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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慼)을 짓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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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2.10 조회2,6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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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연구위원 주현철

 

  인간은 사회라는 한 울타리 속에서 상호 무한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이러한 인간관계는 서로를 의지하여 위안이 되고 서로를 발전시켜 상생(相生)의 길로 나아가게도 하지만, 서로의 이해득실과 입장차이로 서로를 미워하고 시기하고 대립함으로써 상극적(相克的)인 척(慼)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척(慼)은 나의 잘못으로 인해 상대가 나에 대한 원망을 가질 때 발생한다. 곧 척(慼)은 나에 대한 남의 원한(怨恨)으로서, 남으로 하여금 나에 대하여 원한을 갖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척을 푸는 주체는 남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이어야 한다. 내가 먼저 척을 풀면 상대방의 척은 스스로 풀리고, 양자(兩者)의 척이 풀려서 해원(解)이 되고, 해원이 되어야 상생(相生)이 된다. 이로써 우리 도(道)에서 추구하는 해원상생(解相生)의 세계를 이룩할 수 있다.

  상제님께서는 “속담에 「무척 잘 산다」이르나니 이는 척이 없어야 잘 된다는 말이라. 남에게 억울한 원한을 짓지 말라. 이것이 척이 되어 보복하나니라. 또 남을 미워하지 말라. 사람은 몰라도 신명은 먼저 알고 척이 되어 갚나니라.”(교법 2장 44절)고 말씀하셨다. 척은 한번 맺히게 되면 어느 한쪽이 풀려고 하지 않는 한, 쌍방 모두가 폐해(弊害)를 입게 된다. 척에 걸리면 반드시 척신(神)이 동(動)하여 자신의 앞길을 가로 막는다. 이를테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 방해를 받아 이루어지지 않거나, 자신이 상대에게 피해를 끼친 만큼 자신이 당하는 결과로 나타나기도 한다.

  척은 맺히면 보복을 낳고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낳는다. 남이 나에게 피해를 입혔다고 해서 나도 상대에게 피해를 입히려고 한다면, 이는 악(惡)을 악으로 갚는 것이기 때문에, 악순환만 계속될 것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고 마음에 상처를 주어 척을 지은 것이 본의 아닌 실수이든 의도적인 것에 의한 것이었든, 모든 척은 나로부터 원인(原因)이 되기 때문에, 상호간에 불화가 생겼다 하더라도 남을 탓하지 말고 내가 먼저 나 자신의 허물을 되살피고, 남을 포용하면 척은 발생되지 않을 것이다.

  척을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척을 맺지 않으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척을 맺지 않기 위해서는 원칙(原則)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 원칙이란 부·명예·권력 등을 추구하는 세속적인 생활 중심의 원칙도 있지만, 여기서 말하려는 원칙은 진리에 입각한 상생의 원칙을 말한다. 전자(前者)는 시류(時流)에 따라 빈번히 변하지만, 후자(後者)는 심오하고 근본적이며 보편적이고 영구불변하다. 그래서 상생의 원칙은 다른 사람의 행동과 환경, 유행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의 견해나 사회적 관행에 따라 결정되는 것도 아니며, 천재지변으로 인해 바뀌거나 파괴되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지나온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도 올바른 원칙은 반드시 모든 일을 바른 길로 귀착되게 했다.

  원칙은 상생(相生)의 원리로서 사랑이 바탕이 된다. 가정과 사회, 국가와 세계가 화합·단결하려면 가족애(家族愛), 동료애(同僚愛), 동포애(同胞愛), 인류애(人類愛) 등이 있어야 한다.

  원칙은 지극히 순수하고 평범한 인간의 도리라고 말할 수 있다. 원칙을 지킨다는 것은 가정에서 화목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신의(信義)를 지키고, 직장에서 자기 책임을 다하고 사회에서 법을 준수하고 질서를 지키고, 어려운 이웃이 있으면 따뜻하게 보살펴 주고 남을 위해 기꺼이 봉사 헌신하는 것이다. 이러한 실천이 가정의 화목, 사회의 안녕, 세계의 평화를 위한 원동력이 될 것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남이 잘 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삶, 이것이 원칙을 지키며 사는 삶이다. 원칙이 인간을 구속하거나 인간의 자유를 빼앗아 가는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은 불편하겠지만 원칙을 지키며 살려고 하는 것은 나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원칙을 지킨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 대한 애정과 배려가 담겨 있다. 그래서 원칙을 지키며 사는 사람들에게 화합이라는 말을 특별히 강조할 필요조차 없다. 그들은 이미 화합을 위해 노력하거나 그런 관계를 형성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일종의 상생의 실천가라고 할 수 있다.

  공명정대(公明正大)함은 척을 물리칠 수 있는 방지책이다. 공명정대(公明正大)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어렵지만 소중한 일이다. 그런데 오늘날 사회의 관심은 이런 사람이 아니라 유능한 사람 편에만 쏠리고 있다. 공명정대함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유능한 사람이 되면 그 유능함은 절대로 개인과 사회에 유익(有益)하지 못하며, 그 유능함은 자신과 세상을 파괴하는 능력으로 잘못 사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척 발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상생의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유능한 사람보다 공명정대한 사람이 더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이다. 물론 공명정대하면서 유능하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을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신명은 탐내어 부당한 자리에 앉거나 일들을 편벽되게 처사하는 자들의 덜미를 쳐서 물리치나니라. 자리를 탐내지 말며 편벽된 처사를 삼가하고 덕을 닦기를 힘쓰고 마음을 올바르게 가지라. 신명들이 자리를 정하여 서로 받들어 앉히리라.”(교법 1장 29절)고 하셨다. 이 말씀은 공명정대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사욕(私慾)과 편벽(偏僻)을 멀리하고 수도(修道)에 전념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공명정대함은 형평성(衡平性)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지나친 절약은 인색함이 되고, 지나친 용기는 무모함이 되고, 지나친 신중은 비겁함이 될 수 있듯이, 무조건적인 관대함과 지나친 사랑은 편애(偏愛)가 되어 척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이를테면 똑같은 과오를 범했는데도 친분이 있는 사람에게는 그 죄를 묻지 않거나 벌을 가볍게 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그 죄를 과다하게 적용하여 벌을 무겁게 내린다면, 그 집단의 내규(內規)는 형평성을 잃어 있으나마나 한 규칙이 될 뿐만 아니라 척을 만들어내는 규칙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면 어느 누구도 자신의 과오를 시인하려고 하거나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고, 요령만이 난무하게 될 것이다. 결국 그 집단의 기강(紀綱)은 무너지고 조직은 와해(瓦解)될 것이 명백하다. 형평성을 가진 엄격한 규칙의 적용은 척을 근절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며, 집단의 화합과 발전을 가져오게 할 것이다.

  척은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맺혀질 수 있다. 그래서 항상 인도적(人道的)인 입장에 서서 원칙을 고수하고 공명정대한 생활로 남을 사랑하고 어진 마음을 가져 온공(溫恭)·양순(良順)·겸손(謙遜)·사양(辭讓)의 덕(德)으로써 남을 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대순진리회요람』, 19~20쪽 참조) 남을 잘 되게 하려는 마음, 이것이 척을 물리칠 수 있는 최대의 방책이 될 것이다.  

《대순회보》 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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