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神明)은 의로운 사람을 돕는다(예시 3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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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4.06 조회27,913회 댓글0건본문
상제께서 “이후로는 천지가 성공하는 때라. 서신(西神)이 사명하여 만유를 재제하므로 모든 이치를 모아 크게 이루나니 이것이 곧 개벽이니라. 만물이 가을 바람에 따라 떨어지기도 하고 혹은 성숙도 되는 것과 같이 참된 자는 큰 열매를 얻고 그 수명이 길이 창성할 것이오. 거짓된 자는 말라 떨어져 길이 멸망하리라. 그러므로 신의 위엄을 떨쳐 불의를 숙청하기도 하며 혹은 인애를 베풀어 의로운 사람을 돕나니 복을 구하는 자와 삶을 구하는 자는 힘쓸지어다.”라고 말씀하셨도다. (예시 30절)
상제님께서는 전 우주를 주재 관령(主宰管領)하시는 구천대원조화주신(九天大元造化主神)으로서 진멸지경(盡滅之境)에 이른 인류와 신명계의 겁액(劫厄)에 대한 원시의 모든 신성·불·보살들의 청원과 하소연으로 인세에 대강(大降)하시어 상도(常道)를 잃은 천지도수(天地度數)를 정리하시고 후천의 무궁한 선경의 운로를 열어 지상천국을 건설하고, 비겁(否劫)에 쌓인 신명과 재겁(災劫)에 빠진 세계창생을 널리 건지시려고 천지공사(天地公事)를 행하시고 화천(化天)하셨습니다.
『전경』 예시 7절에 의하면 상제님께서는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치는 천지공사에서 삼계(三界)를 개조하시기 위하여 세 가지 일을 하셨는데, 첫째는 신명이 사람에게 드나들 수 있게 하셨고, 둘째는 세상에서 버림을 받은 자들을 찾아 쓰셨으며, 셋째는 모든 것에 운(運)을 붙여 쓰기로 하셨습니다.
신명이 사람에게 드나들 수 있게 하신 이유는 신명으로 하여금 사람의 가슴속에 드나들게 하여 심성(心性)을 고쳐 쓰시기 위함입니다. 상제님께서는 “나는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치고 사람에게도 신명으로 하여금 가슴속에 드나들게 하여 다 고쳐 쓰리라. 그러므로 나는 약하고 병들고 가난하고 천하고 어리석은 자를 쓰리니 이는 비록 초목이라도 기운을 붙이면 쓰게 되는 연고이니라.”(교법 3장 1절)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버림을 받은 자들을 찾아 쓰신 이유는 천지공사를 신명과 인간의 해원(解冤)을 위주로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상제님께서 “지기가 통일되지 못함으로 인하여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인류는 제각기 사상이 엇갈려 제각기 생각하여 반목 쟁투하느니라. 이를 없애려면 해원으로써 만고의 신명을 조화하고 천지의 도수를 조정하여야 하고 이것이 이룩되면 천지는 개벽되고 선경이 세워지리라.”(공사 3장 5절) 하신 말씀과 도전님께서 “해원상생·보은상생의 원리를 종교의 법리로 화민정세(化民靖世)하시어 인세(人世)에 낙원을 이룩한다 하심은 광구천하·광제창생의 대의(大義)이다.”01라고 하신 훈시와 『대순진리회요람』 「취지」에 “…해원을 위주로 하여 천지공사를 보은으로 종결하시니 해원 보은 양원리인 도리(道理)로 만고에 쌓였던 모든 원울(冤鬱)이 풀리고 세계가 상극(相克)이 없는 도화낙원(道化樂園)으로 이루어지리니 이것이 바로 대순(大巡)하신 진리(眞理)인 것이다.”라는 말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모든 것에 운을 붙여 쓰기로 하셨다는 말씀에는 천지공사의 본질적인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상제님께서는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치는 천지공사에서 모든 것에 운을 붙여쓰기로 하셨습니다. 이것이 상제님의 천지공사의 법리 중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지·인 삼계도 각각 상제님께서 붙여 놓으신 운이 있습니다. 그것이 『전경』 예시 30절의 전반부 내용입니다.
