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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기(無自欺)-정신개벽(精神開闢) : 성·경·신(誠敬信)에 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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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2.10 조회2,13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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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도(道)에서 추구하는 궁극적인 인간과 세계는 지상신선(地上神仙)과 지상천국(地上天國)이다. 이러한 인간의 실현과 세계의 건설은 오직 정신개벽(精神開闢)이 전제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 정신개벽은 무엇이고, 그 실현방법은 무엇인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정신과 마음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정신(精神)이라는 말은 물질(物質)·육체(肉體)에 대립하는 것으로서, 대체로 마음(心)과 별 의미구분 없이 사용된다. 이를테면 서양언어 중 접두사 ‘psycho-’는 우리말로 ‘정신-’이라고 번역되기도 하고 ‘심리-’라고 번역되는 것을 보아도 어떤 일정한 원칙이 없이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다. 물론 서양의 경우 정신과 마음을 구별하여 영어에서는 ‘spirit’와 ‘mind’로 표현한다. 전자(前者)가 인간의 경우 집단적인 생명의 뜻, 즉 비교적 지적(知的)이고 다소 차원 높은 원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는데 비하여, 후자(後者)는 인간의 정서적 ·감정적인 면을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비교적 많다.

  우리말의 경우도 정신과 마음이라는 말 사이에 막연하게 느낄 수 있는 뉘앙스의 차이는 있지만, 양자(兩者) 사이엔 본질적인 의미의 차이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우리 도(道)에서는 무자기(無自欺)―정신개벽(精神開闢)을 주장하고 있다. 무자기란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 즉 ‘자기 마음을 속이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훈회(訓誨)에서도 ‘마음을 속이지 말라’고 하였는데, 이는 곧 무자기를 이름이다. 이렇게 정신개벽은 마음을 정직히 함으로써 가능하다고 볼 때, 정신과 마음은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개벽(開闢)이란 천개지벽(天開地闢)의 준말로서, 선천개벽과 후천개벽이 있다. 선천개벽(先天開闢)은 우주만물이 처음 생성된다는 창조를, 후천개벽(後天開闢)은 선천세계의 상극적 상황을 완전히 극복한 이상적인 새로운 세계의 창조를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정신개벽(精神開闢)을 정의하자면, 정신개벽은 후천선경의 세계에 맞는 새로운 정신으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선천과 후천의 과도기를 살아가고 있는 인류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선천의 낡고 병든 정신에서 탈피하지 못함으로써, 후천시대를 열지 못하고 있다. 상제께서는 선천의 정신 상태로는 지상낙원인 후천세계를 이룩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정신으로 무장할 것을 천명하셨다. 이것이 바로 정신개벽이다. 새로운 정신이란 곧 상생(相生)의 정신으로서 상생세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정신적 덕목이 요구되지만, 여기서는 수도(修道)의 삼요체(三要諦)인 성·경·신(誠敬信)과 관련하여 생각해보고자 한다.

  성(誠)은 진실한 마음이다. 성(誠)은 사전적(辭典的)으로 ‘진실’, ‘정성’ 등을 의미한다. 고전적(古典的) 의미로는 『중용(中庸)』에서 말하는 의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중용』(20장)에 “성실은 하늘의 도(道)요, 성실해지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道理)이다(誠者 天之道也 誠之者 人之道也).”라고 하였다. 성(誠)은 하늘의 도(道)이기 때문에 거짓이 없이 진실하다. 인간은 본래 하늘의 품성인 천성(天性)을 타고나지만, 세상을 살면서 혼탁한 기질에 익숙해져 천성을 잃어간다. 하늘이 준 천성을 회복하여 진실한 마음을 되찾는 것이 정신개벽이다. 곧 성(誠)은 무자기(無自欺)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성(誠)을 이루기 위해서는 거짓과 꾸밈이 없이 한결같은 마음으로 항상 끊임이 없이 조밀(調密)하고 틈과 쉼이 없이 오직 부족(不足)함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정성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

  경(敬)은 진실하고 예의 바른 행실이다. 성(誠)이 마음의 자세라면, 경(敬)은 몸의 자세이다. “말은 마음의 외침이고 행실은 마음의 자취”라 하였고, “마음은 몸을 주관(主管)한다”고 하였듯이, 경(敬)은 근본적으로 성(誠)에서 나온다. 그래서 마음이 진실하면 진실한 언행(言行)이 나오고, 마음이 진실하지 않으면 그 언행 또한 진실하지 않은 것이다.

