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활동제7회 동아시아 인문포럼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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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상미 작성일2019.05.14 조회4,241회 댓글0건본문
연구위원 신상미
2016년 8월 20일에 중국 북경대학교에서 대순종교문화연구소와 북경대학교 종교문화연구원이 공동 주최하고 대순사상학술원·중국도교문화연구소·중국 사천대학 노자연구원·한국 ASIA종교연구원이 후원한 제7회 동아시아 인문포럼이 개최되었다. 동아시아 인문포럼은 지난 2010년 11월 북경대학교에서 『전경』 중문판 출판기념회와 함께 시작되어 올해로 7회째를 맞았다. 이 학회는 도교적 관점에서 대순사상을 연구하는 방법 또는 대순사상에서의 선관(仙觀)을 연구하는데 디딤돌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에는 ‘동방문화(東方文化)와 심령건강(心靈健康)’이라는 대주제로 한·중·일에서의 심령에 관한 정의와 심령을 건강하게 하는 방법을 알 수 있는 장을 마련하였다. 중국도교협회 부회장 황신양[黃信陽]과 동경대 하치야 쿠니오[蜂屋邦夫] 명예교수, 북경대 왕중위[王宗昱] 교수, 대진대 대순사상학술원 원장 김욱 선감의 축사와 함께 진행되었다. 중국도교협회 측은 2010년의 인연으로 매년 포럼 개막식에 참석하여 축사를 해주고 있다. 이는 종단과 중국도교협회 간의 문화 학술교류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제는 하나의 관례로 자리 잡았다.
학회 전날(19일) 한국 측 학자 및 관계자분들과 함께 북경에 도착하여 북경대 종교문화연구원 부원장인 김훈 교수의 안내로 미리 도착한 외국 학자들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저녁 만찬을 가졌다.
다음 날(20일) 김훈 교수의 사회로 개회식이 진행되어 학술대회에 참석한 한·중·일 3개국의 내빈들이 소개되었다. 논문을 발표할 내빈으로 한국 측은 대순종교문화연구소 차선근 선감, 경기대 이봉호 교수, 인천대 신진식 교수, 한국전통문화대 최재호 강사가 참석하였다. 중국 측은 북경대 왕중위 교수, 사천대 잔스촹[詹石窗] 교수, 북경사범대학 쑤원밍[徐文明] 교수, 북경림업대 리밍[李明] 부교수가 참석하였다. 일본 측은 동경대 하치야 쿠니오 명예교수, 원국제기독교대(原國際基督敎大) 고토 토모꼬[古藤友子] 교수, 신란[親鸞]불교센터 나까무라 료타[中村玲太] 연구원이 참석하여 총 11명의 학자가 발표하였다.
▲ 2016년 동아인문포럼-동방문화와 심령건강 국제학술연토회 기념사진 / 북경대학교
이번 포럼에서 ‘심령(心靈)’을 한·중·일 각 나라에서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또 심령을 건강하게 하는 방법으로 무엇을 제시할 것인지 궁금하였다. 특히, 주제 강연에서 왕중위 교수는 ‘심리건강이 사회문제와 연관이 있는가?’라는 주제로, 심령건강을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는 심리건강에 대해 중앙정부에서 연구한 내용을 언급하였는데, 자료에 따르면 심리건강에 영향을 주는 세 가지 요건이 있다고 하였다. 교육이 높고, 수입이 많을수록 심리건강에 좋은 영향을 주며 거주 환경도 영향을 준다고 하였다. 예를 들어 도시가 시골보다 심리건강에 더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이 강연에서 조금 아쉬웠던 점은 심령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도 중국에서 심리건강이 사회적 환경에 따라 어떻게 영향을 받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봉호 교수는 ‘『황정경(黃庭經)』의 존상신신법(存想身神法)과 화려한 인체 내부세계, 해부학의 도입인가, 아니면 내시법(內侍法)의 발전인가?’라는 주제로 발표하였다. 『황정경』에 나타난 장부(臟腑), 장상(藏象), 황정(黃庭)이 의학의 발달과 해부학의 도입에 의한 것이라는 논리가 있으나 이 교수는 도교 자체의 전통에서 내시법의 발전과 오장신(五臟神)의 발전이 『황정경』의 몸속 세계를 이룩했다는 논리가 타당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내시법에서 존상법(存想法)으로 이어지는 도교의 수련 전통을 찾고 오장신의 역사를 중심으로 설명하였다.
