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두꽃>을 보고 - 내 마음에 피어난 녹두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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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허 경 작성일2020.06.15 조회3,009회 댓글0건본문
금사2 방면 교정 허 경
작년에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드라마 <녹두꽃>이 방송되었습니다. 19세기 말 지배층의 타락과 외세의 간섭으로 혼란했던 시기를 배경으로 하여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독특하게도 <녹두꽃>은 녹두장군 전봉준이라는 한 위인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냈을 법한 사람들의 삶을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의 희생이 있었던 시기를 그린 작품이라 가슴 아픈 내용이 많았지만, 당시를 살고 계셨던 상제님의 행적과 말씀의 의미를 더욱 깊이 새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드라마에는 세 명의 중심인물이 있습니다. 전라도 고부 관아에는 탐욕스러운 이방 백가가 있는데 그에게는 아들 둘이 있습니다. 이복형제인 백이강과 백이현입니다. 이 둘은 각각 혁명군과 토벌대로 갈라져 싸워야만 했던 안타까운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주 여각을 진두지휘하고 일본 상인들과 중개무역을 하는 전라도 보부상들의 대부인 도접장의 외동딸 자인이 있습니다. 드라마는 이 세 명이 동학농민혁명을 겪으며 각자가 꿈꾸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격동의 조선을 생생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는 드라마를 보면서 수백 년을 이어온 유교의 폐습 때문에 억울함을 당하는 사람들의 분노와 한을 통감했습니다. 또한, 가릴 사이 없이 마구 죽이던 위태로운 정세를 실감하며 새로운 세상이 오기만을 바랐던 우리 조상들의 간절한 염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천하를 움직인 만고 명장 전명숙이 일심으로 약자들을 위한 세상을 실현하고자 했던 노력에 감동했습니다.
전봉준의 아버지는 탐관오리 조병갑의 횡포에 탄원서를 냈다가 심한 매질을 당하고 세상을 뜹니다. 이야기는 전봉준이 아버지의 삼년상을 치르며 약방을 하던 때부터 시작합니다. 1894년은 흐르는 강물조차 관리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이용되고, 갓 태어난 아이부터 죽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세금을 물려 마지막 한 방울의 고혈까지 착취해가는 탐학의 시대였습니다. 한편에서는 노상에서 헐벗고 굶주리며 통인들에게 매 맞는 백성들이 있고 다른 편에서는 푸짐하게 한 상 차려놓고 희희낙락 춤을 추는 관리들이 있습니다.
의미와 여운이 있는 장면들이 많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위의 두 광경을 목격하고 통감한 도접장의 딸 자인(송 객주)이 백산에 모인 동학농민군들을 보고 감탄하는 장면입니다. 송 객주와 함께 전라도 무장현으로 가던 최 행수가 동학농민군들을 보고 “이 많은 사람을 어디서 모았을까요?”라고 묻자 송 객주는 “모은 것이 아니라 모인 것입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어느 한 사람이 주체가 되어 원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람들을 모은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기 의지를 다지고 스스로 한자리에 모였다는 생각을 하니 뭉클했습니다.
애통하고 절박한 사정을 천하에 알리고 조정에 가득 찬 탐관오리를 물리치며 나아가 국가를 튼튼히 하고자 하는 이 거사에는 동학을 믿는 사람 외에도 많은 이름 모를 사람이 동참했습니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팔천에서 만 명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수가 백산으로 모였다는 것은 엄청난 결집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드라마에는 잘 나타나지 않았지만, 농민들의 사상적인 힘이 되어준 동학은 믿고 주문을 외면 병이 낫고 누구나 양반이 된다는 소문에 입도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합니다. 관리들의 수탈에 시달리고 흉년에 굶주렸으며 콜레라와 천연두로 죽은 어린아이들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이는 공포 속에서 동학은 그야말로 몰락하는 시대의 새 삶이자 희망이었던 것 같습니다. 워낙 많은 사람이 밀려와 마당에 멍석을 깔아놓은 뒤 입도식을 치를 정도였다고 합니다. 입도하면 신분을 가리지 않고 접장이라는 호칭으로 서로 존중하고 대등하게 맞절을 했다니 당시 불평등한 처우를 받던 농민들에게 그야말로 숨통 트이는 반가운 사상이었을 것 같습니다. 백산에 모인 이들 중 대다수가 누구에게나 대우를 해주는 동학을 믿는 사람들이었고 탐관오리를 숙청하고 일본군들을 물리치고자 자연스럽게 모여든 농민들이었던 것은 당연하였습니다.