  경(敬)은 심신(心身)의 움직임을 받아 일신상 예의(禮儀)에 알맞게 행해 나가는 것이다. 경(敬)은 마음과 몸의 조화로써 이루어지며, 반드시 예(禮)에 입각한 몸의 자세이어야 한다. 『대순지침』(68쪽 참조)에서는 예(禮)란 인간이 일생 동안 움직일 때나 정지해 있을 때나 앉아 있을 때나 누워 있을 때를 가리지 않고 항상 정도에 넘는 일이 없이, 공경하는 마음으로 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여 줌으로써 인간의 도리를 갖추는 일이라고 말한다.

  부자·형제·스승 등 인간사회의 모든 질서는 예(禮)가 아니면 바로 설 수 없고, 일상의 모든 일도 예가 아니면 바로 행해질 수 없다. 또 조상을 받들고 신명(神明) 앞에 치성을 드리는 일에도 정성의 예를 갖추어야 하므로 사념(邪念)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공경심을 가져야 한다.

  예(禮)를 갖추지 않고서는 경(敬)을 실천할 수 없고, 경의 실천 없이 인간의 도리인 성(誠)을 다했다고 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성(誠)은 경(敬)의 근본이며, 경은 성을 실천하려는 몸의 자세이고, 예는 경을 몸으로 실천하는 방법인 것이다.

  신(信)은 확고한 믿음이다. 믿음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는 불변(不變)과 부동(不動)의 원칙이다. 상제님의 대순(大巡)하신 진리를 믿고 실천하려는 마음이 확고하다면, 항상 그 마음에 흔들림이나 변화가 있어서는 안 된다. 상제님을 신앙함에 있어 이해타산이나 의심에 의해 마음이 동요되어서는 안 되며, 극한적인 상황이 닥쳐도 죽음을 각오하고 그 진리를 지키려는 마음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 마음은 만고(萬古)에 사계절과 밤낮의 어김이 없는 것과 같이 변해서는 안 되며,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산과 강이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인 듯이 견고하고 움직임이 없어야 한다.

  둘째는 기약(期約)과 한도(限度)의 원칙이다. 상제님을 신앙함에 있어 막연하고 무계획적인 믿음은 자칫 자포자기의 상태를 초래할 수 있다. 기약과 한도의 원칙이란 신앙을 함에 있어 자신의 역량에 따라 목표를 세우고, 목표달성을 위해 최선을 다한 후 목표가 이루어지면, 더 높은 목표를 세워 하나씩 단계적으로 정성을 다해 이루어 나가는 것을 말한다. 우리 수도인들은 이러한 불변(不變)과 부동(不動), 기약(期約)과 한도(限度)의 신앙적 원칙을 반드시 지켜 믿음을 돈독히 해야 한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성·경·신(誠敬信)은 정신개벽을 위한 중요한 자세이다. 성(誠)은 기심(欺心)이 없어야 하며, 경(敬)은 예절을 바르게 행하는 것이며, 믿음은 의심을 품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대순지침』, 54쪽 참조) 이렇듯 정신개벽은 인간에게 초인적(超人的)인 능력이나 불가능한 노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신앙적으로는 상제님을 대함에 있어 무자기(無自欺)를 바탕으로 영원히 모시는 정신을 마음에 정성껏 간직하여 잊지 않고, 또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일심(一心)을 가지고 예를 다하여 지성(至誠)으로 봉축(奉祝)함으로써 도심(道心)을 강화해야 한다. 일상적으로는 사회생활 속에서 「훈회」와 「수칙」을 생활화하여 양심(良心)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함으로써 정신은 개벽될 수 있다. 부정과 불의를 멀리하고, 항상 과부족(過不足)이 없는가를 살펴 고쳐 나가고, 부끄러운 행동을 하면 부끄러워하고 반성할 줄 아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봉사와 헌신을 통해 남을 잘 되게 하려는 상생(相生)의 정신을 실천해나가는 것이다.   

《대순회보》 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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