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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속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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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7.02.10 조회2,3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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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연구위원 주현철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사람들도 급변하는 흐름에 적응하기 위해 숨 가쁘게 살아가고 있다. 일하기 위해서 사는지 살기 위해서 일을 하는지 조차 잊은 채, 아무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고단한 삶 속에 묻어 버린다. 그러나 진정으로 올바르고 가치 있는 인생을 만들기 위해서는 삶의 목적과 자신의 마음자세를 살펴보아야 한다. 어떤 마음으로 사는지 모르는 사람에게 올바른 마음과 행동을 기대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는 공기와 물이 필요하다. 그리고 또 하나를 꼽으라면 신뢰일 것이다. 신뢰란 인간의 생명과도 같은 것으로, 복잡한 사회생활 속에서 원만한 관계를 이룰 수 있게 해준다. 다른 사람의 신뢰를 얻고 싶다면 먼저 그를 믿어야 한다. 그래야 그 속에서 진심이 싹트게 되는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너희들이 믿음을 나에게 주어야 나의 믿음을 받으리라.”(교법 1장 5절)고 말씀하셨다. 남을 믿지 않으면 나에 대한 신뢰도 생기지 않으며, 상제님을 믿지 않으면 상제님으로부터 신뢰를 받을 수 없다. 마음이 깨끗한 곳에 신뢰가 싹트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원천은 정직(正直)이 만들어 주는 신뢰이다.

  상제님께서는 “나를 믿고 마음을 정직히 하는 자는 하늘도 두려워하느니라”(교법 2장 7절)고 말씀하셨다. 믿음과 정직이 하늘을 감동케 할 수 있다. 상제님으로부터 무한한 생명과 복을 받기 원한다면, 믿음을 돈독히 하고 마음을 진실하게 가져야 한다. ‘마음을 속이지 않는 것’, 이것의 중요성을 일상생활뿐만이 아니라 신앙생활에서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마음은 일신(一身)의 주(主)이기 때문에, 사람의 모든 언어 행동은 마음에서 나온다. 마음에는 양심(良心)과 사심(私心) 두 가지가 있는데, 양심은 천성 그대로의 본심(本心), 즉 도심(道心)이며, 사심은 사사로운 감정이나 물욕(物慾)에 의해서 발동하는 욕심을 말한다. 원래 인성의 본질은 양심인데, 사심에 사로잡혀 도리에 어긋나는 언동을 감행하게 되기 때문에, 사심을 버리고 양심인 천성(天性)을 되찾기에 전념해야 한다. 인간의 모든 죄악(罪惡)의 근원은 마음을 속이는 데서 비롯하여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인성(人性)의 본질인 정직과 진실로써 일체의 죄악을 근절해야 한다.(『대순진리회요람』, 18-19쪽 참조)

  우리 도(道)에서는 정직한 마음을 무엇보다 중시하고 있다. 흔히 속인다고 하면 남에게 허위를 저지르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남을 속이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속이기 때문에, 속인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본체인 양심을 속이는 것이 된다. 그래서 마음을 속이지 않는 것은 바로 무자기(無自欺)를 가리키는 것이다. 무자기(無自欺)는 곧 수도의 근본이자 목적이다. 수도(修道)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않는 것을 바탕으로 하여, 본성인 양심을 되찾으려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수도를 중단하거나 게을리 하여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심(私心)이 개입되어 마음을 속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과오를 경계하기 위하여 옛부터 “자기가 자기를 속이는 것은 자신을 버리는 것(自欺自棄)이요, 마음을 속이는 것은 신을 속임이다(心欺神棄)”라고 하였으니, 신을 속이는 것은 곧 하늘을 속임이 되어 용납될 수 없다고 하였다.(『대순지침』, 42쪽 참조) 인간이 인간을 속일 수는 있지만 신명(神明)까지는 속일 수 없다. 신명은 인간의 마음속을 훤히 꿰뚫어보고 있기 때문에, 인간을 통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대로 세상에 드러내 보이게 한다.

  마음을 속이지 않는 것은 자신을 위한 일이다. 거짓된 것은 모든 죄악의 근원이고 진실은 만복의 근원이 된다. 상제님께서는 “만물이 가을바람에 따라 떨어지기도 하고 혹은 성숙도 되는 것과 같이 참된 자는 큰 열매를 얻고 그 수명이 길이 창성할 것이오. 거짓된 자는 말라 떨어져 길이 멸망하리라. 그러므로 신의 위엄을 떨쳐 불의를 숙청하기도 하며 혹은 인애를 베풀어 의로운 사람을 돕나니 복을 구하는 자와 삶을 구하는 자는 힘쓸지어다.”(예시 30절)라고 하셨다. 영원한 생명과 복록을 얻고자 하는 자는 이 말씀을 명심하여 수도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마음을 속이지 않는 것은 남을 잘 되게 하려는 이타심(利他心)의 실천이다. 이것은 지극한 도심(道心)과도 통한다. 도심은 오직 공(公)적인 것만을 생각하는 마음이다. 사(私)는 인심(人心)이요 공(公)은 도심(道心)이기 때문에, 도심이 지극하면 사심(私心)은 일어나지 못한다.(『대순지침』, 93쪽 참조) 사심이 없다는 것은 양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나 자신의 이득이나 편이함보다는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하는 의도가 없다면 남을 속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나만의 이득을 위한 행위는 곧 남의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에 소홀하고 상하(上下)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않으며, 종단의 명예와 위상을 실추시키는 등 그 행위가 비록 법에 저촉되지 않는 도덕적·신앙적 행위라 하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는 양심에 어긋나는 일이다. 양심이란 자기 한 사람의 이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다. 그래서 인간의 본성으로서의 양심은 곧 남을 잘 되게 배려하는 이타심(利他心)인 것이다.

  마음을 속이지 않으려면 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상제님께서는 “한 몸으로 두 마음을 품은 자는 그 몸이 찢어지리니 주의하라.”(권지 1장 19절)고 하셨다. 남이 볼 때는 진리를 따르는 듯이 행동하지만, 남이 없으면 양심을 버리고 사욕에 가득 차 진리를 버리는 이중적인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남이 보든 보지 않던, 남이 알든 모르던 한결같이 진리에 따라 양심을 갖고 살아야 한다. 남이 마음을 속이니까 아무 거리낌 없이 나도 남을 속이는 것처럼, 아무 생각 없이 남이 살아가는 대로 살아서도 안 된다. 우리는 인륜(人倫)을 밝혀나가려는 수도인이다. 남이 어떻게 하든 나 자신만큼은 마음을 청정하게 가꾸고, 내 마음을 밝히는데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타의 모범이 될 수 있고 다른 사람을 바른 길로 인도할 수 있다.

  마음을 속이지 않는 것은 남을 위하고 나를 위하는 행위이다. 남을 속이고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축적하면 한때 호의호식하며 잘사는 듯이 보이지만, 진실이 밝혀지면 한순간에 덕과 명성을 잃고 평생 불편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게 된다. 그러나 항상 마음의 청정함을 유지하여 어떤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고요하게 지켜 나가면, 이 세상에 두려워할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또 그 진실이 밝혀지면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한 몸에 받게 될 것이다. 수도(修道)는 재물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사욕을 버리고 양심을 지킴으로써 항상 마음을 평온하게 하려는 마음공부이다. 이를 실천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수도인의 올바른 삶의 자세이다. 

《대순회보》 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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