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심을 가진 자에게는 지체 없이 베풀어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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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21.11.01 조회24,745회 댓글0건본문
인간의 복록은 내가 맡았으나 맡겨 줄 곳이 없어 한이로다. 이는 일심을 가진 자가 없는 까닭이라. 일심을 가진 자에게는 지체 없이 베풀어 주리라.
(교법 2장 4절)
위의 성구에서 삼계대권을 주재하시는 상제님께서 인간의 복록을 맡으셨지만 맡겨 줄 곳이 없음을 한탄하셨다. 상제님께서는 그 이유가 일심(一心)을 가진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시며 만약 일심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곧바로 복록을 베풀어주겠다고 하셨다. 여기서 ‘일심’은 우리가 상제님으로부터 복록을 받을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일심의 의미란 무엇일까? 그리고 이런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수도해야 하는가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겠다.
먼저 일심(一心)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여러 사람의 마음이 하나가 됨’, ‘마음을 집중함’, ‘한결같은 마음’, ‘만유의 실체인 진여(眞如)의 다른 이름’01 등이 있다. 조선 시대 태조부터 고종까지 일심에 관해 언급한 구절들을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 개인문집 등에서 찾아보면 불교적 의미인 진여를 제외하면 대체로 국어사전의 뜻과 비슷하고 이에 더해 ‘충성된 마음’, ‘같은 마음’, ‘하나의 마음(마음의 이칭)’ 등의 의미로 쓰였다. 특히 조선 시대 관료들은 ‘一心’ 두 글자를 독특하게 고안하여 수결(手決: 오늘날의 사인)로 사용했는데, 『난중일기』에는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이 수결을 연습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는 중국이나 일본에 없는 조선만의 독특한 문화로 한마음으로 나라와 백성에게 충성하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02 오늘날에도 ‘일심’은 우리나라에서 일상적으로 쓰이는 표현이지만,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아 그 의미를 모른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일심은 『전경』이나 「도전님 훈시」에서 ‘한마음’, ‘성심’, ‘혈심’ 등으로도 표현되고,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하며 변하거나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러한 일심은 대상과 목적에 따라 그 의미가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중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일심과 관계된 것으로는 ‘마음을 집중함’, ‘한결같은 마음’, ‘충성된 마음’을 들 수 있다. 이와 관련된 구절을 『전경』에서 찾아보면 일심에 담긴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A) 이제 범사에 성공이 없음은 한마음을 가진 자가 없는 까닭이라. 한마음만을 가지면 안 되는 일이 없느니라.… (교법 2장 5절)
(B) 상제께서 … “일심의 힘이 크니라. 같은 탄알 밑에서 정낙언(鄭樂彦)은 죽고 최면암(崔勉菴)은 살았느니라. 이것은 일심의 힘으로 인함이니라. 일심을 가진 자는 한 손가락을 튕겨도 능히 만 리 밖에 있는 군함을 물리치리라” 하셨도다. (교법 3장 20절)
(C) 상제께서 화천하시기 전해 섣달 어느 날 … “이것이 남조선 뱃길이니라. … 그 군자신(君子神)이 천추 혈식하여 만인의 추앙을 받음은 모두 일심에 있나니라. 그러므로 일심을 가진 자가 아니면 이 배를 타지 못하리라”고 이르셨도다. (예시 50절)
여기서 (A) 구절은 ‘마음을 집중한다’는 의미로 상제님께서는 범사에 성공이 없음은 한마음을 갖지 못해서이고 어떤 일에 전심전력을 다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B)구절에서 같은 탄알 밑에서 정낙언은 죽고 최면암이 산 것은 ‘일심의 힘’ 때문이라고 하셨다. 여기서 일심은 면암 최익현(崔益鉉, 1833~1907)의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충성과 절의인 혈성(血誠)을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03 (C)구절에서 군자신이 천추혈식(千秋血食)04하여 만인의 추앙을 받음도 모두 일심에 있다고 하셨다. 이때의 일심은 지성(至誠)으로 윤리도덕을 수행한 분들이 도달했던 마음의 경지로, 그 군자신들은 한결같이 참된 마음으로 인륜과 도덕을 밝혀나가고자 하였다.
▲ 혈식천추 도덕군자
이처럼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일심은 ‘마음을 집중함’, ‘충의의 마음’, ‘한결같이 참된 마음’ 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러한 일심은 어떤 일에 전념함으로써 그것을 이뤄내게 할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벌어지기 어려운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게 한다. 또한, 도인들이 혈식천추 도덕군자가 모는 배를 타고 남조선(후천선경) 뱃길에 오르기 위해서도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마음가짐이다.05
『전경』에 나타난 일심의 의미가 이와 같다면 대순진리회 도인들이 일심을 가진 자가 되기 위해 어떻게 수도하는 것이 바람직할까? 대순진리회의 수도는 마음과 몸을 맑아지게 함으로써 정신을 하나로 묶어나가는 것인데, 일심의 개념은 수행을 통해 도달하게 되는 마음의 상태와 밀접한 관련성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도전님께서는 “신명은 바르게 닦은 사람에게 응하게 됩니다. 바르게 닦는다는 것은 마음을 유리알과 같이 맑고 깨끗하게 닦아 일심(一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06라고 하셨다. 즉, 일심은 도인들이 바른 수도를 통해 내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함으로써 도달하게 되는 마음의 상태라는 말씀이다. 인간의 마음은 신명이 드나들며 용사를 부리는 곳이므로 나의 마음이 거울처럼 맑고 깨끗해져 일심이 되면 그에 합당한 신명과 조화를 이루어 구제창생에 이바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일심은 수도의 목적인 도통(道通)을 받기 위한 전제가 된다. 도통은 신명이 응하는 것으로, 신명은 바른 수도를 통해 일심이 된 사람에게 응하기 때문이다. 도전님께서 “우리의 목적은 도통이다. 정신, 심령을 통일하는 것이다.”07, “수도해서 정신이 통일되면 자연히 영(靈)이 통해진다. 영이 통해지면 영통이고 그것이 도통이다.”08라고 하셨다. 여기서 도통은 마음과 영인 심령(心靈)의 통일로 이뤄지는 것이며09, 이의 전제가 되는 것이 바로 정신통일이다. 정신이 통일되면 영이 맑아지는데, 이는 곧 상제님의 대순하신 진리를 한마음 한뜻으로 바르게 수행하여 일심이 된다는 의미다.
