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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大學)의 다른 장(章)을 외워주시며 잘 기억하여 두라고 이르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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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6.18 조회25,1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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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을 보면 한문 구절이 많이 보인다. 이 가운데는 상제님께서 직접 쓰신 시나 글월도 있고 고전에서 인용하신 것도 있다. 상제님께서 고전에서 인용한 구절을 보면 잘 알아두라, 기억해 두라고 하신 것이 있는데 이 글에서는 그 가운데 교운 1장 57절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다음은 교운 1장 57절과 그 구절에 관한 해석이다.

 

 

 

또 대학(大學)의 다른 장(章)을 외워주시며 잘 기억하여 두라고 이르셨는데 글귀는 이러하도다.

若有一介臣 斷斷兮 無他技 其心休休焉 其如有容焉 人之有技 若已有之 人之彦聖 其心好之不啻若自其口出 寔能容之 以能保我子孫黎民 尙亦有利哉 人之有技 媢疾以惡之 人之彦聖 而違之 俾不通 寔不能容 以不能保我子孫黎民 亦曰殆哉

(교운1장 57절)

 

 

若有一介臣                       만약 어떤 한 신하가

斷斷兮 無他技                   단단(斷斷, 정성스럽고 한결같은 모양)하고 다른 기예가 없으나

其心休休焉                       그 마음이 곱고 고와

其如有容焉                       포용함이 있는 듯하여

人之有技 若已有之             남이 가지고 있는 기예를 자기가 소유한 것처럼 여기며  

人之彦聖 其心好之             남의 빼어남과 밝음을 그 마음으로 좋아함이

不啻若自其口出                 자기 입에서 나온 것보다도 더한다면

寔能容之                          이는 능히 남을 포용함이니

以能保我子孫黎民              이로써 나의 자손과 여민(黎民, 백성)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尙亦有利哉                       또한  이로움이 있으리라!

人之有技 媢疾以惡之          남이 가지고 있는 기예를 시기하고 미워하며

人之彦聖 而違之                남의 빼어남과 밝음을 배척하여

俾不通 寔不能容                통하지 못하게 하면, 이것은 능히 포용하지 못함이니

以不能保我子孫黎民            이로써 나의 자손과 여민을 보전하지 못할 것이다.

亦曰殆哉                           또한 위태로우리라.

 

 

이 구절은 『대학(大學)』에 실려 있지만, 본래는 『서경(書經)』 「진서(秦誓)」에 실린 것으로 상기의 내용은 그 일부이다. 「진서」는 진(秦)의 9대 임금인 목공(穆公, 재위: 기원전 659~621)이 전쟁에서 대패하고 그 이후에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면서 남긴 맹세이다. 아래에서 이에 대해 전후 사정을 살펴보자.

 

 

진목공과 효산 전투

 

진(秦)나라는 춘추전국의 혼란을 수습하고 진시황 시기에 통일 왕조를 이룬 나라이다. 그런데 이른바 중원(中原)이라 하는 황하 유역의 제후국들이 보기에 춘추전국시대 초기의 진나라는 변방의 야만국에 불과했다. 그런 진나라가 처음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여러 제후국에 과시하게 만든 이가 목공이다. 진목공은 제(齊) 환공(桓公), 진(晉) 문공(文公), 송(宋) 양공(襄公), 초(楚) 장왕(莊王)과 더불어 이른바 춘추 5패(覇)의 하나로 진나라의 영역을 크게 확장하고 국력을 비약적으로 신장한 군주였다. 서쪽에 치우쳐져 있던 진나라로서는 동쪽으로 진출하는 것이 국가적 과제였다. 진나라는 계속해서 동쪽으로 진출하고자 했고 나머지 나라들은 힘을 합쳐 이를 저지하고자 한 것이 전국(戰國)시대 하나의 흐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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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를 확장해가던 목공은 정(鄭)나라를 정벌하기로 하는데, 목전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궤멸적 대패(大敗)를 맛보게 된다. 기원전 628년 효산(崤山) 전투가 그것으로, 『사기(史記)』 「진본기(秦本紀)」를 보면 당시의 사정을 알 수 있다. 다음은 효산 전투를 전후로 한 대략의 상황이다.

 

정나라 사람 가운데 진나라에 자신의 나라를 팔아넘긴 자가 있었다. 그는 자신이 성문(城門)을 주관하는 사람이라고 하면서, 진나라가 군대를 파견하여 정나라를 습격하라고 제안했다. 이 솔깃한 제안에 목공은 정나라를 치기로 하고 중신(重臣)인 건숙(蹇叔)과 백리혜(百里傒)에게 자문을 구했다. 건숙과 백리혜는 ‘우리나라와 정나라는 천 리 길이 넘으니 습격하기가 어렵고, 설령 성공한다고 해도 득이 될 것이 거의 없다’면서 반대했다. 그러나 이미 결정을 내린 목공은 이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출병을 단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대들은 모르오, 내가 이미 결정했소.”

