예정된 마지막 날 밤 소걸이 상씨름을 한다.

  아기씨름은 다섯 허리만 이기면 한 번씩 상을 타지만 상씨름은 그와 달라, 다시는 나서는 적수가 없을 때까지 이겨야 한다. 열 허리나 스무 허리를 이기고도 한 번 지면 그만이다. 단, 한 허리를 이기고도 더 응전하는 자가 없으면 곧 그가 소를 타기 때문에 그 최후의 한 허리를 노리는 소 씨름꾼은 좀처럼 나서지 않는다고 한다. 판장이 “소 나가네에! 소 나가네에!” 하고 큰소리를 외쳐도 진득이 앉아서 다른 사람이 먼저 나가기를 기다린다. 마침내 더 이상 사람이 없는 줄 알고 판장이 그때 최후 승리자의 목에다 소고삐를 걸어주려고 해야, 누군가 “흠!” 하면서 대든다. 대들어서 지면 물러나고, 이기면 그가 최후 승리자가 되어 씨름판 한가운데로 나가, 소는 내 것이다 하듯이 떡 버티고 앉는다. 그러나 막상 소를 끌고 나가려고 하면, 씨름꾼은 여전히 또 나온다. 또 나오고, 또 나오고, 닭이 울어도 소를 데리고 나가지 못하는 수가 종종 있다. 여기서 상씨름의 우승자를 도결국(都結局)장사라 한다.

 

씨름에 끌리는 매력

 

  어떤 힘세고 씨름 잘하는 소 씨름꾼이 판을 쳐, 막 소를 따 가게 될 때, 돌연 한 사람의 백면약골(白面弱骨)이 나타나 그를 한 허리에 메어다 꽂았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씨름판의 일종의 전설로 전해 내려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것이 전설만이 아니라 현대 씨름에서도 종종 벌어진다. 덩치가 훨씬 큰 일본의 스모 선수나 미국의 프로 레슬링 선수가 덩치가 작은 우리나라 씨름선수를 이기지 못한다. 비록 외국인과의 씨름이 아니더라도 우리 천하장사 씨름대회에서도 종종 이런 상황이 나올 때가 있다. 씨름의 매력이란 객관적인 힘과 몸무게에 있어서 상대가 안 되더라도 기술과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는 슬기와 재치 등으로 승리하는 데에 있다. 중도에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목적을 향하여 내딛는 씨름의 정신은 오늘날 현대인에게 끈기와 역전의 지혜를 일깨워 준다.

 

참고문헌

ㆍ김종호, 『한국의 씨름』, 체육문화사, 1973

ㆍ이만기·홍윤표, 『씨름』, 대원사, 2003

ㆍ정찬모·지춘만(단국대학교), 『체육사학회지 제 5권』, 2000

ㆍ『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서문화, 2002

ㆍ채만식, 『채만식 전집』, 창작과 비평사, 2007

 

01 넘어뜨리기 기술이 주가 되는 경기.

02 일본의 전통적인 씨름. 두 명의 선수가 씨름판에서 맞붙어 상대편을 씨름판 밖으로 밀어내거나 넘어뜨려서 승부를 낸다.

03 13세기 징기스칸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몽골의 전통경기로 한국의 씨름경기와 같은 것으로 경기규칙과 체급이 없는 것에서 차이가 있다.

04 러시아 전통 씨름으로 ‘무기를 갖지 않은’, ‘자기방어술’의 러시아말의 머리글자를 모아 만든 합성어이다. 한국의 태권도처럼 러시아의 국기에 해당된다.

05 소를 걸고 하는 내기.

 

《대순회보》 1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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