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원한과 천지 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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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22.10.13 조회12,910회 댓글0건본문
한 사람의 품은 원한으로 능히 천지의 기운이 막힐 수 있느니라.
(교법 1장 31절)
『전경』의 이 구절은 인간의 원한이 미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을 간결하면서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상제님 말씀이다. 인간의 원한이 천지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말씀은 그 내용만으로도 우리에게 원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하다. 이와 관련하여 공사편의 다음 구절에는 한 사람이 갖는 원한의 무거움이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상제께서 기유(己酉)년에 들어서 매화(埋火) 공사를 행하시고 四十九일간 동남풍을 불게 하실 때 四十八일 되는 날 어느 사람이 찾아와서 병을 치료하여 주실 것을 애원하기에 상제께서 공사에 전념하시는 중이므로 응하지 아니하였더니 그 사람이 돌아가서 원망하였도다. 이로부터 동남풍이 멈추므로 상제께서 깨닫고 곧 사람을 보내어 병자를 위안케 하시니라. 이때 상제께서 “한 사람이 원한을 품어도 천지 기운이 막힌다”고 말씀하셨도다. (공사 3장 29절)
이 일화에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한 사람의 원한이 상제님께서 행하시는 공사에 지장을 초래했다는 사실이다. 상제님께서 세상을 살리기 위해서 행하신 천지공사는 인간과 자연, 신명을 아우르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일이다. 공사가 모든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공적인 일인 데 반해 한 사람의 원한은 개인적이고 특수한 일이라서 예사롭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원한은 천지공사에 지장을 줄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이는 우리의 상식과 조금은 떨어져 있어 관련된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먼저 인간의 원한이 천지의 기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기운(氣運)의 개념을 이해해야 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기운이라는 단어는 어떤 일이 벌어지려고 하는 분위기나 느껴지는 현상의 의미로 쓰일 때가 많다. 하지만 이 구절에서 기운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서 만물이 나고 자라는 힘”01이라는 의미에 좀 더 가깝다. 이는 철학적 개념인 기(氣)와 통용되는 것이다.
기는 동아시아 문화에서 오랫동안 쓰이며 축적되어온 개념이므로 간단하게 정의 내리기 쉽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설명하자면 사물이 존재하는 현실적인 바탕을 말한다. 즉, 만물이 존재하도록 하는 근원적인 힘이라고 볼 수 있다.02 이는 에너지의 개념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에너지는 열, 운동, 중력, 전기, 소리, 빛, 자기 등이며 물질적 요소로 치환되는 힘이다. 이 때문에 서양에서는 기를 에너지의 개념과 비슷한 것으로 이해해 왔다.03
현실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기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자연현상을 기의 작용이라고 이해할 수 있고, 원한의 감정 또한 인간 마음이 일으키는 심리적 현상이라는 점에서 기의 작용이라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모든 현상을 일으키는 기저에 기의 작용이 들어있다고 봄으로써 인간의 마음과 천지자연이라는 이질적인 대상이 서로 연결되어 반응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이것은 ‘기로서 만물과 내가 하나의 몸을 이룬다’04는 주자(朱子, 1130~1200)의 만물일체(萬物一體)에 관한 이론에서 대표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주자는 기를 통해 인간과 천지는 서로 맑은 기운뿐만 아니라 탁한 기운까지도 주고받는 것으로 보고, 인간이 올바른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당위성을 설명해 주는 근거로 활용하였다.