천지는 성공의 운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태양계 내의 태양 흑점의 변화나 천체의 변화, 지구의 기상이변이나 지진, 지각변동 등의 변화는 인간적 시각에서 일상성을 깨는 이변으로 보일지라도 그것은 모두 천지가 성공하기 위해서 일어나는 과도적 과정입니다. 천지는 비유하자면 만물이 머물다 가는 집과 같고, 혼란한 집 안을 정리하는 첫 번째 단계는 집 안을 청소하는 것입니다. 지구상에 살고 있는 뭇 생명들과 같이 지구 또한 대사활동과 자정작용을 하는 살아 있는 거대한 유기체입니다.
천지는 말이 없고 사심(私心)이 없으니 상제님의 천지공사는 성공의 운을 가지고 있고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인간의 운은 참된 자의 운이 있고 거짓된 자의 운이 있습니다. 참된 자, 의로운 자는 우주의 가을 시기에 결실을 맺고 그 수명이 길이 창성할 것이지만, 거짓된 자, 불의한 자는 낙엽이 가을바람에 따라 말라 떨어지듯이 길이 멸망할 것입니다.
이 참된 자와 거짓된 자를 심판하는 존재는 바로 천지에 가득 차 있는 신명(神明)입니다. 상제님께서는 신명이 신의 위엄을 떨쳐 불의한 자를 숙청(肅淸)하기도 하고 인애(仁愛)를 베풀어 의로운 자를 돕나니 복을 구하고 삶을 구하는 자는 힘쓰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신명공판(神明公判)이고, 도전님께서는 신명공판은 운수를 받는 자리에 가서 있는 것이 아니라 수도 과정에서 먼저 받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상제님께서 “나는 해마(解魔)를 위주하므로 나를 따르는 자는 먼저 복마(伏魔)의 발동이 있으리니 복마의 발동을 잘 견디어야 해원하리라.”고 타이르신 말씀을 언급하시며 깊이 명심하라고 강조하셨습니다.02
신명은 의로운 자를 돕고 불의한 자를 물리칩니다. 이에 우리는 이번 운수의 갈림길이 옳을 ‘의(義)’ 자에 매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옳을 의(義)는 ‘양 양(羊)’과 ‘나 아(我)’ 자의 형성문자로 나의 마음을 양같이 착하게 가진다 하여 ‘바르다’, ‘옳다’의 뜻이 되었고, 양을 제물로 보면 내가 양을 바쳐 신께 비는 의식은 바르고 의로운 일이라는 뜻도 됩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양심(良心)과 사심(私心)이 있고 양심은 천성(天性) 그대로의 본심(本心)이요, 사심은 물욕(物慾)에 의하여 발동하는 사사로운 욕심입니다.03 원래 인성(人性)의 본질은 양심입니다. 양심은 인의지심(仁義之心), 즉 어질고 의로운 마음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강조할 덕목은 양심과 더불어 ‘의(義)’입니다. 양심을 밝힌 사람은 처세에 의를 근본으로 합니다. 인세에는 의리 의(義) 자가 소중한 것입니다. ‘춘무인(春無仁)이면 추무의(秋無義)’04라, 선천(先天)에 그렇게도 사랑을 강조했던 것은 바로 인(仁)을 심은 것입니다. 그 인을 심고 사랑으로 살아온 존재들은 현 시기 의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무엇을 의리(義理)라 하는지 생각해보세요. 의(義)의 이치가 무엇이겠습니까? 의(義)의 이치는 우선 그것이 ‘숙살(肅殺)기운’이라는 데 있습니다. 만물을 성숙시키고 동시에 말라 떨어지게 하는 기운입니다. 춘생추살(春生秋殺)이라는 말도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세간에는 의로써 심판한다는 말이 회자됩니다. 『전경』에 “신의 위엄을 떨쳐 불의를 숙청하기도 하며”(예시 30절), “새 기운이 돌아 닥칠 때에 신명들이 불칼을 들고 죄지은 것을 밝히려 할 때에 죄지은 자는 정신을 잃으리라.”(교법 3장 5절)는 말씀은 다 이를 두고 이르시는 것입니다. 가을은 의리의 계절입니다. ‘추상(秋霜) 같은 의리’라는 말도 만물을 숙살하는 가을의 기운을 두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의(義)의 이치는 다음으로 ‘바름’입니다. 그래서 보통 의에 바를 정(正) 자를 붙여 정의(正義)라 합니다. 정의는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를 뜻하는 것으로 정심입의(正心立義), 즉 마음을 바르게 하고 의리를 세워 얻는 것입니다. 정의라는 말로 세간에 회자되는 것은 의리의 정정당당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르고 마땅한 도리가 의리입니다. 바르다는 것은 곧다는 뜻입니다. 왜곡되지 않고 곧은 것이 바른 것입니다. 그리고 바르다는 것은 사사로움이 없이 공적인 것을 뜻합니다. 또 바르다는 것은 ‘적중(適中)하다.’의 뜻입니다. 바른 도리라 할 때, 여기서 바르다는 것은 적중한 도리, 곧 인륜과 상황에 적확한 도리를 말합니다.
