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대호’를 다시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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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창심 작성일2020.10.08 조회3,286회 댓글0건본문
출판팀 노창심
최근에 땅을 조금 얻어 오이와 호박, 토마토와 고구마 등등 모종을 심었다. 커가는 작물을 보며 작은 행복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잘 자라던 고추와 고구마 순이 싹 사라져 버렸다. 누군가 아주 연한 부분만 똑똑 따갔다. 야생 동물의 짓이었다. 어린 순일 때 다치면 성장이 더딜 뿐만 아니라 좋은 수확도 기대하기 어렵다. 늦었지만 동물이 못 들어오게 그물을 쳤다. 더는 피해가 없으리라 생각했건만 채 영글지 않은 땅콩이 뿌리째 뽑혔다. 안타까운 마음에 다시 묻긴 했지만 어떤 짐승의 소행인지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취미 삼아 가꾸는 작은 텃밭도 짐승의 해를 입으면 이렇게 속상한데 생계를 위해 짓는 농사는 오죽할까 싶었다. 더구나 깊은 산 속도 아니고 차가 다니는 도로에서 스무 걸음 정도 떨어진 밭에 야생 동물이…. 하긴 ‘주택가 멧돼지 출몰’, ‘야생 동물 농작물 피해’ 같은 뉴스가 해마다 비슷한 시기에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게다가 지방 자치단체에서 농작물 유해조수를 잡으면 포상을 할 정도이니 야생 동물의 피해가 적지 않구나 싶었다. 이런 상황이 되니 예전에 봤던 영화 속 대사가 곱씹어졌다.
“이거 해도 너무한 거 아이가. 산꾼님을 그렇게 잡아버리면 늑대하고 산도야지들 행패가 억수로 심할 낀데.”
영화 ‘대호’를 다시 봤다.
1925년 경상남도 도장관실. 일본 고관이 차지한 방엔 조선 땅에서 잡은 동물 박제들이 가득하다. 함경도에서 범 가죽을 보내왔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는 오직 지리산 산군, 지금까지 아무도 잡은 적도 잡으려고 생각한 적도 없는 조선 산천의 주인인 진짜 조선범을 잡아 귀국하고 싶을 뿐이다.
산길을 잘 아는 간벌군을 앞세워 포수대가 산군을 찾아 나섰다. 발자국을 보니 어미와 개호주(새끼) 2마리 흔적이다. 미리 쳐둔 올무에 어미 호랑이가 걸렸다. 목이 졸려 피범벅이 됐어도 끝까지 저항하는 녀석은 지리산 산군의 짝이다. 새끼들과 같이 잡혔다.
산군의 죽은 새끼를 미끼로 올무를 치고 그물도 깔았다. 범 사냥을 전문으로 해온 포수대가 산에 숨어 기다리는데 반대쪽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포수들이 몰려갔다. 그사이 산군은 그물과 올무를 피해 제 새끼 시신만 걷어갔다. 죽은 새끼를 핥으며 끙끙 울어대는 모습이 측은하다.
첫새벽 정화수 받아 촛불 켜고 산신령께 무언가를 빌며 하루를 시작하는 남자. 산에서 뭐라도 얻으려면 산짐승보다 부지런해야 한다는 아버지와 요즘 시대는 머리를 써야 한다며 올무를 치고 잡힌 놈만 걷으면 된다는 아들의 대화. 올무는 눈이 없으니 아무나 걸린다며 잡을 놈만 잡는 것이 산에 대한 예의고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면 반드시 탈이 난단다. 벌써 십여 년째 총을 놓고 약초를 캐서 먹고 사는 천만덕, 조선 최고의 범잡이다.
일본 고관은 자꾸 산군을 잡아 오라고 재촉하고 이제 눈이 내리면 범 사냥은 글렀다. 일본군의 재촉에 도포수 구경은 젊은 시절 같이 사냥 다녔던 만덕을 찾아 나섰다. 만덕에게 길잡이만 해달라고 했는데도 나서지 않는다. “어느 산이라도 산군님은 잡는 게 아니여. 자네도 조선 사람잉게 알지 않는가”하는 게 이유였다.
