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소를 비수로 알고, 조소를 조수로 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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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22.01.30 조회25,149회 댓글0건본문
남이 나에게 비소하는 것을 비수로 알고 또 조소하는 것을 조수로 알아라. 대장이 비수를 얻어야 적진을 헤칠 것이고 용이 조수를 얻어야 천문에 오르나니라.
(교법 2장 19절)
상제님께서는 종도들에게 말씀하실 때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를 들어 설명하신 경우가 많았다. 이 구절에는 대장이 얻어야 할 비수와 용이 얻어야 할 조수의 비유가 나타나고 있다. 더욱이 비소와 비수, 조소와 조수라는 단어의 미묘한 소리 차이를 활용함으로써 교훈이 듣는 사람에게 효과적으로 각인될 수 있도록 하셨다.
비소와 조소는 모두 상대방이 나에게 하는 비웃음이다. 사전적으로 비소는 남을 비난하여 웃는 비소(非笑)와 비난조의 코웃음이라는 비소(鼻笑)가 있는데 의미는 대동소이하다. 조소(嘲笑)는 빈정거리거나 업신여기며 웃는 것으로 조롱하다는 의미를 포함한다. 일반적인 웃음이 상대방에 대한 호감과 공감, 친밀감을 드러내는 것이라면 이와는 전혀 다르게 비웃음은 무시와 놀림, 적대감마저 깔린 것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넓게 생각하면 비소와 조소는 남이 나를 무시하고 트집 잡는 말과 행동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당연히 이러한 언행은 당하는 이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분노의 감정까지 맺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상제님께서는 무시당할 때 느낄 수 있는 우리의 부정적인 감정과는 다르게 남이 하는 비소를 비수로, 조소를 조수로 알라고 하셨다. 비수와 조수에 관련된 내용을 살펴보면 이러한 비유가 우리에게 조금 더 쉽게 다가올 수 있다.
비수(匕首)는 오래전부터 사용되어 오던 무기로 양날을 가진 단검의 한 종류이다. 칼끝이 숟가락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숟가락 비(匕)자를 쓴다고도 알려져 있는데 실제 사용되는 의미에서는 끝이 뾰족하고 날카로운 칼을 말한다. 전체 길이가 비교적 짧아서 접근전에 사용하거나 던져서 공격하는 때도 있었고, 암기(暗器)로도 사용되어왔다. “대장이 비수를 얻어야 적진을 헤칠 것”이라는 상제님 말씀은 마치 『삼국지』에서 관운장이 적토마를 타고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는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하지만 비수는 짧은 칼이기 때문에 실제 용도에서는 맹수가 자기 발톱을 숨기고 있다가 사냥감을 공격하는 순간에 발톱을 드러내 포획하는 것처럼 주로 결정적인 순간에 쓰기 위한 무기로 사용되었다.
『사기』의 「자객열전」에는 비수가 종종 등장하는데, 춘추전국시대의 진(晉)나라 사람 예양(豫讓)이 자신을 아끼던 군주 지백(智伯)의 복수를 위해 비수를 품에 안고 지백을 죽인 조양자(趙襄子)의 궁중 뒷간에서 벽 바르는 일을 하며 기회를 엿봤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조선왕조실록』에도 왕을 해하기 위해 숨긴 비수에 대해 언급할 때면 예양의 이야기가 종종 등장한다.01 또한, 『사기』에는 오(吳)나라의 자객 진저(專諸)가 비수를 구운 생선의 배 속에 숨겨와서 태자 광(光)의 즉위를 도왔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모두 비수를 상대방이 모르게 숨겼다가 결정적일 때 무기로 사용한 예이다. 이를 보면 상제님의 말씀 속에서 비수는 대장이 적진을 헤칠 때 필요한 무기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면서, 비수의 용도처럼 남이 모르는 결정적인 순간에 필요한 수단을 나타낸다고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수(潮水)는 달의 인력에 따라 주기적으로 왕래하는 바닷물을 이르는 말이다. “용이 조수를 얻어야 천문에 오르나니라”는 상제님 말씀은 용이 고대부터 해신(海神) 또는 수신(水神)으로 신앙 되었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는 신라시대의 사해제(四海祭), 사독제(四瀆祭)와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는 사해사독제(四海四瀆祭)를 비롯한 조선시대 각처에서 행해졌던 용왕굿이나 용신제 등은 모두 수신으로서의 용을 대상으로 한 제의였다.02
그런데 오래전부터 용과 관련된 문헌이나 설화 속에는 용이 어떠한 조건을 얻어야 하늘에 올라 천룡이 되거나, 수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승천 서사가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사상가인 관중(管仲:?~BC 645)에 관한 책으로 알려진 『관자(管子)』 「형세해(形勢解)」편에는 “용수중지신야(龍水中之神也). 승어수즉신입(乘於水則神立), 실어수즉신폐(失於水則神廢).”라고 하여 용은 물속의 신으로서 물에 올라타면 신이 되고, 물을 잃으면 신의 지위에 오르지 못한다고 되어있다. 용이 물을 관장하는 수신으로서의 신성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물이 필요한 것이다.03
물을 얻어 용이 승천한다는 내용은 한국의 설화에도 등장한다. 용이 되어 승천하려는 이무기가 물을 얻으려고 둑을 쌓아 큰 못을 만들려고 했으나 중에게 들켜 못을 만들지 못해 강철이(용이 채 못된 뱀)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04 이무기는 승천하기 전의 용을 말하는데 이무기 말고 지네, 두꺼비, 뱀, 잉어 등의 동물이 등장하기도 한다. 이는 승천하여 하늘에 오른 용이 승천하기 전의 존재와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존재라는 것을 보여 준다.