 

목공이 이렇게 나오는데 건숙과 백리혜가 더 이상 반대할 수는 없었다. 목공은 백리혜(百里傒)의 아들 맹명시(孟明視), 건숙(蹇叔)의 아들 서걸술(西乞術)과 백을병(白乙丙)에게 원정군을 통솔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출병을 앞두고 건숙과 백리혜가 자신들의 자식을 보고 통곡한 일이 목공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목공이 노하여 물었다.

 

“출병을 앞두고 그대들이 통곡하여 군심(軍心)을 흩어 놓다니 무엇 때문에 곡한 것이오?”

백리혜와 건숙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신들이 어찌 감히 군심을 흩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 군대가 가면 신들의 자식들도 함께 갑니다. 나이든 신들로서는 자식들이 돌아올 때쯤이면 얼굴을 보지 못할 수도 있어서 울었습니다.”

건숙과 백리혜는 출병하는 군대를 보고 운 것이 아니라 자식들을 보고 울었다고 둘러댔지만, 이미 원정군의 패배를 예상했던 두 사람은 자식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희 군대가 패한다면 틀림없이 효산일 것이다.”

 

정나라의 습격을 위해 나선 원정이었지만, 이미 진나라의 공격을 정나라에서 탐지하여 정나라는 진나라의 공격에 대비하게 된다. 따라서 습격의 의미가 사라진 상황에서 진나라 원정군은 회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진나라 원정군이 회군할 때에 진(晉)나라의 공격을 받게 되었다. 당시 진(晉)나라는 진(秦)나라 원정군의 행로(行路)에 있는 나라로 문공(文公)이 죽고 상중(喪中)이었다. 진(秦)나라로서는 상중(喪中)에 있는 진(晉)나라가 출병을 주저할 것이라고 계산하고 단행한 원정이었다. 그러나 진(晉)나라 입장에서는 진(秦)나라가 자신들의 국경선 주변을 지나 정나라를 공격한 것에 반감이 없지 않았다. 이리하여 진(晉)나라는 회군하는 진(秦)나라 군대가 지나는 길목이었던 효산에 군대를 대기시키게 된다. 진(秦)나라 군대는 건숙과 백리혜의 예상대로 효산에서 진(晉)나라 양공(襄公)의 공격으로 전멸하고, 세 명의 장수는 뒷날 풀려나기는 하지만 이때 포로가 되었다. 진나라로서는 대참패로 기록될 전투였다.

 

목공은 4년이 지난 기원전 624년에서야 진(晉)에 설욕했는데, 이때의 선봉장이 효산 전투에서 포로가 되었다가 풀려난 세 명의 장수 중 하나였던 맹명시였다. 목공은 효산의 산야에 흩어져 있던 전사자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장사를 지낼 수 있었다. 그는 소복을 입고 이들의 장례를 주관했는데 사흘간 곡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하면서 휘하의 장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맹세했는데 그것이 바로 「진서(秦誓)」, 진 목공의 맹세이다.

 

 

 

진서(秦誓)의 내용과 포용력

 

公曰 嗟我士                목공이 가로대 아! 나의 병사들이여

聽無譁                       나의 말을 듣고 떠들지 말라

予誓告汝群言之首        내 맹세하여 너희에게 여러 말의 첫 번째를 고하노라

古人有言曰                 옛 사람의 말에 가로대

民訖自若是多盤           사람들이 모두 자기만 옳다고 하고

責人斯無難                 다른 사람을 책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惟受責俾如流              오직 책함을 받아들이기를 흐르는 물처럼

是惟艱哉.                   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我心之憂                    내 마음의 걱정은

日月逾邁                    세월은 지나가면

若弗云來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惟古之謀人                 오직 지난날의 모인(謀人, 도모하는 사람)은

則曰未就予忌              나를 따르지 않는다 하여 싫어하고

惟今之謀人                 오직 지금의 모인(謀人)은

姑將以爲親                 순종한다하여 친하였다.

雖則云然                    비록 그러하나

尙猷詢茲黃髮              오히려 거의 황발(黃髮)에게 상의했다면

則罔所愆                    잘못되는 바가 없었을 것이다.

番番良士                    늙은 전사들이

旅力旣愆                    이미 쇠해도

我尙有之                    나는 그들과 함께 하고자 했고

仡仡勇夫                    용맹한 사나이들이

射御不違                    활쏘기와 말 타기에 어긋나지 않아도

我尙不欲                    내 부디 등용하고자 하지 않았으니

惟截截善諞言              오직 교묘한 말을 잘하여

俾君子易辭                 군자로 하여금 말을 쉽게 바꾸게 하는 자를

我皇多有之                 내가 많이 거느리고자 했겠는가?


