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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비록 서촉에 있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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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22.06.23 조회16,9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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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비록 서촉에 있을지라도
일심을 가지는 자에게 빠짐없이 찾으리라.
(교법 2장 13절)
 

 

  위 성구의 내용에서 상제님께서 인용하신 ‘서촉’은 삼국지에 나오는 지명(地名)이다. 상제님께서는 공사를 보시면서 당시 민중들에게 친숙한 세속의 말로 비유를 드시기도 하셨다. 예를 들어 상제님께서 금산사의 금불을 세속의 양산도와 비유(예시 15절)하신 구절이 그것이다. 이처럼 ‘서촉’ 또한 상제님께서 당시 민중 친화적 관점에서 인용하셨으리라는 개연성이 있다. 그동안 서촉에 대한 언급은 회보에서 거의 다루지 않았기에 이에 관한 내용을 중심으로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해당 성구의 의미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서촉
  우선 서촉과 관련한 우리나라 자료를 찾아보면 ‘서촉(西蜀) 연안 명씨(明氏) 관향 유래 족보’에 ‘서촉(西蜀)은 고대 중국(中國)의 진(秦)나라 서쪽에 속해있던 지명’01이라고 한다. 고대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始皇帝, 기원전 259~기원전 210)은 전국을 군과 현으로 편성(군현제)하였다. 그중에 서쪽에 촉군02을 두었는데 지금의 사천성(四川省)03이다.
  이러한 서촉에 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 빈번하게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중종실록』 31권에는 “옛날 당 명황(唐明皇: 현종)이 서촉(西蜀)으로 파천(播遷: 임금이 도성을 떠나 다른 곳으로 피란)했을 때, 도로가 막혀서 통할 수가 없었으나, 홀로 고려만이 사신을 보내서 문안하였습니다”04는 내용이 실려있다. 또한, 『효종실록』 10권에는 “… 명황(明皇)이 서촉(西蜀) 지방으로 파천한 뒤에야…”05라고 되어 있다. 이처럼 조선왕조실록에 실린 서촉은 대부분 당 현종이 ‘안녹산(安祿山, 703?~757)06의 난’을 피해 피난지로 선택할 정도로 사람들이 접근하기가 멀고도 험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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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서촉은 어떠한 형세(形勢)를 지니고 있었을까? 이에 관한 내용은 우리에게도 친숙한 나관중(羅貫中, 1330~1400)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07에 나타나고 있다. 조조(曹操, 155~220) 진영의 참모이면서 당대에 이름난 재사(才士)인 양수(楊修, 175~219)와 후한 말의 정치가로서 촉군(蜀郡) 성도현(成都縣) 출신인 장송(張松, ?~212년) 사이에 나눈 대화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양수가 장송에 묻기를 “촉은 어떤 땅입니까?” 이에 장송은 “촉은 나라의 서쪽에 치우친 고을로 옛날에는 익주라 불렸습니다. 길은 금강(錦江)이 있어 험하고 땅은 검각(劍閣)에 이어져 보기에 씩씩합니다.…”08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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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문관, 2005년 6월 촬영, WIKIMEDIA.

 