잔스촹 교수는 ‘도교 문화 가치관의 오자진언(五字真言)’이라는 주제로 발표하였다. 발표를 시작하기 전에 그는 먼저 음(音)을 단 『도덕경(道德經)』의 영상을 보여주었다. 항상 소감이나 주제와 관련하여 시(詩)로 표현하는 것이 그분의 특기이다. 도가사상(道家思想)의 핵심을 다섯 가지 글자로 설명하였는데, 도(道)는 어머니 즉 모성애, 덕(德)은 살핀다는 의미로 눈, 선(善)은 만물을 모아서 생장을 돕는다는 의미, 정(靜)은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가라는 뜻으로 도가에서 자신을 수행하고 나라를 다스리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보았다. 그리고 안(安)은 사회적 조건과 자연조건이 결합한 산물을 나타낸다고 주장하였다.
고토 토모꼬 교수는 ‘일본 에도시대의 음식문화, 이시진의 『본초강목(本草綱目)』과 패원익헌(贝原益轩)의 『대화본초(大和本草)』’란 주제로 발표하였는데, 일본은 에도시대 발생했던 강진 이후 한방치료의 중요성이 더욱 드러났다고 한다. 한국, 중국, 일본의 한방역사에 대한 짧은 설명과 에도시대에 일본에서 『본초강목』의 출판이 활성화되었다는 점과 『본초강목』에는 해초류가 없으나 『대화본초』에 있다는 식의 비교연구를 하였다. 그리고 자주 복용하는 약, 복용할 수 있는 약, 복용할 수 없는 약으로 나누어 일본에서 약재를 어떻게 분류하는지 한눈에 정리하였다. 이 논문은 『본초강목』과 『대화본초』의 내용을 알기 쉽게 설명하였다는 평을 받았다.
차선근 선감은 ‘대순진리회의 심관(心觀)’이라는 주제로 발표하였다. 서양의 의학적 유물론이 인간의 영적인 의미를 다 설명할 수 없다는 것과 동양 전통의 종교들은 이 문제에 관해 연구한 것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대순진리회에서의 심신 문제를 고찰하였다. 그는 신명감응과 해원을 키워드로 접근하여 대순진리회의 마음관을 설명했는데, 대순진리회에서 마음은 주체와 객체 개념으로 사용하며, 인존을 구현하는 핵심 장치라고 하였다. 심령은 나의 마음과 나의 영혼이며, 대순진리회의 세계관에서 마음 단련은 자기 자신의 자발적인 노력과 상제님으로부터 덕화를 받음으로써 가능하다고 보았다. 끝으로 대순진리회 마음관은 해원상생 개념이 도입됨으로써 내부적 성찰을 넘어 외부적으로 타인과의 관계를 개선해 나가는 것까지 포함된다고 주장하였다. 차선근 선감은 이번 학회의 대주제에 가장 걸맞은 논문을 발표하였다.