이처럼 우리가 일심을 갖기 위해서는 상제님의 대순하신 진리를 바르게 실천하고 수행해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즉, 해원상생의 원리에 입각해 성경신을 수도의 요체로 삼고 안심·안신을 수행의 훈전으로 삼아 무자기를 근본으로 윤리도덕을 숭상하면 자연스럽게 정신이 통일되는 것이다.10 하지만 상제님께서 “진실로 마음을 간직하기란 죽기보다 어려우니라.”11고 하셨듯이, 바른 마음, 진실된 마음을 한결같이 유지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바른 수도생활을 하다가도 순간순간 접하게 되는 외부의 대상이나 사사로운 것들에 마음이 사로잡히기도 하고, 현실에 안주하며 나태해져 수도의 본질을 망각하게 되는 경우들이 종종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인들은 『전경』의 말씀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항상 자신을 반성하며 과부족이 없는가를 살펴 고쳐나가야 한다. 그리고 나의 몸과 마음이 상제님의 말씀에 부합하도록 훈회와 수칙을 준수하며 상생의 진리를 바르게 실천하는 것이 일심을 가질 수 있는 첩경이다.
상제님께서는 일심을 가진 자에게 지체 없이 복록(福祿)을 베풀어주겠다고 하셨다. 이 말씀은 도인들이 해원상생대도를 수행하여 일심이 되면 그에 상응하는 신명과 조화를 이루어 후천선경 건설에 이바지함으로써 후천의 복록을 쌓게 된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또한, 일심을 가지면 겁액이나 여러 가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추구하는 일들도 원만하게 이뤄진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일심은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전심전력을 다하며 변하거나 흔들리지 않는 ‘간절한 마음’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러한 일심은 영통과 도통을 목적으로 하는 수도인들이 바른 수도생활을 통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며, 천지가 성공하는 때에 도통을 받기 위한 그릇을 갖추는 일이기도 하다. 상제님께서 “참된 자는 큰 열매를 얻고 그 수명이 길이 창성할 것이오. 거짓된 자는 말라 떨어져 길이 멸망하리라. … 삶과 복을 구하는 자는 힘쓸지어다”12라고 하셨으니, 도인들은 상제님께서 베풀어주시는 복록을 받을 수 있도록 무자기를 바탕으로 마음을 거울처럼 맑고 깨끗하게 닦아 ‘일심을 가진 자’가 될 수 있도록 수도에 더욱 매진해야겠다.
01 일심이 ‘진여’의 의미로 쓰이는 경우는 불교와 관련해서이다. 불교의 다양한 분야를 폭넓게 연구했던 원효는 일심과 화쟁(和諍)을 자기 사상의 핵심적인 개념으로 삼았다. 그는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와 『대승기신론별기(大乘起信論別記)』에서 일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것이 마음의 근원이며 모든 존재의 근본적인 실체라고 하였다. 서울대학교철학사상연구소, 『마음과 철학-불교편』 (서울: 서울대학교문화원, 2013), pp.316-322 참고.
02 민병덕, 『옛날에도 일요일이 있었나요?』 (서울: 책이있는마을, 2003), pp.142-143; 윤호우, 「난중일기에서 연습한 후 쓴 ‘一心’ 수결은 모두 8건」 《경향신문》, 2020. 1. 24 참고.
03 공사 1장 24절, … 이때 최익현은 의병의 갑작스러운 약세로 순창에서 체포되니라. 그가 체포된 소식을 들으시고 상제께서는 만경에서 익산 만중리 정춘심의 집으로 떠나시며 가라사대 “최익현의 거사로써 천지신명이 크게 움직인 것은 오로지 그 혈성의 감동에 인함이나 그의 재질이 대사를 감당치 못할 것이고 한재까지 겹쳤으니 무고한 생민의 생명만을 잃을 것이니라. 때는 실로 흥망의 기로이라 의병을 거두고 민족의 활로를 열었느니라”고 하셨도다.
04 오랜 세월 동안 국가의 의식으로 제사를 받음.
05 이밖에도 일심은 무자기를 바탕으로 본연의 양심을 회복한 정심(正心)과 상제님을 믿는 굳건한 신심(信心), 그리고 연원에 의해 펼쳐진 진법을 받들고 수행해 나가고자 하는 도심(道心)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대순종교문화연구소, 「남조선 뱃길과 일심」, 《대순회보》 141 (2013), pp.29-30 참고.
06 《대순회보》 35호, 「도전님 훈시」.
07 「도전님 훈시」 (1994. 12. 3).
08 「도전님 훈시」 (1993. 10. 3).
09 “정성이란 도인으로서 마음과 영, 심령(心靈)을 통일하는 것이다. 도가 곧 나요, 내가 바로 도라는 경지에서 마음과 영, 심령을 통일하는 것이다. 그것을 통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 무소불능(無所不能)이다.” 「도전님 훈시」 (1993. 7. 11).
10 「도전님 훈시」 (1993. 4. 27) 참고.
11 교법 2장 6절.
12 예시 3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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