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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 전투’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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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정희 작성일2022.06.23 조회2,05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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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릉1-6 방면 선무 전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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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봉환되었습니다. 유해를 모신 수송기가 대한민국 영공에 들어오자 “조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신 홍범도 장군님의 귀환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지금부터 대한민국공군이 안전하게 호위하겠습니다. 필승!”이라고 하는 우리 공군 전투기 편대장의 멘트가 가슴에 크게 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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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으로 일본과 싸운 우리 민족의 영웅,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안장하는 영상을 보고 장군에 관해 검색해보았습니다. 봉오동 전투. 1920년 6월 7일 북간도 봉오동에서 독립군 연합부대인 대한북로독군부가 일본군과 싸워 승리한 전투입니다. 연관 검색어에 올라온 영화 ‘봉오동 전투’를 보았습니다.

 

202111252258_Daesoon_250_%EC%98%81%ED%99 ▲ 영화 ‘봉오동 전투’ 예고편 화면 캡쳐(좌), 영화 포스터 1, 2 (우)

 

  영화 첫 장면에 동생을 업은 형이 두만강을 건너 일본군에게 길을 안내합니다. 일본군은 형제에게 사이좋게 나누라며 자루 하나를 줍니다. 그 안에 수류탄이 들어있습니다. 그 폭발로 눈앞에서 동생을 잃은 형(황해철)은 자라서 대한독립군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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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억눌려 살던 조선인들이 1919년 3월 1일 만세 운동을 합니다. 일본군이 무력 진압을 시작하고 이에 항일 무장 투쟁에 불이 붙습니다. 일본군은 무장 독립군을 섬멸하고자 ‘월강추격대’를 편성해 독립군의 근거지로 향합니다. 그곳이 바로 봉오동입니다.
  두만강 근처 일본군 초소를 마적 출신 마병구(대한독립군)와 해철의 부대가 공격합니다. 초소 안에 웅크려 떨고 있는 소년병에게 똑똑히 보라며 적군의 피를 손에 적셔 ‘대한독립만세’라고 벽에 씁니다. 피처럼 붉은 그들의 의지를 대변하는 것 같습니다. 
  독립 자금을 운반하는 이를 쫓는 일본군은 지나는 길에 마을을 모두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는 존재라면 노인도 아낙도 아이도 가리지 않습니다. 그들에겐 그저 사냥이요 기념 촬영을 위한 행위일 뿐입니다. 근처에 있던 이장하(대한독립군)의 부대가 반격합니다. 총 잘 쏘기로 유명한 장하는 적군을 놓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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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강추격대가 엄청난 병기를 끌고 두만강을 건너옵니다. 이제 곧 후안산을 지나 봉오동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사실 장하는 일본군을 봉오동까지 유인하고 있는 겁니다. 절대 부끄럽게 살면 안 된다는 어머니의 유언을 지키려고 이번 임무를 지원했지만, 사실 어릴 적 헤어진 누나가 이곳으로 온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독립 자금 운반책은 몇 번의 위기를 겪습니다. 목숨보다 소중한 독립 자금이기에 결코 일본에 뺏길 수 없습니다. 일본군의 추격은 점점 더 가까워집니다. 그럴수록 봉오동도 가까워집니다. 죽음의 골짜기라 불리는 봉오동에 해철과 장하 그리고 그 부대원들이 들어서면서 영화는 마지막으로 흘러갑니다.
 


  영화 ‘봉오동 전투’는 대한독립을 위해 무장 투쟁한 이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습니다. 그 시절 조직적인 군대가 활약하고 있었음을 영화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들의 존재를 알지도 못했음에 영화를 보는 내내 부끄러웠습니다.
  일본 군인이 대일본 제국에 협조하라고 하자 “니 집에 웬 놈이 시퍼런 칼을 들고 들어와서 같이 밥도 먹고 같이 잘살아보세 한다면 서방 노릇이 되갔니? 마누라고 아새끼고 두 눈 뜨고 내줄 사내가 어디 있갔니?”라며 대꾸하던 해철의 말이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일본군의 숫자는 파악할 수 있어도 전국의 독립군 수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어제 농사짓던 인물이 오늘은 독립군이 될 수 있다.”라는 해철의 대사가 그 이유를 말해줍니다. 나라 뺏긴 설움이 농기구 던지고 총을 잡게 만든 것입니다.
  병구가 매번 마지막 임무라며 목숨 걸고 무기와 독립 자금을 운반해 왔으니 이번엔 진짜 끝내자며 가진 총과 돈을 각자 나눠 갖자고 하자, 해철이 죽어 묻힐 땅이 있냐며 으름장을 놓습니다. “돈 있겠다 총 있겠다 어디 가서 못 살겠어? 총으로 돈 뺏고 돈으로 총 사고, 또 돈 뺏고 또 총 사고….”라는 병구의 대답에 제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뜨끔했습니다. 입도해서 상제님의 공사에 대해 교화 듣고 후천이 틀림없이 온다는 것을 알았고 그러기에 수도해야 함을 알면서도 순간순간 다른 마음을 먹었던….
  무장 독립 투쟁의 역사가 있었기에 이름도 명예도 없는 민중에게 간절했던 대한의 독립을 이룰 수 있었을 겁니다. 그분들이 지켜낸 대한민국이 있어 제가 수도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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