종합토론의 사회자를 맡은 조현범 교수는 심리, 정신, 심령이라는 유사한 용어에 대해 여러 학자의 의견을 들을 수 있는 뜻깊은 자리였다며 한 가지 특징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일본은 심(心)을 마음으로, 중국은 심리건강으로, 대순진리회는 마음+영혼으로 보았다며 대순진리회의 심관을 통해 마음+영혼의 건강 즉 심령건강이라는 용어를 해석하는 데 힌트를 얻었다고 하였다. 이봉호 교수는 서구적인 문화에서 벗어나 동아시아 학자들이 심령건강론을 비롯한 연구를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는 희망적인 소감을 남겼다. 이에 조현범 교수는 왕중위 교수의 논문을 바탕으로 동아시아의 종교에서 마음 회복을 위한 방법에 대해 알아보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대순종교문화연구소 소장인 박상규 보정은 심령건강의 연구에 대해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으며 과거에 신도(神道)나 한국불교에 대해서도 발표하였듯이 꼭 도교 중심의 발표가 아니어도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참석하여 한국과 중국, 일본의 비교 연구가 잘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중국의 연구가 실용적이고 실천적이라면 한국과 일본의 연구는 새로운 이론을 통해서 다양한 이해를 추구하므로 음양 관계인 이론과 실천의 조화로 인해 이 학회장에 오면 많은 것을 얻고 간다며 참석한 학자들을 응원하고 격려하며 학회를 마무리하였다.
▲ 백운관에서의 중국도교협회 회장과 도교문화연구소 부소장과의 간담회 모습
학회가 끝난 다음 날(21일) 오전 학회 참석자들과 함께 중국 도교의 본부인 백운관(白雲觀)에서 중국도교협회 리광푸[李光富] 회장과 도교문화연구소 인즈화[尹志華] 부소장과의 좌담회를 가졌는데, 학회에 이어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리광푸 회장은 1800년의 역사를 지닌 도교는 중국의 전통종교이자 철학이고, 도교 문화는 중국의 고유한 문화유산이라며 이를 보존하기 위해 젊은이들이 배우고 있다고 하였다. 또한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점차 발전하여 현재 중국의 7개 성에 도교협회가 있고 도교 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이 8천여 개가 된다며 중국 도교의 발전과 전망에 관해 설명하였다.
잔스촹 교수 제자이자 중국도교문화연구소 인즈화 부소장은 중국도교의 연구 현황을 소개하였다. 1980년 사천대에 연구소가 설립된 이후 도교를 연구하는 학자가 50여 명이며, 연구 성과는 1980~1990년 무렵에 출판된 『도교통사』와 『도장재운』이라고 하였다. 현재 사천대에는 10여 명의 석·박사가 있으며 진행 중인 연구와 앞으로 진행해야 할 연구에 대해 언급하였다. 끊어진 도교사, 교파, 경전, 의례, 제도, 교리 사상, 수련, 인물, 예술, 법술, 도관의 비문, 문헌 등에 관한 연구와 도관(道觀)이나 도사(道士)들의 관계연구, 도교의 신선 계보에 대한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좀 더 전문적인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언급해 주어 도교에 대한 연구와 문제점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이에 참석자 모두 대순진리회와 중국 도교가 동아시아의 화합과 평화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고 문화와 학술교류를 더욱 활성화할 것을 약속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이어서 강서성(江西省) 용호산(龍虎山)의 사한천사부(嗣漢天師府), 상청궁(上淸宮), 정일관(正一觀) 등의 도교 사원을 방문하기 위해 강서성 난창[南昌]시로 이동하여 하루를 보낸 후 22일 오전에 잉탄[鹰潭]시에 도착하였다. 난창에서 잉탄으로 버스를 타고 2시간 정도 이동하면서 이 지역의 특징을 알 수 있었다. 버스 창문을 통해 끝없이 펼쳐진 논과 강, 적토를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볼 수 있었다. 마치 여주에서 이천으로 가는 길에 흔히 볼 수 있었던 논과 강, 적토를 보는 듯하였다. 그래서인지 이곳의 특산품도 여주와 유사하게 쌀과 도자기였다.
