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불가근(八不可近)(교법 3장 4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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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18.04.19 조회27,308회 댓글0건본문
상제께서 종도들에게 때때로 시를 읽어 주심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깨우치게 하셨도다.
非人情不可近
非情義不可近
非義會不可近
非會運不可近
非運通不可近
非通靈不可近
非靈泰不可近
非泰統不可近
(교법 3장 47절)
인정이 아니면 가까이하지 말고
인정이 의리가 아니면 가까이하지 말며
의로운 모임이 아니면 가까이하지 말고
모일 운이 아니면 가까이하지 말며
운이 형통하지 않으면 가까이하지 말고
영에 통하는 것이 아니면 가까이하지 말며
영이 크지 않으면 가까이하지 말고
크게 거느리는 것이 아니면 가까이하지 말라
인세에는 많은 모임과 조직이 있습니다. 그 모임과 조직에는 국가 사회나 가정과 같이 태어나면서 숙명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생득적 참여조직과 종교단체나 정치단체, 친목모임과 같이 자신의 자아발견과 자아실현을 위하여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의지적 참여조직이 있습니다. 위의 팔불가근(八不可近)의 내용은 후자의 조직으로 어떠한 모임에 참여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팔불가근은 여덟 가지 가까이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합니다.
우선 그 모임에 인정(人情)이 없다면 가까이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情)은 마음 심(心)과 푸를 청(靑)을 합한 글자입니다. 청(靑)은 날 생(生)과 붉은 단(丹)을 합하여 붉은색이 나온 자리로[木生火] 푸르다는 뜻입니다. 정(情)은 소나무처럼 변치 않는 푸른 마음이니, 순수한 타고난 성질대로의 사람 마음을 뜻합니다. 靑(청)은 生(생)에서 생겨났으니 情(정)도 본디는 性(성)과 같은 글자였으나, 나중에 타고난 성질 쪽을 性(성), 밖으로부터 자극(刺戟)을 받아 일어나는 마음의 움직임, 욕심(慾心)에 연결되는 감정(感情) 쪽을 情(정)이라 하여 구별하게 되었습니다.01
사람은 가족 간에는 사랑을 나누고 이웃 간에는 정을 나누며 삽니다. ‘가는 정 오는 정’이라 하듯이 사람이 사는 곳에 따뜻한 정이 없다면 금수의 세상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인간 사회가 예(禮)를 체로 삼지만, 예도 정이 없으면 빈 껍질과 같습니다. 예출어정(禮出於情)이라, 정(情)이 없으면 예도 없는 것이니 이웃 간에는 정을 돈독히 하여야 합니다. 그러니 비인정이면 가까이 하는 것이 불가합니다.
다음으로 그 모임에 인정이 있더라도 의로움이 없다면 가까이하지 말아야 합니다. 양심(良心)은 인의지심(仁義之心)입니다. 인(仁)과 의(義)는 음양합덕(陰陽合德)의 관계로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의리는 공허하고 의리 없는 사랑은 무상(無常)합니다. 정의(情義)는 따뜻한 정과 의리입니다. 정에는 의리가 따라야 하니 정이 있어도 의리가 아니면 가까이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은 선택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에서 신성(神性)을 보고자 하는 자발적인 의지에 의한 선택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무조건적인 연민입니다. 사랑이 진정(眞情)입니다. 이 진정이 올바르게 작용하는 상태를 의(義)라 합니다. 그러니 인정이 넘치는 사기꾼의 모임이나 의리를 강조하는 폭력조직은 사랑과 의리가 기능 장애를 일으킨 것으로 진정한 사랑이나 의리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정의(情義)가 아니면 가까이 하는 것이 불가합니다.
다음으로 의로움이 있되 그 의리가 무리를 이루어 모여 있는 곳이 아니면 가까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의로움은 무리를 이루어야[會]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항상 양적 변화가 질적 변화를 초래하는 법입니다. 한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하기 위해서는 의로운 자의 수가 일정한 임계치를 넘어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물이 100℃가 되어야 비로소 끓고 액체에서 기체로 변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의(義)는 회(會)가 되어야 그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니 의로운 모임이 아니면 가까이 하는 것이 불가합니다.
