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생의 인연이 있어야 나를 좇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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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9.09.20 조회26,054회 댓글0건본문
삼생(三生)의 인연이 있어야 나를 좇으리라. (교법 1장 4절)
위 구절은 상제님께서 대순진리에 대한 실천적 교훈을 전하신 교법의 앞부분에 나오는 말씀이다. 이것은 당시 종도들을 향한 가르침이었지만 현재 우리 대순진리회 수도인에 대한 말씀이기도 하기에 그 의미를 헤아려 보고자 한다. 먼저 ‘삼생의 인연’에 대해 살펴보자면 ‘삼생’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으며 그 명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단정적으로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이 글은 그에 대한 여러 가지 관점 중에 하나의 관점을 제안하여 위 성구를 이해하고자 한다.
‘삼생’과 관련하여서 도전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바가 있다.
도인 하면 대개 전생에 뭔가 크게 일을 하다가 못 이루고 이번에 세 번째 와서 뜻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전경에도 “삼생의 인연이 있어야 나를 따르리라.”란 구절이 있지 않느냐. 전생에 뭔가 큰일을 하려다 실패한 사람들이 다 우리 도를 닦는다.01
훈시에 의하면 삼생은 두 번의 전생과 지금의 현생을 아우른 세 번의 인생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삼생은 불교에서는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의미로 쓰여 왔다. 첫째는 과거·현재·미래, 둘째는 전생(前生)·현생(現生)·내생(來生), 그리고 셋째는 전생·이승·저승을 의미한다.02 그러나 위 『전경』 구절과 연관성 있는 불교에서의 삼생은 두번째 의미인 전생·현생·내생이라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인연(因緣)이라 함은 어떤 결과에 대한 원인이나 조건 또는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된 계기·동기나 연고(緣故)·관계·내력(來歷)을 의미한다.03 이런 의미를 고려할 때 삼생의 인연이란 상제님을 좇는 결과를 낳게 한 원인으로서 삼생에 걸쳐서 이어진 인연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강세 이전의 상제님을 직접 뵐 수 없었는데 어떻게 상제님과 전생부터 인연이 시작될 수 있었을까? ‘이번에 세 번째 와서 뜻을 이루려고 하는 사람들이다’라는 말씀을 생각해 볼 때, 이는 전생부터 현생까지 지속한 도인의 뜻이 그 단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삼생에 걸친 도인의 뜻이 시간을 넘어 강세하신 상제님의 뜻과 이어질 수 있었기에 가능하다. 상제님과의 인연은 전생부터 상제님을 직접 뵙지는 못했으나 오직 그 깊은 뜻을 통해 이르게 되는 인연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렇다면 도인들이 전생에 못 이루어 이번 생에 이루려는 그 뜻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 뜻의 의미를 찾으려면 상제님께서 강세(降世)하신 이유를 상기하면 된다. 상제님께서는 진멸지경에 빠진 세상과 창생을 구제하시려고 인간의 몸으로 강세하셨다. 도인들은 이러한 상제님의 뜻을 받드는 것을 사명으로 여기며 포덕·교화·수도에 매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생에 크게 일을 하다가 못 이루고 이번 생에 이루려는 뜻은 궁극적으로는 상제님의 구제창생의 뜻에 부합하는 것이다. 고통에 빠진 세상과 인간을 구하려는 마음은 인류의 보편적인 선(善)의지로서 상제님을 뵙지 않은 어느 시대에나 가능했다. 따라서 직접 상제님을 뵙지 않고 시대를 달리하더라도 세상을 위하고자 하는 뜻을 가진 사람이라면 상제님의 광구천하하시며 구제창생하신 뜻과 통할 수 있다. 이처럼 전생부터 이루고자 하였던 세상을 위한 선한 뜻은 상제님과의 삼생에 걸친 인연의 고리가 될 수 있다.
끝으로 ‘나를 좇으리라’는 말씀을 살펴보자. 『전경』에 근거하면 여기서 ‘나’는 인세(人世)에 강림(降臨)하여 후천개벽공사를 보신 구천상제님이시다. ‘좇으리라’는 말씀은 단순히 따른다는 의미라기보다 상제님을 믿고 그 뜻을 받들어 포덕하며 끝까지 수도해 가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전생부터 현생에 이르는 삼생의 전반에 걸쳐 하나의 뜻을 일념 함으로써 상제님을 받들 수 있는 인연이 있기에 가능하다. 따라서 우리가 대순진리회에 입도하여 수도하는 지금의 모습은 삼생에 걸쳐 어려움에 처한 많은 사람을 위하고자 하는 뜻을 일심으로 이루고자 했기에 가능했던 상제님과의 깊은 인연의 결과이다.
요컨대 상제님과의 숭고한 인연은 강세하신 구천상제님을 신앙하는 대순진리회 수도로 귀결된다. 상제님을 끝까지 믿고 그 뜻을 받드는 수도를 하려면 조상님의 공력도 필요하지만04 근본적으로는 자신의 주체적 의지가 담긴 일심이 요구된다. 따라서 우리는 상제님을 좇는 지금의 수도가 삼생에 걸친 일심의 과정을 통해 어렵게 주어진 점을 생각할 때 수도에 한시라도 게을리할 수 없다. 이처럼 삼생의 인연으로 상제님의 도를 만나게 되었으니 포덕·교화·수도에 참된 결실을 보기를 간절히 염원해본다.
01 「도전님 훈시」(1993. 9. 8).
02 가산 이지관, 『가산불교대사전』 (서울; 가산불교문화연구원, 2010), p.1340 참조; 김승동, 『불교ㆍ인도사상사전』 (부산: 부산대학교 출판부, 2001), p.1723 참조; 곽철환, 『시공 불교사전』, (서울: 시공사, 2008), pp.326-327 참조.
03 곽철환, 앞의 책, p.588 참조.
04 “하늘이 사람을 낼 때에 헤아릴 수 없는 공력을 들이나니라. … 모든 사람의 선령신들은 六十년 동안 공에 공을 쌓아 쓸 만한 자손 하나를 타 내되” (교법 2장 36절); “이제 각 선령신들이 해원시대를 맞이하여 그 선자 선손을 척신의 손에서 빼내어 덜미를 쳐 내세우나니 힘써 닦을지어다.” (교법 2장 14절); “원래 조상이 삼대 이상 적선을 안 하면 이 도에 못 들어온다. … 조상들 덕에 공부하는 것이다.” 「도전님 훈시」(1992.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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