▲ 기념품 전달, 대진대 대순사상학술원 원장 김욱 선감과 대순종교문화연구소 소장 박상규 보정
숙소 근처에서 점심을 먹은 후 사한천사부와 상청궁을 방문하였다. 사한천사부의 유래는 장도릉(張道陵)이 용호산에서 수련하여 도를 얻은 후, 4대 천사(天師: 장도릉의 계승자) 장성(張盛)이 용호산 천사부(天師府)에 이주하여 도교를 전파하였다는 설과 24대 천사 장정수(張正隨)가 용호산에서 도교를 전파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설 두 가지가 있다. 간담회에서는 이에 대한 언급이 없었는데, 다만 흥미로운 것은 사한천사부 관계자가 정일도의 정통 맥을 이었다고 주장하는 내용이었다. 63대 천사 장은부(張恩溥)가 1927년 정부로부터 천사의 칭호를 박탈당하고 용호산에서 쫓겨나 대만으로 이주하여 그 정통이 대만에서 이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사한천사부에서는 당시 장천사는 쫓겨났으나 장천사 옆에서 주요 역할을 했던 실무자인 왕 씨와 진 씨 두 법관이 남아있었기에 이곳에서 정통 맥을 이었다고 주장하였다. 사한천사부를 재건할 수 있었던 것도 두 법관 덕분에 가능했다고 한다. 어디에서도 접할 수 없었던 내용이었다. 중화민국 시대에 용호산에서는 “멸해도 멸하지 않고 끊으려 해도 끊기지 않는 63대”라는 예언이 있었다고 한다. 무시할 수 없는 예언이 되고 말았다. 어찌 되었든 장도릉의 후예들은 약 1,800년 동안 용호산을 지키고 있으며, 산동(山東)의 공자(孔子) 일족에 버금가는 명문 세가로 “남쪽은 장씨, 북방은 공씨(南張北孔)”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인정받았다.
천사들은 역대 왕조로부터 꾸준한 지원을 받았기에 많은 경제적 원조와 혜택을 누렸다. 특히 용호산의 도교가 절정을 이뤘던 원나라 때에는 10곳의 도궁(道宮), 81좌의 도관(道觀)과 50좌의 도원(道院), 그리고 10곳의 도암(道庵)이 있었다고 한다. 축소한 건축모형을 보니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였다. 한나라 이후 도교의 위세는 점차 쇠퇴하였으며 지금은 천사부, 정일관, 상청궁만 남아있다.
하치야 쿠니오 교수는 1987년과 1993년 두 차례 천사부에 와서 도면을 그리고 자료를 수집한 바 있었다. 천사부에서는 중요한 자료를 모아 전시할 예정인데 하치야 쿠니오 교수의 자료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요청하였다. 오랫동안 주로 현장을 학습하며 연구해 온 하치야 쿠니오 교수의 노력이 빛을 보는 순간에 함께할 수 있어서 영광스러웠다.
우리 일행은 잠시 사한사천부를 둘러보았다. 옥황상제를 모신 옥황전(玉皇殿), 명나라 때 지어진 삼성당(三省堂), 역대 천사들이 마시거나 단약(丹藥)을 만들 때 애용했다는 우물 영천정(靈泉井)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곳에 오면 꼭 가보고 싶었던 뇌조전(雷組殿)을 구경하였다.
다음으로 간 곳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의 상청궁(上淸宮)이었다. 이곳은 아홉 마리의 용이 모인다는 명당이다. 아홉의 용은 상청궁을 둘러싸고 있는 천문산(天門山), 태산(台山), 오검산(烏劍山), 사자산(獅子山), 충천봉(沖天峰), 응천산(應天山), 서화산(西華山), 오귀산(烏龜山), 성정산(聖井山)을 말한다. 1113년에 상청정일궁(上清正一宮)이라는 명칭을 얻었으나 줄여서 상청궁(上淸宮) 또는 대상청궁(大上淸宮)이라 부른다. 1687년 청나라 강희황제가 하사한 “大上淸宮” 편액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불행하게도 1930년 큰 화재가 발생하여 복지문(福地門), 하마정(下馬亭), 오조문(午朝門), 종루(鍾樓), 동은원(東隱院) 등을 제외하고는 모두 소실되었다. 다행히 부분적으로 복원공사가 진행되었다가 유물이 발굴되어 보류 중이다.