이제는 천지가 성공하는 때라 서신이 사명하여 만유를 제재하므로 만물이 가을바람에 따라 혹은 성숙하고 혹은 말라 떨어지는 것과 같이 참된 자는 큰 열매를 맺고 그 수명이 길이 창성할 것이요, 거짓된 자는 말라 떨어져 길이 멸망할 것입니다. 의로운 자는 신명이 인애(仁愛)를 베풀어 도울 것이고, 불의한 자는 신명이 위엄을 떨쳐 숙청될 것입니다.02 때가 되면 알곡은 알곡끼리 묶일 것이나, 쭉정이는 쭉정이끼리 모아 알곡은 곳간에 넣어 주인의 신실한 씨종자가 될 것이거니와 쭉정이는 묶인 채 불에 던져질 것이라는 세간의 비유는 이를 두고 이르는 것입니다.
다음은 의로운 모임이라 해도 그 모임에 운(運)이 없다면 가까이하지 말아야 합니다. 운이란 천지의 합법칙적 변화원리에 따른 잠재적 경향성으로 어떤 일이 잘되어 가는 운수(運數)를 뜻합니다. 흔히 ‘운이 있다.’거나 ‘운이 없다.’는 표현을 쓰는데 어떤 모임에 운수가 있다는 것은 그 모임의 취지나 방향성이 천리(天理)에 부합하여 그 전도가 양양한 것을 의미합니다. 맹자는 “순천자(順天者)는 흥(興)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亡)한다.” 하였는데 이는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러니 운이 없는 모임에 가까이 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다음은 운이 있어도 형통(亨通)해 가는 곳이 아니면 가까이하지 말아야 합니다. 통한다는 것은 막힘이 없는 것입니다. 운수가 꽉 막히는 것을 비색(否塞)이라 합니다. 운은 통해야 좋지 막히면 안 됩니다. 운의 흐름에서 가장 꺼리는 것이 비색한 것입니다. 운은 통해야 자연스럽게 흐릅니다. 통해야 개운(開運)이 됩니다. 풍수에서 하수구가 막히는 것을 집안의 운을 안 좋게 만드는 주된 요인으로 보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운이 통하더라도 그것이 영(靈)에 통하는 것이 아니면 가까이하지 말아야 합니다. 운이 통하는데 그것이 어디에 통하는 것인지 아는 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 세상에 나 자신이 구하는바 가장 지극한 보배는 바로 나의 심령(心靈)입니다. 심령을 통하면 귀신과 더불어 수작(酬酌)할 수 있고 만물과 더불어 질서를 함께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내재하는 영(靈)은 하느님의 분령(分靈)입니다. 그러니 인류는 상제님의 아들과 딸들이 되는 것입니다.03
상제님께서는 구천대원조화주신(九天大元造化主神)으로서 우주 삼라만상의 생성의 근원이시고 무한 무량한 세계를 주재 관령(主宰管領)하시는 삼계(三界)의 지존(至尊)이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영적인 모임이든 그 모임의 지향점이 하느님의 영(靈)에 통해 가는 곳이 아니면 진정한 의미에서 운(運)도 없고 통(通)도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나의 심령이며 가장 소중한 일은 심령을 통일(統一)하는 일입니다. 심령의 통일은 대월상제(對越上帝) 영시(永侍)의 정신으로 공경하고 정성을 다하는 마음을 영세(永世)토록 잊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면의 심령을 발견하고 심(心)과 영(靈)을 통일하는 과정을 지향하거나 돕는 모임이 아니라면 가까이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모임에 가까이하고자 할 때는 주의하여야 합니다. 그 모임이 내면의 심령을 구하지 않고, 인간의 자유의지를 삼계의 지존이신 상제님의 임의(任意)에 맡기도록 계도하는 곳이 아니라면 그 모임은 방향을 상실한 배와 같이 표류하게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영과 통하더라도 그 영이 장대한 곳이 아니면 가까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靈長)이고, 그 인간 또한 영혼의 여정을 통해 경험이 많은 정도와 깨달음에 따라 영신(靈身) 크기의 차이가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물은 다 같은 물이지만 계곡을 흐르는 시냇물이 있고 그것이 모인 강하가 있으며, 강하가 모여 이룬 바다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흐르는 물의 최종 종착지는 바다입니다. 우주의 주재자이신 상제님은 뭇 생명의 바다이십니다. 모든 종교와 영성(靈性) 모임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명의 바다로 안착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곳으로 되어야 합니다.