202206191558_Daesoon_257_%EC%A0%84%EA%B2  여기서 ‘검각’은 현재 ‘검문관(劍門關)’으로 옛 촉한의 전략적 요충지로서 날아다니는 새도 지나기 어려울 정도로 깎아지른 듯 험한 협곡을 이루고 있으며, 현재 중국 사천성 북동쪽 끝 외곽지역에 있다. 이러한 검각은 당나라 때 시인인 이백(李白, 701~762)이 「촉도난(蜀道難)」이라는 시에서 “한 사람이 관을 지켜도 만 명이 관문을 열지 못하네(一夫當關 萬夫莫開).”라고 노래했던 천연으로 험한 요새였다.09
  이처럼 서촉은 당시 중국의 서쪽 끝에 외따로 떨어져 있어 접근하기 쉽지 않은 장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 중원에서 형성된 이러한 서촉 개념은 조선에 유입되어 위치상 멀리 서쪽에 있는 땅으로서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곳이라 생각할 수 있다. 앞서 서촉이란 용어가 일반 민중에게 친숙하였기에 상제님께서 이를 인용하셨을 것이라고 보았다. 이에 대해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자료를 살펴보면, 중종 때 일반 백성들에게 유교적 덕목을 전파하기 위해서 한문뿐만 아니라 훈민정음으로 만들어진 『이륜행실도』에서도 ‘촉’이라는 표현을 사용10한 기록이 있다. 훈민정음은 한자를 모르는 일반 백성들도 쉽게 글자를 익혀 읽을 수 있게 세종대왕(世宗, 1397~1450)이 창제한 문자이므로 조선 시대 일반 민중들도 ‘촉’이라는 단어를 익히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또한, 『전경』에는 상제님께서 종도들에게 관운장에 대해 말씀하시거나 공사를 보시기도 하셨는데, 권지 1장 20절에는 상제님께서 관운장의 형모로 변하여 공우에게 “내 얼굴이 관운장과 같으냐” 하시니 공우가 놀라는 장면이 나온다. 이것으로 보아 공우는 삼국지와 관운장에 대해 알고 있었으며, 이는 서촉에 대해서도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실제 관운장(關雲長, ?~219)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 민간이 만든 관왕묘도 나타나 지식인뿐만 아니라, 평민과 무속인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계층에 의해 관운장이 숭배되고 있었다11는 점에서 대다수 일반인도 서촉이란 용어에 익숙했었을 것이다. 아울러 상제님 재세시 한문과 언문으로 쓰인 한국 근현대 자료집중 하나인 『호남 학보』12에 ‘서촉’13이란 단어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서 서촉은 당시 일반 대중에게 친숙한 용어임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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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을 가지는 자에게 빠짐없이 찾으리라’
  상제님께서는 서촉에 계실지라도 일심을 가진 자를 빠짐없이 찾으리라라고 하셨다. 일심이란 일반적으로 ‘하나로 합쳐진 마음’, ‘여러 사람이 한마음으로 일치함’을 뜻한다.14 하지만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일심은 이러한 사전적 의미의 차원을 넘어 수도와 연관되어 있다. 우리의 수도는 대순진리를 올바르게 자각하여 수도의 목적을 이루는 데 있다. 특히 수도의 목적인 도통을 이루기 위해서는 마음을 유리알과 같이 맑고 깨끗하게 닦아 일심이 되어야 한다.15 일심은 도인들이 바른 수도를 통해 마음을 청정하게 함으로써 이룰 수 있는 마음의 상태이다.
  이와 관련하여 도전님께서는 “‘상제님께서 일심을 가진 자에게는 내가 빠짐없이 찾으리라.’고 하셨다. 믿어야 된다. 믿는 자는 다 찾는다. 믿는 사람이라야 기운을 받는다. 안 믿는 사람에게는 없다.”16라고 하셨다. 이 훈시 내용을 전후 맥락 속에서 살펴보면 도전님께서는 믿음의 측면에서 일심을 강조하신 것이라 이해된다.
이러한 믿음에 대해 『대순지침』에는 “(가) 자각이 없으면 확신이 서지 않는다.”와 “(바) 믿음은 의심 없는 굳은 신념인 것이다.”17라고 명시되어 있다. 여기서 자각은 각자의 깨달음이 아닌 도의 진리가 옳다는 것을 깨달아 종단의 제도와 법을 지켜나가는 것이다.18 또한, 『대순진리회요람』에 한마음을 가졌다면 어떤 조건에서도 변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마음이 바로 믿음이라고도 하였다.19 따라서 이와 같은 내용을 토대로 해당 성구의 의미를 미루어보면 자각과 확신을 통한 변하지 않는 굳은 신념으로 바른 수도를 통해 마음을 유리알같이 깨끗이 닦아야만 일심에 도달하여 기운을 받을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도인들이 잠시 한마음을 가진 듯하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마음이 변하기도 한다. 이것은 진정한 일심이라고 할 수 없다. 즉, 일심이란 일시적인 마음이 아니라 굳은 신념처럼 꾸준히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는 지속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앞서 일심은 수도의 목적인 도통을 이루기 위한 전제조건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러한 일심을 갖기 위해서는 상제님의 대순하신 진리를 바르게 실천하고 수행을 꾸준하게 해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즉, 해원상생의 원리에 입각해 성ㆍ경ㆍ신을 수도의 요체로 삼고 안심ㆍ안신을 수행의 훈전으로 삼아 무자기를 근본으로 윤리도덕을 숭상하여 정신이 통일되어야 한다. 정신이 통일되면 영이 맑아지는데, 이는 곧 상제님의 대순하신 진리를 바르게 정각(正覺)하고 실천, 수행하여야 일심이 된다는 의미이다.20 이러한 일심을 가진 자에게 상제님께서는 빠짐없이 찾는다고 하셨다. 상제님께서 ‘찾는다’라고 하신 말씀은 교법 2장 13절 외에 행록 5장 22절에도 나온다.       