복마전(伏魔殿)은 장도릉이 108요괴를 가둬둔 곳으로 전설에 따르면 장도릉이 도교를 창시할 때 마귀라고 부르는 수많은 이교의 수령들을 제압하여 이곳에 가두었다고 한다. 복마전은 붉은 벽에 가로 세 칸의 작은 건물이며 문에는 봉인지(封印紙)가 아직도 붙어있었다. 내부에는 장도릉의 소상 중앙에 봉인된 석정(石井)이 한 개 있었다. 석정은 무거운 돌로 막혀 있고, 한쪽에는 돌거북 비석이 보였다. 복마전을 알게 된 것은 『수호전(水滸傳)』 1편을 통해서다. 책에서 보고 상상했었던 곳을 직접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수호전』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북송(北宋) 인종(仁宗, 1010-1063) 때 온 나라에 역병이 돌자 인종은 용호산에 사는 장천사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관리인 홍태위(洪太尉)를 보냈다. 홍태위는 장천사가 외출한 사이 이곳저곳을 구경하다가 복마전 이야기를 듣고, 요상한 이야기로 어리석은 백성을 속인다고 크게 분노하며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마귀를 가둬둔 봉인을 파괴하였다. 그러자 갇혀있던 108요괴들이 풀려났는데, 이들이 『수호전』의 108인이라는 내용이다. 『수호전』은 중국 소설 중에서 농민 봉기를 소재로 한 대표적인 소설이다. 그래서 민중에게는 108명의 주인공이 영웅호걸로 칭송의 대상이나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폭동을 일으킨 요괴와도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전설이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식사 후 ‘꿈을 찾는 용호산[寻梦龙虎山]’ 공연을 관람하였다. 이 공연은 용호산의 역사와 문화를 배경으로 한 것으로 2년간 3억 위안을 투자하여 만든 대형 실경(實景) 공연이었다. 배를 타고 이동하며 공연을 감상하였는데 처음 보는 장엄한 광경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정말 신선들이 춤을 추는 듯하고 마치 무릉도원에 온 듯하였다. 논문과 책으로만 도교의 신선 세계를 공부하다가 이렇게 실제 체험하듯 신선 세계를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와 천둥 번개는 공연을 더욱 실감 나게 만들어 주었다.
23일에는 대나무 쪽배를 타고 용호산의 노계하(瀘溪河) 강을 유람하며 붉은빛의 단하 지형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유유히 배를 타고 경치를 구경하니 무이산(武夷山)의 계곡이 떠올랐다. 용호산은 무이산의 여맥으로 이루어진 산이라 그런지 분위기가 유사하였다. 무이산의 계곡이라 하면 생각나는 것은 주자(朱子, 1130-1200년)가 지은 무이구곡(武夷九曲)이다. 무이구곡은 『전경』 교운 1장 66절에도 나오듯이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된다.
다음은 마지막 도교 사원인 정일관에 들렀다. 전해오는 바로는 장도릉 천사가 단약을 만들고 도를 닦던 곳이라 한다. 명(明) 가정(嘉靖) 32년(1553년) 제49대 천사인 장영서(張永緒)가 중건하면서 이곳이 도교 정일파(正一派)의 본원임을 뜻하기 위해 “정일관(正一觀)”이라 명명하였다. 안타깝게도 1947년 화재로 없어졌다가 2000년에 다시 지었다. 장도릉과 그의 제자들을 모신 조사전(祖師殿)과 노군각(老君閣)을 관람하고 오후에 용호산 잔도(棧道)를 산행할 팀과 자유시간을 가질 팀으로 나눠 시간을 보낸 후 저녁에 강서성 도교협회가 주관한 만찬회를 끝으로 공식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이번 학회 및 학술답사를 통해 도교를 더욱 이해할 수 있었고 무엇을 연구해야 할지 개인적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일행이 가는 곳마다 도교협회 관계자들의 따뜻한 환대를 받았으며, 앞으로의 교류 활성화와 동아시아 인문포럼은 물론 대순사상을 알릴 수 있는 길이 넓게 펼쳐지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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