또 하나 뭉클했던 장면은 이강이 우금티 전투에서 의병 오천 명과 아끼는 동료를 잃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앞장서서 외칠 때입니다. 이강은 백가 집안 얼자로 살다가 동학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이대로 돌아가서 다시 개·돼지로 사느니 찰나를 살아도 사람처럼 살다가 사람처럼 죽겠다.”라고 했는데 이 말이 가슴에 크게 와닿았습니다. 사람으로 존중받고 사람을 존중하며 살고 싶다는 외침이 제 마음을 울렸습니다.
성능 좋은 대포, 신식 기관총 그리고 연발로 쏘아 대는 총으로 무장한 일본군이나 조선군과 비교하면 의병들의 무기는 매우 열악했습니다. 그러나 몇 번이고 나아가 싸웠습니다. 이기기 위한 싸움이라기보다 싸우기 위한 싸움이었습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자신의 몸을 던져 소중한 것을 지키려는 피나는 절규였습니다. 두 번 다시는 억울한 삶을 살지 않겠다는 투쟁이었고 사람답게 살고 싶다며 목숨을 바친 전투였습니다.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기까지 이름 모를 이들의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지를 생각하면 절로 숙연해집니다. 저는 백이강을 보면서 자신을 돌이켜보게 되었습니다. 입도 전의 저는 남이 저를 무시하면 무시 받는 것을 당연히 여겼습니다. 자란 환경으로 인해 무시당하는 것에 둔감하고 익숙해졌던 것 같습니다. 수도하면서도 몸에 밴 습성은 쉽게 고쳐지지 않아서, 익숙한 패턴이 반복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스스로 뜻을 세워 행하기보다 남을 의식해서 한 것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 좋은 도를 알고서도 모자라게만 느껴지는 자신이 미워서 내팽개친 세월이 얼마인지 깊이 반성하였습니다. “찰나를 살아도 사람처럼 살다가 사람처럼 죽겠다.”라는 백이강의 외침은 스스로가 주체적인 나임을 주장하고 평등한 세상을 위해 목숨을 걸겠다는 뜨거운 발언이었습니다. 그처럼 저도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새로운 배포를 차리겠습니다.
끝으로 녹두장군 전봉준과 관련된 여러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동학농민혁명은 1893년에 흉년이 들고 전염병이 돌아 비참하던 때 40여 명이 고부 관아로 몰려가 만석보의 물세감면을 사정하다가, 오히려 농민대표들이 곤장을 맞고 왔던 일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고부 군수 조병갑에 대한 일시적 감정의 폭발로 일어난 민란이 아니라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모여 치밀하게 계획하고 한양으로 올라가 잘못된 정치의 근본을 해결하고자 했던 것이었습니다. 잘못된 세상을 바로 잡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선 녹두장군 전봉준은 돈독한 일심으로 하늘에 성패를 맡겼으며 외부와는 타협하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먼저 녹두장군 전봉준의 목표 의식을 엿볼 수 있는 장면으로 양반 황석주와 대화하던 장면입니다. 동학농민군들이 고부 관아의 습격에 성공하고 전주성을 격파하러 가기 전, 양반 황석주는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고 녹두장군을 붙잡습니다. 그때 장군은 “격문에 쓰인 대로 하고 있소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저는 그 장면을 보고 ‘우리도 상제님의 유지와 도주님의 유법 그리고 도전님의 유훈을 받들어서 훈회와 수칙대로 그리고 지침대로 수도해야 하는데 내가 놓치고 있었네!’ 하는 반성이 들었습니다.
또 다른 인상적인 장면은 우금티 전투에 앞서 “자기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기억하며 싸우라!” 외치는 순간과 심문받으러 가는 녹두장군 전봉준이 백성들을 향해 “그대들 눈에 눈물 대신 우리를 담아라. 슬퍼하지 말고 기억하란 말이외다.”라고 당부하는 장면입니다. 거사를 실패하고 잡혀가는 순간에도 녹두장군 전봉준은 남은 백성들의 마음을 다독여 주었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에 흔들림 없는 떳떳하고 힘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한마음으로 나라와 백성을 위했던 녹두장군 전봉준을 생각하니 우리의 일이 남을 잘 되게 하는 공부라는 상제님의 말씀이 절로 떠오릅니다. 농민을 대표하여 선두에 나서 세상을 바꾸고자 하였던 녹두장군 전봉준의 마음을 가슴속에 품는다면 죽음도 두렵지 않은 의를 행할 수 있게 되리라고 생각해봅니다. 아직은 남이 잘되기보다 내가 더 잘되고 싶은 마음이 많고 다른 사람 잘되는 것이 마냥 부러운 저이지만 한마음을 정해 이익과 손해를 따지지 않고 결과에 흔들리지 않는 뚝심을 세워 정성을 다하는 도인으로 거듭나고자 결의를 다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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