의(義)의 이치는 또한 ‘옳음’입니다. 옳고 그름의 준거가 의리입니다. 순리(順理)에 부합하는 것이 의리이고, 진리에 합당한 것이 의리입니다. 상제님께서 서신(西神)이 사명하여 만유를 재제하므로 모든 이치를 모아 크게 이루니 이것이 곧 개벽이라 하시며, 만물이 가을바람에 떨어지고 혹은 성숙도 되는 것과 같이 불의한 자는 숙청되고 의로운 사람은 신명의 도움을 받는다고 하셨습니다.05 천지가 성공하는 가을 시대에 서신의 사명이 의리인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 살리고 다 죽이는 의리 의(義) 자가 무서운 것입니다. 신목(神目)이 여전(如電)이니 암실기심(暗室欺心)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무자기(無自欺)를 근본으로 수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후천 운수 개벽하여 선악 구별 가릴 적에 내 몸에 지은 죄는 내 몸에 그치고 내 몸으로 닦은 공덕은 내 몸에 복록이 되니, 콩[豆]을 심어 콩이 나고 외[瓜]를 심어 외가 나는 법입니다. 도전님께서 “도(道)란 부단불식(不斷不息)하여 무형무적(無形無跡)하고, 무성무취(無聲無臭)하지만 공명정대하여 무위무가(無僞無假)하며, 무편무사하여 두과지리(豆瓜之理)와 같다.”06 하신 말씀은 이를 두고 이르신 것입니다.
우리 도인의 본분은 언제나 무자기를 근본으로 수도하고 공(公)과 사(私)의 구분과 상하(上下)의 의(義)를 바로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도전님께서는 “도인들은 항상 어디서나 신명의 수찰이 있음을 명심하고 속임과 거짓이 없이 도인의 본분을 바로 지켜야 한다.”07 하시며, “공과 사의 구분과 상하의 의(義)를 바로 지키지 않으면 도인의 본분을 이탈한 것이다.”08라고 하셨습니다. 도의 체계질서는 상호 은의(恩義)로써 세우고 예(禮)로써 지키며, 덕(德)으로 유지하고, 대순진리로 정립하며, 상하의 의리(義理)를 돈독히 하여 서로 믿으며 변하지 않는 신뢰로 확립하여야 합니다.09
인류의 역사에서 추상같이 높은 의리와 태양처럼 빛나는 충의(忠義)는 만대의 귀감으로 그 향기가 누천년에 걸쳐 전해오고 있습니다. 만고대의(萬古大義) 관운장이 제군(帝君)의 반열에 올라 오늘날 만인의 추앙을 받게 된 것은 다른 무엇 때문이 아니라 오직 그가 지닌 의리 때문입니다. 우리 도인은 오직 도주님께서 포유하신 인도에 따라 나의 심기(心氣)를 바르게 하고 나의 의리(義理)를 세우고 나의 심령(心靈)을 구하여 상제님의 임의(任意)에 맡기는 참된 자, 의로운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01 『대순지침』, p.20.
02 『대순지침』, p.94 참조.
03 『대순진리회요람』, pp.18-19 참조.
04 교법 2장 45절.
05 예시 30절 참조.
06 『대순지침』, pp.91-92.
07 『대순지침』, p.39.
08 『대순지침』, p.92.
09 『대순지침』, pp.63-70 참조.
<대순회보 1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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