昧昧我思之                 내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若有一介臣                 만약 어떤 한 신하가

斷斷兮 無他技             단단(斷斷, 정성스럽고 한결같은 모양)하고 다른 기예가 없으나

 

其心休休焉                 그 마음이 곱고 고와

其如有容焉                 포용함이 있는 듯하여

人之有技 若已有之       남이 가지고 있는 기예를 자기가 소유한 것처럼 여기며

人之彦聖 其心好之       남의 빼어남과 밝음을 그 마음으로 좋아함이

不啻若自其口出           자기 입에서 나온 것보다도 더한다면

寔能容之                    이는 능히 남을 포용함이니

以能保我子孫黎民        이로써 나의 자손과 여민(黎民, 백성)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尙亦有利哉                 또한 이로움이 있으리라!

人之有技 媢疾以惡之    남이 가지고 있는 기예를 시기하고 미워하며

人之彦聖 而違之          남의 빼어남과 밝음을 배척하여

俾不通 寔不能容          통하지 못하게 하면, 이것은 능히 포용하지 못함이니

以不能保我子孫黎民     이로써 나의 자손과 여민을 보전하지 못할 것이다.

亦曰殆哉                    또한 위태로우리라.

邦之杌隉 曰由一人       나라가 위태롭게 되는 것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음이요

       

邦之榮懷 亦尙一人之慶  나라가 번영하게 되는 것도 또한 한 사람의 경사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진서」는 목공 자신의 과오를 반성한 맹세의 글이다. 목공은 자신의 잘못된 판단으로 원정군 전체가 궤멸되고 전사자의 시신이 효산에 널려 있는 상황을 직접 목도하였다. 또한, 전사자를 수습하여 장례를 치르고 통곡하면서 다시는 이와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으리라 다짐한 후에 자신의 생각을 밝힌 것이다. 그것도 전사자를 수습한 장졸들 앞에서였다.

 

 

먼저 목공은 옛말을 인용하면서 그 자신이 건숙과 백리혜의 건의를 듣지 않은 것에 대해 반성한다. 황발(黃髮)들과 상의했다면 허물이 없었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때 황발은 누런 머리칼을 지닌 노인들 즉 건숙이나 백리혜와 같은 중신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과오가 교묘하게 말을 잘하여 ‘군자로 하여금 말을 쉽게 바꾸게 하는 자들’의 말을 들은 것이라고 토로하고 있다.

 

그리고 쓰라린 참패 뒤에 스스로 곰곰이 생각해 보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은 것이다. ‘若有一介臣’으로 시작되는 말이 그것이다. 목공이 군주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어떤 신하가’라고 한 것이지만 글의 맥락으로 보면 ‘어떤 사람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크게 뛰어난 것은 없지만, 포용력이 있는 사람이면 진나라 자손과 백성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이고, 반대의 경우에는 진나라 자손과 백성을 보전하지 못할 것이라 한 것이다. 그러면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나라가 위태로울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였다. 이때 그 한 사람은 불특정한 개인을 의미하겠으나, 글의 흐름으로 보면 목공 자신을 지칭하는 것이기도 하다.

 

진목공이 원정을 결정하는 단계에서 포용력을 발휘하여 천 리 길이 넘으니 습격이 불가하다는 건숙과 백리혜의 건의를 묵살하지만 않았어도 대참패는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목공은 그렇지 않았고, ‘그대들은 모르오, 내가 이미 결정했소’라면서 출병을 강행하였던 것이다.

상제님께서 이 구절을 잘 기억하라고 하신 것은 어떤 이유일까. 아마도 상제님께서는 수도인이 갖추어야 할 덕목의 하나를 알려주신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포용력이다. 상제님께서 「진서」를 인용하시면서 ‘포용력’의 중요성과 그러한 사람에 대해 역설하신 것이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이든 사람이 하는 것이고 그 사람의 역량에 따라 많은 일의 승패가 결정되기에 이는 당연한 것이다. 진목공이 말한 것처럼 그 개인의 실력이 크게 출중하지 않는다고 해도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 포용력 있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면 많은 무리수를 피해갈 수도 있는 일이다. 그때 그 사람의 결정은 나라와 같은 큰 단위의 조직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고 반대로 그 결정으로 인해 경사(慶事)가 있을 수도 있다. 이렇게 볼 때 교운 1장 57절에서 상제님이 「진서」를 일러 ‘잘 기억해 두라’고 하신 것은 포용력이 수도인에게 요구되는 덕목의 하나라는 점을 분명히 밝히신 것이다.

 

 

<대순회보 2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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