결국은 범 사냥에 군대가 동원되었다. 만덕은 끝까지 사냥에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만덕의 아들 석이가 포상금에 눈이 멀어 포수대에 지원했다. 포수 아재들이 말렸지만 소용없다. 남아있는 산군의 죽은 새끼를 미끼로 덫을 놓고는 꽹과리를 쳐대며 범을 몰았다. 산군의 움직임에 사냥개들이 움찔하고 드디어 몰이꾼 눈앞에 애꾸 범이 나타났다. 지리산 산군, 덩치도 포스도 장난 아니다. 누구도 대적할 생각조차 할 수 없다. 포효 한 번에 산천이 쩌렁쩌렁 울린다. 겁에 질린 군인 하나가 실수로 총을 쏘고 인간 사냥의 시작을 알리는 듯 산군의 분노가 폭발한다. 살인 병기처럼 일본군을 물어뜯고 할퀴었으나 석이는 보고도 못 본 척 지나갔다. 하지만 쓰러졌던 군인의 반격에 산군이 돌아서고 그 바람에 석이도 상처를 입었다.
석이가 시신들 사이에 숨만 붙은 채 쓰러져있고 어둑해지자 늑대들이 몰려왔다. 포수들이 석이를 찾으러 왔으나 늑대들이 끌고 간 뒤였다. 죽음을 앞둔 석이 눈앞에 아버지와 추억들이 지나간다. 이젠 완전히 늑대 밥이려니 생각했는데 산군이 나타났다. 겁 없이 덤비는 늑대 하나를 물어 던지니 다들 꽁무니를 빼기에 바쁘다. 그사이 석이의 숨이 멎었다. 제 몸도 상처투성이건만 산군은 석이의 상처를 핥아준다.
만덕과 산군과의 인연은 석이가 태어난 겨울에 시작되었다. 산에 기대어 살아가는 포수기에 한겨울 눈 덮인 산속이지만 사냥에 나섰다. 이번에는 뭐라도 꼭 잡아야 식구가 굶지 않는다. 나무에 남겨진 커다란 발톱 흔적, 한 줄로 이어진 핏자국. 분명 범이다. 나 여기 있노라 들으란 듯이 허공을 향해 총을 쏘고 나무 뒤에 숨었다. 으르렁 소리가 가까이 까지 왔으나 함부로 쏠 수 없다. 숨을 참고 기다렸다가 녀석이 덤비려고 뛰어올랐을 때 한 방 쐈다. 새끼를 먹이려고 한겨울에 인가에 내려와 집돼지를 잡은 어미 호랑이였다. 새끼 두 마리가 달려왔다. 제 어미 옆에서 마지막까지 악다구니를 쓰던 애꾸 녀석이 있었다. 늑대 밥이 될 것이니 새끼까지 잡아가자던 동료 포수를 막아섰다. 이제 그건 산이 알아서 할 것이다. 그래도 어미 잃은 새끼가 마음이 쓰여 범이 살던 동굴 앞에 꿩 한 마리씩 잡아다 줬다. 궂은 날이면 동굴을 들여다봤다. 두 마리 중 한 놈은 죽었다. 애꾸 녀석이 살아는 있으려나.
세월이 흘러 지리산에 애꾸 범이 나타났다. 만덕은 몰이꾼 수십을 데리고 애꾸 범을 쫓았다. 그런데 범을 잡으려던 총에 산에서 나물을 캐던 아내가 맞았다. 그렇게 아내를 보내고 만덕은 어린 아들 하나 의지하고는 총을 잡던 손에 지팡이를 들고 약초를 캐며 살았다.
자식 잃은 고통을 안다는 듯 산군은 만덕 앞에 석이를 내려놓고는 돌아선다. 자기를 살리고 보살펴준 만덕에게 은혜라도 갚으려는 듯 만덕의 아들을 시신이나마 거두게 해주었다.