상제께서 모든 종도를 꿇어앉히고 “나를 믿느냐”고 다짐하시는지라. 종도들이 믿는다고 아뢰니 상제께서 다시 “내가 죽어도 나를 따르겠느냐”고 물으시는지라. 종도들이 그래도 따르겠나이다고 맹세하니 또다시 말씀하시기를 “내가 궁벽한 곳에 숨으면 너희들이 반드시 나를 찾겠느냐”고 다그치시니 역시 종도들이 찾겠다고 말하는지라. 상제께서 “그리 못하니라. 내가 너희를 찾을 것이오. 너희들은 나를 찾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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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제님께서 궁벽한 곳에 계시더라도 종도들을 향하여 내가 너희를 찾으리라 하셨다. 이 말씀은 어찌 보면 이 글의 주제와 상통하는 의미가 있다고 보인다. 궁벽이란 ‘외따로 떨어져 구석지고 매우 깊은 곳’이란 뜻이므로 서촉 또한 발길이 쉽게 닿을 수 없는 험난한 산하에 둘러싸여 있다는 점에서 궁벽한 곳과 유사한 의미로도 볼 수 있다. 궁벽한 곳이 구체적으로 어디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상기에 인용된 행록 5장 22절은 시기적으로 기유년(1909), 즉 상제님께서 화천하셨던 해21이다.
  그러므로 상제님께서 화천을 암시하신 궁벽한 곳은 신명계를 상징한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서촉 또한 종도들이 쉽게 올 수 없는 곳으로 종도들에게 일심과 믿음의 중요성을 가르쳐주시기 위한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상제님께서는 어디에 계실지라도 이러한 외적인 조건과 상관없이 어디서든 마음을 보시고 믿는 자를 찾으신다고 하셨다. 상제님께서 ‘찾는다’라는 말씀은 앞서 훈시 내용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일심을 가진 모두는 기운을 받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위 성구는 자각을 통한 굳은 믿음으로 흔들리지 않는 일심을 가지고 있으면 누구나 상제님의 덕화를 입어 자신의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다는 의미이다.
  지금까지 교법 2장 13절에 나타난 “내가 비록 서촉에 있을지라도 일심을 가지는 자에게 빠짐없이 찾으리라”라는 말씀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대순진리회요람』에 ‘수도’란 “심신을 침잠추밀하여 대월 상제의 영시의 정신을 단전에 연마하여 영통의 통일을 목적으로 공경하고 정성하는 일념(一念)을 끊임없이 생각하고…”22라고 하였다. 상제님께서 서촉과 같은 곳에 계신다는 핑계로 마음을 게을리하거나 믿음을 중지한다면 상제님의 기운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수도의 목적을 이룰 수가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수도인들이 난관에 부닥쳐있을지라도 항상 이 성구를 각골명심(刻骨銘心)한다면 상제님의 덕화로 무사히 난관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01 「명씨(明氏) 본관(本貫) 서촉(西蜀), 연안(延安)」, 한국 족보출판사, https://www.findroot.co.kr/
02 사진 1 참고.
03 사진 2 참고.
04 『중종실록』 31권, 중종 12년 윤12월 4일 을해 2번째 기사, “昔者唐 明皇播遷西蜀, 道路阻隔, 莫之能通, 而獨我高麗遣使欽問”.
05 『효종실록』 10권, 효종 4년 3월 17일 癸未 4번째 기사, “明皇遷蜀之後”.
06 중국 당(唐)나라 때 반란을 일으킨 무장(武將).
07 비록 소설이긴 하나 실제 존재했던 역사적 인물들(양수, 장송 포함)을 중심으로 하였기에 본문에 나오는 양수와 장송의 대화 내용은 촉의 형세를 이해하는 데 참고할 수 있다.
08 나관중, 『삼국지 7』, 이문열 옮김 (서울: 민음사, 1988), pp.39-40.
09 「촉한의 마지노선 검문관」,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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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15 《대순회보》 35호, 「도전님 훈시」 “신명은 바르게 닦은 사람에게 응하게 됩니다. 바르게 닦는다는 것은 마음을 유리알과 같이 맑고 깨끗하게 닦아 일심(一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6 「도전님 훈시」(1992. 5. 3).
17 『대순지침』, pp.53-54 참고.
18 「도전님 훈시」(1994. 12. 3).
19 『대순진리회요람』, p.17: “한마음을 정한 바엔 이익과 손해와 사(邪)와 정(正)과 편벽과 의지로써 바꾸어 고치고 변하여 옮기어 어긋나 차이가 생기는 일이 없어야 하며…강하와 산악이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이 하고…”.
20 이광주, 「전경성구: 일심을 가지는 자에게는 지체없이 베풀어 주리라」, 《대순회보》 247 (2021), p.18.
21 행록 5장은 기유년으로 시작하여, 20절이 六월, 21절이 二十일, 26절이 二十一일로 기록되어 있다.
22 『대순진리회요람』,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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