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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지공(無私至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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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9.14 조회2,2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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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지공(無私至公)

도(道)는 일체의 사(私)가 없이 「무편무사 」하게 존재하는 법

운수를 받는 것은 공(公)에 지극한 인도(人道)에 있다

사(私)를 버리고 공(公)으로서「화합과 단결 」을 이루어야

          

  도(道)는 어떤 일개인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주의 모든 것을 포용하여 경위(經緯)와 질서(秩序)를 따라서 쉼 없이 흘러가는 원리인 것이다. 만일 도가 사사로움에 따라 움직여진다면 그때부터 그것은 도라는 틀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오로지 천리(天理)에 따라 끊어지지도 않고 쉼도 없이, 형체도 없고 냄새도 맡을 수 없는 것이지만 도는「공(公)」을 따라 우리 주변을 오늘도 스쳐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만약 도가 공(公)의 틀을 벗어났다고 생각해보자. 그때 무슨 일들이 벌어질까를 상상해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멋대로 흘러가는 자연의 변화 속에서 천재지변이 수시로 일어나고 우주는 물론이고 인간세상 또한 무법천지로 변해 모든 것은 마비상태 속에 빠지며 인간은 진멸 지경에 처할 것이다. 아직 선천의 상극세상이지만 우리가 그나마 자연의 변화에 대처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경위와 질서를 따라 움직여 가는 원리가 존재하기 때문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결국 도라는 것은 일체의 사(私)가 없이 공명정대(公明正大)하고 무편무사(無偏無私)하게 존재하는 법(法)이며 율령(律令)이므로 인간은 그 속에서 질서 있게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공평무사(公平無私)한 도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수도를 해나가야 할 것인가. 도의 흐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간(人間)으로서 우리는 무사지공(無私至公)의 수행을 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한 수행을 통해 도의 완성을 이루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도전님께서 「수도를 잘 하고 잘못함은 자의(自意)에 있으나, 운수를 받는 것은 사(私)가 없고 공(公)에 지극한 인도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대순지침 p.93), 「도(道)란 부단불식(不斷不息:끊기지도 않고 그치지도 않는다)하여 무형무적(無形無跡:형상할수도 없고 자취도 없다)하고 무성무취(無聲無臭: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다)하지만 공명정대하여 무위무가(無僞無假)하며 무편무사하여 두과지리(豆瓜之理)와 같다.」(대순지침 p.91)라고 말씀하신 것은 그 점을 보여 주신 것이라 사료된다.

 

  결국 수도에 있어 개인적 감정과 이익을 떠나 천하의 마음으로 돌아가 남을 잘 되게 해 주는 공명정대한 수행이 필요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전경」에 「천리의 극진함이 털끝만한 인욕(人慾)의 사(私)가 없나니라」(행록 2장 17절)라고 하신 말씀과 「난법난도(亂法亂道):법도를 어지럽히다.)하는 사람 날 볼 낯이 무엇인가」(교법 1장 33절) 「인간은 욕망을 채우지 못하면 분통이 터져 큰 병에 걸리느니라. 이제 먼저 난법(亂法)을 세우고 그 후에 진법(眞法) 내리나니 모든 일을 풀어 각자의 자유 의사에 맡기노니 범사에 마음을 바로하라. 사곡(私曲)한 것은 모든 죄의 근본이요. 진실은 만복의 근원이 되니라… 마음을 바로 잡지 못하고 사곡을 행하는 자는 지기가 내릴 때에 심장이 터지고 뼈마디가 퉁겨지리라. 운수야 좋건만 목을 넘어가기가 어려우리라」(교법 3장 24절)고 하신 구절에서도 역시 도를 닦아 운수를 받는 데 있어 진실되고도 공명정대한 성∙경∙신의 노력이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상제님께서 이 세상에 강세하시어「천지공사(天地公事)」를 행하신 것은 「공사(公事)」라는 낱말이 보여주듯이 우주전체의 바른 질서를 세우기 위한 광대정명한 대역사였던 것이다. 그에 따라 바로 잡혀져 가는 「진법(眞法)」의 원리 안에서 수도인으로서 「천지공정(天地公庭)」에서 일개인적 사심(私心)과 사욕(私慾)을 부려 법도를 어지럽히는 일을 행한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가 없는 일인 것이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우리의 도는 신도(神道)로서 천지신명의 「공판(公判)」과 함께 가는 수도의 길이다. 인간이 만들어 개인적사고에 따라 복록을 주는 사사로움이 개입될 수 없는「신인조화(神人調化)」의 공정한 대도인 것이다. 그래서 도통을 베풀어 주시기를 간청한 종도에게 상제님께서는 그 청을 꾸짖으시며 「나는 사정(私情)을 볼 수 없도다. 도통은 이후 각기 닦은 바에 따라 열리리라」(교운 1장 33절)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우리 모두는 「콩심은 데 콩나고 오이를 심은 데 오이가 난다(두과지리:豆瓜之理)」는 당연한 진리의 말을 생각하며 항시 수도생활 속에서 나 자신의 「사(私)를 버리고 공(公)으로 돌아가」 모든 수도인들과 「화합단결(和合團結)」을 이루는 수행의 장을 열어 나가야 할 것이다.

 《대순회보》 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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