도포수 구경은 젊은 시절 산군에게 동생을 잃었다. 얼굴 절반을 차지한 흉터도 산군에게 얻은 것이다. 상금도 상금이려니와 반드시 놈을 잡아 원수를 갚아야 한다. 어차피 산군도 꽤 당해 상처가 깊을 것이니 기회는 지금이다. 그래서 일본 고관에게 추가 병력과 철포 회수대까지 요구한다. 과거 지리산에 숨어든 무장 조선인을 토벌했던 철포 회수대라면 산 어디에 산군이 있는지 알 것이다.
일본 고관도 대호를 잡겠다는 의지가 강했고 결국은 군대가 동원되었다. 수류탄과 다이너마이트를 산 절반에 깔았다. 은폐 엄폐물을 줄여서 녀석의 활동 영역을 줄이자는 것이다. 움직이는 것이라면 작든 크든 다 쏘고 가는 군인들. 총 끝에 칼을 끼우고 점점 녀석의 영역을 향해 진군이다.
군대의 화력이면 충분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지리산에서 누가 산군을 당할 수 있으랴. 자욱한 화약 연기는 인간의 시야만 가릴 뿐, 재장전할 틈도 없이 산군의 송곳니와 발톱에 나가떨어진다. 어디로 도망쳐도 산군의 손바닥이니 우왕좌왕하던 군인들이 모조리 당했다. 하지만 포수들은 산군이 올만 한 곳에서 숨죽여 기다렸다.
드디어 산군이 모습을 드러내고 도포수가 제대로 한 방을 쏘았다. 상처 입고 힘이 빠졌을 테니 이번에 확실히 잡았다고 생각했다. 어림도 없는 착각이었다. 산군은 힘이 빠진 척 비척거리다가 자신을 겨눈 도포수가 가까이 오자 오직 그를 공격하고는 돌아서 간다.
온몸에 상처를 입고 만덕의 집 앞으로 찾아온 산군에게 “가족을 또 다 잃었담서, 나를 원망하는가?”라고 묻는 만덕. 둘은 마치 오랜 친구인 듯하다. 옮기던 걸음을 잠시 멈춰선 산군에게 “그려 알았네”라고 말하는 만덕의 말은 무슨 의미일까?
만덕은 아들의 시신을 깨끗한 천으로 감싸고 지금껏 살아온 집에 불을 놓고 나선다. 무릎 깊이 빠지는 눈길을 걷고 나뭇가지 얽혀 길도 없는 산에 오른다. 산군도 죽은 제 새끼 시신을 동굴 깊이 숨기고는 마지막을 준비한다. 온몸이 피범벅이 되어서도 이 산의 주인임을 잊지 않는다. 사람이라면 결코 올라설 수 없는 깎아 지른 절벽, 만덕은 그곳에서 산군을 기다린다.
영화 ‘대호’는 만주 밀림을 호령한 한국 호랑이가 소재인 러시아 소설을 모티브로 제작했다고 한다. 영화 속 포수대가 구성되고 범과 늑대를 사냥하는 장면처럼 실제 일제 강점기에 ‘해수 구제’ 정책으로 사람을 해치는 짐승을 없앤다며 집중적으로 조선범을 잡았던 사건도 있었다.
영화관에서 보았던 기억으로는 컴퓨터 그래픽임을 알면서도 바람을 가르고 계곡 사이를 나는 듯 달리는 대호의 모습이 실감났다. 커다란 바위 뒤에서 그르렁거리던 소리는 마치 거대한 범이 진짜 내 눈앞에 곧 나타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영화 마지막에 흰 눈밭에 지리산 산군과 조선 최고 총잡이가 나란히 누워 만덕은 예쁜 아내와 아들의 행복한 한때를, 산군은 제 어미와 형제의 즐거운 시절을 꿈꾼다. 날 때부터 애꾸였던 산군, 자신의 어미를 죽였으나 자신을 살린 포수와 나란히 하얀 눈 속에서 깊은 잠이 든 모습은 지극히 비현실적이지만 꼭 그렇게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자연에 속한 존재로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하건만 유독 인간만이 욕심이 과하다. 만족을 모르는 인간의 삶, 그 결과는 고칠 수 없는 상처와 덜어낼 수 없는 고통일 뿐이다. 영화를 다시 보며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어느 쪽도 원 맺히지 않는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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