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은 지키는 것이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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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영일 작성일2020.12.19 조회2,286회 댓글0건본문
출판팀 김영일
통창 가득히 펼쳐진 들녘을 바라보며 제철채소 반찬에 발아현미 밥을 먹을 수 있는 전라남도 곡성의 ‘밥cafe 飯(반)하다’. 이곳에서 『불멸의 이순신』을 쓴 소설가 김탁환은 이 식당의 운영자이자 발아현미를 생산하는 ‘미실란’의 대표 이동현을 우연히 만났다. 이 책은 그 후 지금까지 2년 넘게 이어온 두 사람의 우정의 결과물이다.
저자(김탁환)는 소설이 아닌 에세이로 벼농사, 마을공동체, 지방을 지키고자 분투해 온 이 대표의 인생을 1장 발아, 2장 모내기, 3장 김매기, 4장 추수, 5장 파종, 즉 벼농사의 여정으로 그려냈다. 여기에 곡성의 무수한 골짜기와 섬진강의 정취 그리고 이 대표의 삶에 비춰본 자신의 모습을 덧붙였다. 이 글에서는 미실란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활동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동현 대표는 2005년 11월 곡성의 한 폐교에 농업회사법인 미실란(美實蘭: 아름다운 사람들이 희망의 열매를 꽃피우는 곳)을 설립했다. 친환경과 유기농으로 쌀을 수확하고 고유의 특허 기술을 접목하여 발아현미를 만드는 회사이다. 그는 제품 생산뿐만 아니라 교육과 예술에도 적극적이다. 전국에서 오는 유치원생부터 초·중·고 학생, 귀농인, 농업 관련 단체의 직원을 대상으로 생태교육과 체험학습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으며, 해마다 열리는 ‘작은 들판 음악회’ 외에도 그림과 사진 전시회, 영화제를 개최했다. 현재 미실란은 곡성에서 가장 많은 외지인이 방문하는 명소이다.
일본 규슈대학교에서 미생물 연구로 농학박사학위를 받은 과학자이기도 한 이 대표는 미실란을 찾는 이들에게 언제나 농사꾼임을 앞세운다. 사실,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는 땅을 믿고, 들과 숲의 생물을 가족처럼 여기며 살았던 농부였다. 벼 품종 연구 때문이기도 하지만, 손으로 모내기와 벼베기를 하는 것도 농부의 마음으로 평생 살아가려는 뜻에서라고 한다. 2019년에는 유엔식량농업기구에서 주는 모범농민상을 받았다.
미실란의 경영 외에도 그는 곡성교육희망연대에 시민기자로 참여하고 있다. 이 시민단체는 2011년 3월 지역 교육을 위해 정성을 모으자는 취지로 출범했는데, 이제 뜻이 있는 군민이라면 곡성 교육에 대해 다 함께 논의하는 분위기가 마련되었다고 한다.
그의 삶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미실란의 경영 원칙이 상생이라는 점이다. 논의 여러 생물과의 상생을 보면, 흙이 벼, 미생물, 곤충, 작은 동물과 사귈 때까지 시간을 준다. 허리를 숙여 피를 뽑는 것 외에는 일체 간섭하지 않고 논의 흙과 물, 햇볕, 비, 바람에 맡기는 것이다. 이러한 생태적 가치의 존중은 식물, 동물과의 대화에서 인상적으로 드러나는데, 다음은 논의 왕우렁이에게 건네는 인사이다.
“너희도 잘 잤고? 논물이 차갑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네. 해가 곧 뜰 테니까 조금만 참아. 어디 보자… 8그램쯤 되겠구나, 밤에 배는 좀 채웠어? 제초제를 전혀 치지 않을 테니까, 너희랑 나랑 힘을 합쳐 잡초를 없애야 해. 쉽진 않을 거야. … ”
나무를 숲 사람, 벼를 논 사람이라고 부르는 그는 왕우렁이와 사람으로서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다. 독소 연구를 했던 석사과정에서 실험용 동물을 수없이 죽이는 실험에 회의를 느껴 서울대 박사과정을 그만둔 것도 이러한 생명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
또한 이윤이나 효율이 아니라 사람을 중심에 두고 미실란을 경영한다. 사람들과 상생하고자 하는 것이다. 미실란에는 청년층보다는 50대 전후인 직원이 많은데, 농촌에 터를 닦은 사람들을 안정적으로 채용하여 더불어 살아가겠다는 이 대표의 의지 때문이다. 곡성 농부들과도 더불어 살고자 한다. 농부들은 미실란에서 정해준 품종의 벼를 친환경 농법에 따라 재배하고, 미실란은 그 쌀을 미리 정한 가격으로 전량 사들이기로 봄에 계약하는 것이다. 농부들과 이익을 나누려는 뜻에서 위험부담을 떠안은 것이다. 타 회사와의 상생을 덧붙이면 미실란에서 발아현미를 비롯한 친환경 쌀을 제공하고, 사회적 기업 ‘시튼 베이커리’가 유기농 시리얼 등의 제품을 만들기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 대표는 폐교를 회사로 바꿀 때, 학생들이 공들여 초를 칠하고 헝겊으로 문질러 윤이 나는 교실 바닥은 그대로 두었다. 정성이 깃들고 고통이 밴 것에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다. 생물과 사람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정성과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이 대표의 상생적 삶의 바탕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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