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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의 전환과 상생(相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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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9.15 조회3,3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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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사람은 누구나 한 번쯤 저마다의 발전과 변화를 위해 새로운 다짐을 해보았을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다짐이 생각대로 잘 지켜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 성취감을 만끽하는 경우는 소수에 불과합니다. 어떤 다짐이든 그것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부단한 자기반성과 함께 인고의 시간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성숙하고 발전된 모습으로 성장하기 위해 순간순간 흐트러지는 마음을 다잡으며 변화를 이끌어내지 않는 이상 새로운 다짐은 물거품이 되기 십상입니다. 더군다나 새로운 삶을 위한 변화는 그 누구도 그것을 대신하여 줄 수 없기에 변화의 시작은 늘 자신에게서 비롯되고 선택의 키(key) 또한 오직 자신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자신으로부터의 변화와 혁신. 언뜻 생각하면 미루어두고 풀지 못한 숙제 같아 난해하게 여겨지기도 하겠지만 마음을 다잡고 자신의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전혀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문제도 이내 자신에게서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 까닭은 세상 누구보다 자신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 것 또한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고 자신을 변화시켜 새롭게 혁신하기 위해 노력하면 세상에서 가장 바꾸기 쉬운 것도 자신이고, 나아가 세상을 바꾸는 것보다 자신을 바꾸기가 훨씬 쉽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변화의 시작을 자신에게서 찾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상에서 때때로 상대방을 탓하거나 혹은 ‘누구 때문에 못 살겠다’는 식의 말이 이 경우에 해당하는 표현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삶을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상대방에게 “당신이 변하지 않으면 나와 맞지 않아서 못살겠어!”, “저 사람은 너무 독단적이어서 나와 성격이 안 맞아.”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두 사람이 모두 이런 상극적인 관점에서 서로를 비난한다면 미움과 원망의 감정을 키워 결국에는 서로 원수가 되어 등을 지게 됩니다. 이는 마치 두 명의 ‘선인장 부부’가 좁은 화분에서 살기 위해 상대방에게 따가운 가시를 먼저 없애라는 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건강한 방식으로 사고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서로가 받아들이거나 상대를 인정했더라면 적응하며 잘 살아갈 텐데 도대체 저 사람들은 매번 왜 저런 방식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상극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상대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이 상대에게 쏜 질타나 비난의 화살을 거두어들이고 자신을 먼저 돌아보아야 가능한 것이기에 당사자로서는 생각보다 녹녹치 않은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들도 사고의 관점을 바꾸어 모든 변화의 시작을 자신에게서 찾아 마음을 고쳐먹게 되면 분명 그 순간부터 타인도 세상도 달리 보이게 될 것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상제님께서도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악장제거무비초 호취간래총시화(惡將除去無非草 好取看來總是花)”01라는 말씀이 그것인데, 이는 사람의 생각이나 마음가짐에 따라서 같은 대상이라도 바라보는 시각과 행동에 차이가 있다는 말씀으로 인간의 마음가짐에 대한 귀감이 되는 가르침입니다. 상제님의 이 말씀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서부터 수시로 마주치는 대상과 생각에 이르기까지 이를 어떤 시각과 관점으로 대하느냐 하는 것이 전적으로 자신의 마음가짐에 달려있음을 의미합니다. 또한 상제님께서는 천지종용지사(天地從容之事)도 자아유지(自我由之)하고 천지 분란지사(天地紛亂之事)도 자아유지 한다고도 하셨습니다.02 이는 곧 모든 것이 다른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비롯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상제님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겨 인식을 전환하고 나아가 모든 마음가짐을 바르게 세우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수도를 통해 일상 자신의 과부족을 포함한 자기반성을 꾸준히 해 나간다면 ‘상극적인 자신’을 ‘상생적인 자신’으로 변화시키고 나아가 천품성인 양심을 회복하는 일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닙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상극적인 나를 상생적인 나로 변화시키는 일은 체질과 성격을 고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상극적인 자아를 혁신하여 상생적인 새로운 나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인간개조와 정신개벽의 일환으로 체질과 성격을 고쳐 스스로를 상생적인 모습으로 바꾸는 혁신은 상제님의 유지(遺志)와 도주님의 유법(遺法), 그리고 도전님의 유훈(遺訓)에 의한 종교적 법리를 토대로 수도해 나갈 때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일이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없듯 여기에도 수많은 어려움이 뒤따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에 관해 도전님께서는 “자신을 혁신하여 새롭게 되라”03는 말씀과 함께 “새롭게 혁신하여 모든 척을 없앰으로써 도통을 받을 수 있는 성숙한 도인이 되어야 한다”04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이는 곧 자신을 상생적인 모습으로 변화시켜 상극적인 모습을 없애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성경신을 다해 대순진리를 생활화하여 해원상생의 원리에 부합되는 상생적인 모습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러한 수도법방에 입각하여 자신을 상생적인 모습으로 바꾼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도전님의 말씀대로 도통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대순회보》 1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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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교법 1장 11절.

02 교법 3장 29절.

03 『대순회보』 35호 참조.

04 『대순회보』 35호, 도전님 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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