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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식, 실천 그리고 생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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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9.15 조회2,23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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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말을 바르게 인식하고 실천하여 생활화되도록 하라.” 

『대순지침』, 훈시의 대지(大志) 중에서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라고 한다. 이 말은 인간이 사물을 감각을 통해 받아들인 다음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인식(認識)과정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인간이 이성적이면서 합리적인 존재이지만 일상생활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어떠한 경우에는 감정의 흐름에 치우치거나 사심(私心)에 따라 자신을 합리화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들이 나름대로 합리적이라고 판단하는 내면에는 감정 이외에도 습관, 편견, 고정관념 등의 자기 중심적인 생각이 깔려있다.

  그렇다면 올바른 인식을 위해서는 어떠한 자세가 필요할까? 교운 2장 41절 「포유문(布喩文)」에서 그 단초를 찾아보기로 하자. 도주님께서는 내 마음의 지극한 보배인 심령(心靈)을 구하라고 하셨다. 심령은 인간의 천품성인 양심(良心)을 회복한 본래의 마음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심령과 통한다면 신명과 소통할 수 있고 만물과 더불어 질서가 갖추어진다고 하셨다. 심령을 구하기 위해 첫 단계로 제시하신 것이 나의 심기(心氣)를 바르게 하라[正吾之心氣]이다. 바로 감정과 주관적 생각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반성하는 과정을 가장 먼저 요청하신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일상 기거동정(起居動靜)에서 이목구비(耳目口鼻)에 총명도리(聰明道理)가 있으니 귀는 수(水)에 해당하고 눈은 화(火)에 해당하며 이것이 명백한 후에 모든 일을 알 수 있다”01고 하셨다. 총명(聰明)은 낮은 곳으로 흐르는 성질의 수(水)와 같이 자신을 낮추어서 상대에게 귀 기울이며 불과 같이 눈이 밝은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감각기관이 지닌 주관성을 넘어 인식의 객관성을 확보할 때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대순진리회요람』의 성(誠)에서는 모든 것이 마음에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는 것이어서 정성(精誠)이란 늘 끊임이 없이 조밀하고 틈과 쉼이 없이 오직 부족함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이른다고 하였다. 이런 정성스러운 마음이 될 때라야만 나의 생각에서 벗어나 참다운 진리를 볼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지극한 정성을 들여서 자신을 반성할 때라야만 대순진리에 대한 바른 이해가 가능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주관이 아닌 대순진리의 관점에서 올바르게 자신을 인식할 때 변화 의지가 싹튼다. 즉, 자신에 대한 반성과 변화에 대한 욕구에서 수도가 시작된다. 그러나 머리에만 머문 진리가 현실로 드러나기 위해서는 몸으로의 실천(實踐)이 있어야만 한다. 『전경』 교법 1장 22절에는 “사람이 옳은 말을 듣고 실행치 않는 것은 바위에 물 주기와 같으니라.”라고 되어 있다. 진리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바로 몸으로의 행동에서 드러나며 구체화된다. 문제는 대순진리를 이해한다고 해서 실천이 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식과 실천의 관계는 자전거를 타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자전거 운행 원리를 안다고 해서 처음부터 잘 탈 수는 없다.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연습을 하다보면 어느 순간 두 바퀴가 하나가 되어 자연스럽게 마음먹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이렇듯 인식과 실천은 상호 보완관계와도 같아서 인식을 한 다음 실천이 따를 수도 있지만 실천을 통해 문제에 대해 인식할 수도 있다. 이렇게 내 자신이 일상생활에서 인식과 실천을 통해 하나가 될 때까지 끊임없이 노력할 때 이것이 바로 생활화(生活化)의 과정이 된다. 

  생활화는 때와 장소라는 조건 없이 현실 생활에서 지속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여건과 환경이 충족되어야만 수도를 할 수 있고 도장, 회관, 회의실, 포덕소 등과 같은 곳에서만 나의 도심(道心)이 갖추어진다면 수도는 이원화될 것이다. 일상생활이 바로 수도의 영역이며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인식과 실천의 대상이다. 이렇듯 어느 때, 어느 장소에 관계없이 인식과 실천이 하나가 되는 자세가 되어야만 진정한 생활화라고 할 수 있다.

  도전님께서는 몸과 마음이 일치되어 저절로 행하여지는 것이 생활화라고 하시며 일상생활에서 솔선수범, 가정화목, 이웃화합의 생활화가 될 때 도통진경(道通眞境)이라고 말씀하셨다.02 또한 상제님의 말씀을 항상 마음에 새겨 언행과 처사가 일치되게 생활화하여 세립미진(細入微塵)되고, 마음이 무욕청정(無慾淸淨)이 되었을 때 도통진경에 이른다03고 하셨다. 이 점에서 볼 때 수도의 생활화가 가정에서 사회로 범위가 확대되어 나가며 도통진경의 근본원리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순진리회 수도는 피안의 이상향으로 가고자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현실에 안주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것이 바로 이 현실, 이 지상에서 해답을 찾아나가면서 우리 모두 지상신선(地上神仙)을 실현하기 위한 실천수도(實踐修道)이다. 또한 상제님 진리를 훈회·수칙을 통해 일상생활에서 배우고 실천하면서 진리와 하나가 되어 나가는 실질수도(實質修道)이다. 이렇게 우리 자신이 인식, 실천 그리고 생활화를 통해 대순진리를 가족과 사회에 확대해 나간다면 이 지상은 머지않아 천국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대순회보》 14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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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제생 43절. 日用事物起居動靜 在於耳目口鼻聰明道理 耳屬水 目屬火 明白然後萬事可知

02 「도전님 훈시」 『대순회보』6호.

03 『대순지침』,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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