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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칼이 될 때』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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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영일 작성일2021.02.23 조회2,50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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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무부 김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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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의 말을 악하게 하면 그에게 해를 입히고 그 여음이 밀려와서 점점 큰 화가 되어 내 몸에 이르나니…”(교법 2장 50절)의 구절에 있듯이 악한 말은 남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해가 된다. 이 책은 이러한 ‘악한 말’에 해당하는 혐오표현에 대해 다루고 있다.

  혐오표현 연구자들은 “장애인은 집 밖으로 나다니지 말라”, “(여성은) 집에서 애나 봐라” 등  편견이 드러난 이러한 말을 “영혼의 살인”, “말의 폭력”, “따귀를 때린 것”이라고 묘사한다. 당사자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척을 짓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저자 홍성수 교수(숙명여대 법학부)는 이러한 혐오표현에 대해 다각적으로 접근하였다. 즉 혐오표현이 무엇이며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규제해야 하는지 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된 증오범죄, 역사부정죄 등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명료하게 밝히고 있다.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의 <혐오표현 실태조사 및 규제방안 연구>의 연구책임자를 맡았던 저자는 세계 많은 나라의 다양한 사례, 특히 우리나라에서 이슈화된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여성혐오, 맘충(아이 엄마를 예의 없고 남들에게 피해를 준다고 보는 혐오표현) 등을 통해 혐오표현의 문제를 다루었다. 현장에 바탕을 둔 논의는 이 문제의 심각성을 잘 전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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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혐오표현은 단순히 감정적으로 싫은 것을 넘어서 인종, 종교, 성별, 장애, 성적 지향 등에 따른 소수자(개인 또는 집단)의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이들을 사회에서 차별하고 배제하는 표현을 뜻한다. 즉 혐오표현이 되기 위해선 차별받아온 과거가 있고 현재도 여전히 차별받고 있는 소수자에 대한 것이어야 하며, 기존의 차별을 공고히 하는 효과가 있어야 한다. 이성애자의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표현을 뒤집은 “이성을 사랑하는 건 당신 자유인데, 내 눈에 띄지는 마라”는 말은 그 대상이 다수자인 이성애자이고, 이 말로 이성애자의 사랑이 위축될 가능성은 거의 없으므로 ‘혐오표현’이라고 이슈화하기 어렵다고 한다.

  혐오표현의 해악은 무엇일까? 어떤 범죄가 정신병자의 소행이라는 식의 보도에 달리는 “나다니지 못하게 해라”, “병원에 가둬라” 등의 댓글을 본 어느 정신장애인은 “불쾌한 정도가 아니고……. 억울하고, 내가 그 범죄자가 된 기분이 들고요……. 숨고 싶고, 음……. 또 죽고 싶어요”라는 반응을 보였다. 자신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말 때문에 정신적 고통을 겪는 것이다. 이러한 고통을 소수자(정신장애인) 집단 전체가 겪는다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문제점은 혐오표현이 소수자들을 시민으로서 함께 살아갈 수 없게 한다는 점이다. 지하철에서 술 취한 사람에게서 “니네 나라로 가”라는 말을 들은 한 이주민은 “계속 긴장하고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며 진짜 한국에서 살기 싫어질 때가 있다고 한다. ‘공존’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이러한 표현은 ‘인간 존엄’, ‘평등’, ‘차별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등의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혐오표현 문제를 해결할 방안 몇 가지를 제안한다. 희생자와 그 지지자들이 혐오표현을 반박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도록 국가와 사회가 제도적·교육적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 혐오표현에 관한 규제를 총망라한 차별금지법(형사처벌이 아니라 상담, 조정, 권고 등을 내용으로 함)을 제정하는 것 등이다. 그런데 이렇게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여론을 주도하는 힘이 있는 정치 지도자들이 혐오표현에 대해 중립이 아닌, 책임 있는 입장을 표명하는 것이 긴요하다고 한다. 반기문은 유엔 사무총장 재임 당시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를 일일이 호명하며, “모든 국가와 사람에게 당신들 편에 함께 서라고 요청합니다”라는 역사적인 연설을 하였다고 한다.

  혐오표현은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주제이다. 하지만 ‘인권’, ‘인간 존중’의 가치가 점점 큰 힘을 얻고 있는 세계적 흐름 속에서 소수자의 차별을 낳는 혐오표현 문제를 외면할 수 없을 듯하다. 혐오와 차별에 무감각하고 수수방관하는 우리 현실에 대해 어떤 것이라도 시작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심정을 헤아려 봐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말하면, 혐오표현은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말의 문제이기에 앞서 편벽됨이 없는 마음인 양심의 문제인 것이다. 그래서 수도의 차원에서 이 문제를 풀자면 언덕을 잘 가지는 것과 함께 양심 회복을 위한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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