한편, 한국의 설화에서 용의 승천에 필요한 조건은 다양하게 전해지기도 하였다. 물이라는 조건 대신에 여의주가 등장하기도 하며, 보은(報恩)이나 신의(信義)와 같은 윤리적 행위가 승천의 조건으로 간주 되기도 하였다. 여기서 윤리적 행위가 승천의 조건으로 등장한 것은 특기할 만하다. 이는 천문에 오르기 위한 조건이 단순한 물리적 대상이 아니라 통과해야 할 시험으로까지 의미 부여된 것이다.05 여의주 또한 윤리적 시험과 관련된 승천 서사의 소재로 등장하기도 한다. 두 개의 여의주를 가진 용이 오히려 승천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용의 승천에서 욕심의 경계 또한 중요한 조건으로 여겨진 것이다.06
이러한 내용을 토대로 우리는 수도의 차원에서 위 성구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짚어 볼 수 있다. 비소와 조소는 수도의 과정에서 우리의 마음을 시험하는 다양한 상황으로 마주하게 된다. 무시하고 조롱하고, 괜한 시비를 거는 사람들의 행동은 분명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때론 분노하게 한다. 그리고 그 감정에 빠져들면 스스로 주체하기가 힘들어진다. 이때 비소와 조소에 대한 상제님의 말씀은 우리의 생각이 전환되어야 함을 보여 준다. 누군가의 조소를 우리가 일을 이루는 데 필요한 수단이자 통과해야 할 시험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일에 뜻을 둔 자는 넘어오는 간닢을 잘 삭혀 넘겨야 한다.”(교법 1장 3절)는 상제님의 말씀도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수도인들에게 일은 상제님을 따르며 수도해나가는 일로 볼 수 있으며, 간닢은 치밀어오르는 분노의 감정을 화와 관련된 장기인 간(肝)에 비유한 것이다.07 상제님 말씀대로 목적한 바를 이루고자 수도하는 사람은 다양한 상황에서 생겨나는 내 마음에 분노를 잘 삭혀 넘길 수 있어야 한다.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비소를 비수로, 조소를 조수로 아는 생각의 전환이다. 넘어오는 화를 나에게 필요한 수단이자 통과해야 하는 시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바꿀 때 내 마음의 분노는 사그라지고, 오히려 어려운 상황에 대한 고마운 마음마저 들게 될 수 있다.
누군가는 우리가 상제님을 믿고 행하는 수도의 과정을 보고 쓸데없는 일을 한다고 비웃을지 모른다. 상제님께서 광구천하(匡救天下)하시기 위해 세상에 강세하셔서 천지인 삼계(三界)를 뜯어고치셨다는 사실은 그 폭이 너무 커서 세상 사람이 이해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제님을 따르던 당시의 종도들 또한 세상 사람들로부터 조소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상제님의 말씀처럼 누군가의 비웃음을 일을 이루기 위해 꼭 필요한 수단과 시험의 과정으로 받아들인다면 그러한 비웃음은 오히려 일이 완성되어가는 신호처럼 들릴 것이다. 대장은 비수를 얻어야 중요한 순간에 그것을 꺼내 들어 적진을 헤칠 것이고, 용은 조수를 얻어야 비로소 하늘에 올라 수신의 자리에 올라갈 것이니 말이다.
결국, 교법 2장 19절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상제님을 믿고 수도해나가는 데 있어서 누군가 나를 무시하고 어렵게 하더라도 그것에 마음을 휘둘리지 말고 고마운 수단으로 삼아 끝까지 일을 완수하라는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을 것이다.
01 『조선왕조실록』, 경종 2년(1722) 9월 21일, 영조 즉위년(1724) 11월 8일, 정조 1년(1777) 8월 22일.
0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성남: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5), pp. 313~314 참조.
03 박규홍, 「고대 용신사상에 관한 연구-한국민족연구의 일단으로」, 『한국언어문학』 6 (1969), pp. 127~129 참조.
04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구비문학대계』 8-8권 (서울: 조은문화사, 2002), pp.303~305.
05 이무기나 뱀, 지네, 두꺼비가 용이 되어 승천한다는 서사에 있어서도 그 맥락은 용이 물을 얻어 승천한다는 서사구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조성숙, 「승천하는 용설화의 통과의례적 의미」, 『인문논집』 34 (2014), pp.7~21 참조.
06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구비문학대계』 8-5권 (서울: 조은문화사, 2002), pp.1046~1052.
07 김성호, 「간닢」, 『대순회보』 71 (2007), pp.68~6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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