끝으로 영이 크더라도 큰 영신들이 하나의 체계로 통합되어 있는 곳이 아니면 가까이하지 말아야 합니다. 도전님께서 “도(道)가 음양이며 음양이 이치이며, 이치가 곧 경위이며 경위가 법이라는 진리를 깨달아야 한다.”04 하셨습니다. 도가 음양이며 음양은 이치요 이치는 경위이며 경위는 곧 체계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왜 체계질서를 바로 세워나가는 것이 도를 닦는 것인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05
주역(周易)에 “근취저신(近取著身) 원취저물(遠取諸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진리를 구함에 있어 가깝게는 자신의 몸에서 취하고 멀게는 주변 사물에서 취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몸을 살펴보면 체계질서의 중요성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의 양기(陽氣)와 음기(陰氣)의 균형이 실조되고, 중추 신경계, 골격, 5장 6부의 체계가 무너진다면 그 사람은 정상적으로 살아가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조직과 단체도 우리의 몸과 같이 살아 있는 하나의 유기체입니다. 우리 몸의 모든 장기가 균형과 조화를 미덕으로 삼듯이 조직과 단체 또한 구성원 간의 소통과 상생, 협력으로 융화단결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깁니다. 각자는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잘 알아서 책임감 있게 일을 수행하고, 다른 사람도 자신의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항상 일을 이루는 데는 다른 사람과 힘을 합하여야 한다는 정신으로 협동하고 협력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전체의 일부임을 자각한다면 남을 잘 되게 하는 것이 곧 내가 잘 되는 길임을 알게 됩니다. 남을 잘 되게 함은 상생대도(相生大道)의 기본원리요 구제창생의 근본이념입니다.06 남을 잘되게 하는 것은 대인 수행(對人修行)의 지상과제입니다. 아무리 영적으로 출중한 인물들이 많아도 종통(宗統)이 바르지 못한 곳에서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다면 큰일을 도모하기 어려운 것이니 그런 곳을 가까이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클 태(泰) 자의 갑골문 형태는 큰 대(大) 자를 양손으로 받들고 그 밑으로 물이 흘러내리는 모양으로 되어 있습니다.07 大는 大巡을 상징한다고 보고 대순(大巡), 즉 도(道)를 양손으로 받들고 그 아래 물이 흐르는 형상은 우리 도의 연원(淵源)을 연상하기에 충분합니다. 또한 클 태(泰) 자는 의미상 으뜸 종(宗) 자와 통하니 태통(泰統)은 종통(宗統)으로 볼 수 있습니다.
종통은 상생대도의 진리이며 생명입니다. 종통이 바르지 않으면 진리가 없고 법이 있을 수 없으며, 경위가 바로 설 수 없으니, 그 속에서는 생명이 움틀 수 없고 만사를 이루어낼 수 없는 것입니다.08 종통이 바르지 않은 곳에 가까이하지 말라는 것이 바로 비태통불가근(非泰統不可近)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인정과 의리가 있고, 의로운 자들이 모여 있으며, 운수가 있고 형통하며, 내면의 심령을 구하여 상제님의 임의에 맡기며, 큰 영신들이 체계를 이루어 인간 완성인 도통과 지상천국 건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성·경·신을 다하는 모임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구천상제님께서 펼치시고, 도주님께서 계시(啓示)로 천명(天命)을 받들어 진법(眞法)을 설정하셨으며, 도전님께서 유명(遺命)으로 종통(宗統)을 계승하시어 창설하신 ‘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입니다.
01 민중서림 편집국, 『한한대자전』 (파주: 민중서림), 2008, 박홍균, 『원리한자』 (서울: 이비락), 2011, 《네이버 한자 사전》 참조.
02 예시 30절 참조.
03 『포덕교화기본원리(1)』, p.10 참조: 우리들 인류는 상제님의 손(孫)으로 한 동기 형제를 이루었으니 서로가 존중하고 사랑하며 화평하여야 한다.
04 『대순지침』, p.18.
05 『대순지침』, p.65 참조.
06 『대순진리회요람』, p.20 참조.
07
08 《대순회보》 5호, 「도전님 훈시」 참조.
<대순회보 1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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