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도 신명으로 하여금 가슴 속에 드나들게 하여 다 고쳐 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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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6.01 조회34,405회 댓글0건본문
상제께서 “나는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치고 사람에게도 신명으로 하여금 가슴 속에 드나들게 하여 다 고쳐 쓰리라. 그러므로 나는 약하고 병들고 가난하고 천하고 어리석은 자를 쓰리니 이는 비록 초목이라도 기운을 붙이면 쓰게 되는 연고이니라” 말씀하셨도다.(교법 3장 1절)
상제님께서는 개벽장(開闢長)으로 오셔서 천지공사를 보셨습니다. 천지공사는 다른 말로 삼계공사(三界公事)라 하며, 이는 천지인 삼계를 개벽하는 공사입니다. 공사의 내용을 보면 명부와 종장을 새롭게 임명하고 각 지역을 담당하는 신명을 바꾸셨으며, 도수를 새롭게 짜시는 등 다양한 공사를 보셨습니다. 이에 따라 천지도수(天地度數)는 상생(相生)의 원리에 의해 돌아가고 신명들도 이에 맞게 움직이게 되었습니다. 인존시대를 맞이하여 인간에게는 신명과 조화하여 상제님께서 하신 천지공사의 일을 실현해야 하는 사명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신명계의 변화를 모른 채 선천의 상극적인 환경에 의해 살아온 습성대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신명과 조화하여 하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수도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수도는 신명으로 하여금 인간의 가슴속에 드나들게 하여 마음을 고쳐 쓰시는 과정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상제님께서 고쳐 쓰시는 인간이 약하고 병들고 가난하며 천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상제님께서 “나는 오직 마음을 볼 뿐이다”01라고 하셨습니다. 상제님께서 이 사람들을 고쳐 쓰시는 것은 단지 외형적으로 드러난 모습보다는 그들의 마음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상제님께서 찾아 쓰시는 사람에 관한 내용은 다음의 『전경』 구절에도 잘 드러납니다. “부귀한 자는 빈천을 즐기지 않으며 강한 자는 약한 것을 즐기지 않으며 지혜로운 자는 어리석음을 즐기지 않으니 그러므로 빈천하고 병들고 어리석은 자가 곧 나의 사람이니라”(교법 1장 24절)라고 하신 구절이 그것입니다. 여기서 빈천과 약함, 어리석음을 즐긴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먼저 ‘빈천을 즐긴다’는 것을 이해하기 전에 이와 비슷한 것으로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곤궁하게 살면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자기의 분수와 도를 지킨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마음의 경지이기도 합니다. 사심과 양심의 갈등 속에서 양심을 지키며 도에 머무는 기쁨을 아는 것입니다. 물욕을 추구하다가 오는 고통으로 허송세월하느니 마음 편히 지내는 것이 더 낫다는 자각이기도 합니다. 부자는 한평생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이상으로 재물을 모은 자입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란 말이 있듯이, 사람들은 재물 앞에 물욕이 생기고 그것을 취하기 위하여 개인적으로는 서로 경쟁하고 국가적으로는 전쟁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양심과 도덕은 사라지고 물욕에 의하여 발동하는 사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상제님께서 부자는 빈천을 즐기지 못한다고 하셨고. 또한 부자의 곳간에는 살기와 재앙이 가득해서 큰 운수를 감당하기 힘들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02 신명이 가슴속으로 드나들며 사람을 고쳐 쓰고자 할 때 살기와 재앙이 방해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빈천을 즐긴다’는 것은 살기와 재앙이 가득한 재물을 추구하기보다는 양심과 도덕을 중시하는 생활 태도인 것입니다.
‘약한 것을 즐긴다’는 의미는 상제님께서 잘 기억해 두라고 하신 시(詩)의 “처세유위귀(處世柔爲貴: 처세함에는 부드럽게 하는 것을 귀하게 삼고) 강강시화기(剛强是禍基: 강하고 굳센 것은 화의 바탕이 된다)”(행록 3장 49절)를 통해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부드럽게 처세하면 상대방이 나의 말을 잘 경청하게 되고, 그 결과 소통이 잘 되어 화합의 바탕이 됩니다. 이에 반해 강하게 처세하는 것은 척이 발생해서 하려던 일에 장애가 생기고 앞길을 막아버리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강하고 굳센 것은 화(禍)의 근원으로 남에게 척을 짓게 될 우려가 크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약함은 부드러움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약한 것을 즐기면 만사가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어리석음을 즐긴다’는 의미는 같은 시의 “발언상욕눌(發言常欲訥: 말을 할 때는 항상 더듬거리듯이 하고) 임사당여치(臨事當如癡: 일에 임해서는 마땅히 어리석은 듯이 하라)”(행록 3장 49절)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화(禍)는 말에서 비롯되며 말을 너무 잘하거나 많이 하면 실수하기 쉬우므로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식으로 조심스럽게 말해야 합니다. 일하는 데 있어서 혼자만의 지혜를 자랑하여 너무 앞서 나가지 말고, 알고 있어도 모르는 듯이 여러 사람의 의견을 물어 실수가 없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이러한 행동이 어리석게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허물을 줄이고 바른길로 나아갈 수 있는 첩경이 되는 것입니다.
상제님께서 “부귀한 자는 자만자족하여 그 명리를 돋우기에 마음을 쏟아 딴생각을 머금지 아니하나니 어느 겨를에 나에게 생각이 미치리오. 오직 빈궁한 자라야 제 신세를 제가 생각하여 도성 덕립을 하루속히 기다리며 운수가 조아들 때마다 나를 생각하리니 그들이 내 사람이니라.”(교법 2장 8절)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빈궁한 자는 어리석고 약한 사람을 포함하여 지칭하신 말씀일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운수가 조아들 때마다 상제님을 생각하는 경천(敬天)의 생활 태도를 굳게 간직하므로 그들이 곧 상제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이처럼 상제님께서 고쳐 쓰시겠다고 열거한 사람들을 보면 자기를 내세우지 않으며 양심을 속이지 않는 무자기(無自欺)의 마음, 척을 짓지 않으려는 마음, 화합하려는 마음, 경천의 마음, 신명과 조화하려는 마음 등으로 대순진리를 실천하는 태도를 볼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신명이 인간의 가슴속을 드나들며 성격과 체질을 고치게 됩니다. 신명이 가슴속으로 들어오면 인간이 신명과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데, 이것이 바로 신인조화(神人調化)라 하겠습니다. 수도를 통해 신인조화가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인간이 개조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개조된 인간은 하늘의 뜻을 지상에 실현하여 상서가 무르녹는 지상선경(地上仙境)을 열어갈 주역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혼자만의 생각과 능력으로 일해서는 안 되고, 매사에 상제님의 말씀을 마음속 깊이 새기며 신명과 함께 도의 일을 이루어나간다는 생각으로 임해야 할 것입니다.
01 교법 2장 10절.
02 교법 3장 4절 참조.
<대순회보 1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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