이러한 내용을 참고해 보면, 원한이라는 부정적 기운이 천지의 기운을 막는 원리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천지의 기운이 막힌다는 것은 천지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기의 흐름은 원활해야 정상적인 작용이 일어나는데 기의 흐름이 막히면 정상적이지 않은 작용의 원인이 된다. 이는 한의학에서 인체의 기혈(氣血)이 막히는 것을 정상적이지 않은 신체의 병으로 간주하는 것과 흡사하다.05
하지만 상제님께서는 인간과 천지가 기를 통해 연결된다는 기존의 유교적 패러다임으로 천지의 기운이 막히는 과정을 설명하지는 않으셨다. 상제님은 명확하게 신명계가 존재함을 밝히셨고 인간 세계가 천상(天上)의 신명 세계와 연결된다는 가르침을 통해 그 과정을 암시해 주셨다. “교중(敎中)이나 가중(家中)에 분쟁이 일어나면 신정(神政)이 문란하여지나니 그것을 그대로 두면 세상에 큰 재앙이 이르게 되느니라”(행록 3장 8절)라는 말씀이 곧 그 가르침이다. 교중이나 가중과 같은 인간 세상의 분쟁이 신정, 즉 신명계 정사(政事)의 문란을 야기하고 이것이 세상의 재앙을 일으키니 인세와 신명계는 유기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이다. “사람들끼리의 싸움은 천상에서 선령신들 사이의 싸움을 일으키나니 천상 싸움이 끝난 뒤에 인간 싸움이 결정되나니라”(교법 1장 54절)는 말씀 또한 이를 잘 보여준다. 종합하여 본다면 원한이 천지의 기운을 막는 과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 『전경』에 비와 번개 같은 자연현상을 신명이 일으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구절이 있고(행록 3장 61절), 신(神)을 인간의 마음속에 드나들며 용사하는 존재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도(행록 3장 44절) 인간의 마음과 신명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그렇다면 상제님께서는 왜 한 사람의 원한으로도 천지의 기운이 막힌다고 하셨을까? 아마도 상제님께서 세상이 진멸지경에 이르게 된 시작점으로 한 인간의 원한을 지적하신 것과 관련 있을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예로부터 쌓인 원을 풀고 원에 인해서 생긴 모든 불상사를 없애고 영원한 평화를 이룩하는 공사를 행하리라.”고 선언하시며 “원(冤)의 역사의 첫 장인 요(堯)의 아들 단주(丹朱)의 원을 풀면 그로부터 수천 년 쌓인 원의 마디와 고가 풀리리라. 단주가 불초하다 하여 요가 순(舜)에게 두 딸을 주고 천하를 전하니 단주는 원을 품고 마침내 순을 창오(蒼梧)에서 붕(崩)케 하고 두 왕비를 소상강(瀟湘江)에 빠져 죽게 하였도다. 이로부터 원의 뿌리가 세상에 박히고 세대의 추이에 따라 원의 종자가 퍼지고 퍼져서 이제는 천지에 가득 차서 인간이 파멸하게 되었느니라.”고 말씀하셨다. (공사 3장 4절) 시작은 한 사람의 원이었지만, 그것이 퍼지고 천지를 가득 메워 인간을 파멸하게 할 수 있음을 알려주신 것이다. 이는 상제님께서 부친의 억울한 죽음에 복수코자 원한을 품었던 차경석에게 말씀해 주신 다음과 같은 가르침으로도 알 수 있다.
“이제 해원시대를 당하여 악을 선으로 갚아야 하나니 만일 너희들이 이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후천에 또다시 악의 씨를 뿌리게 되니 나를 좇으려거든 잘 생각하여라” (교법 3장 15절)
원한은 또 다른 원한을 낳는다. 악의 씨는 처음에는 작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라고 퍼져서 온 세상을 뒤덮을 수 있다. 상대방에게 척(慼)을 짓거나 누군가를 향해 원한을 품는 것이 상생의 도로 이루어진 후천(後天) 세상에 또 다른 악의 씨를 뿌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한 사람의 원한이 세상을 진멸시킬 수 있다는 상제님의 가르침을 이해한다면 척을 짓지 말고 나에게 생기는 원한의 감정을 풀어나가려는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면서 원한을 짓지 않는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나에게 생기는 원한의 감정을 풀어가는 것도 역시 어려운 일이다. 타인이 끼친 피해를 고스란히 내가 입어야 하는 상황에서 원한의 감정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할 때 한 사람의 원한으로 천지의 기운이 막힌다는 상제님의 가르침을 떠올릴 수 있다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다.
상제님께서 한 개인이 갖는 원한에 대해서 작지 않은 의미를 부여하신 것은 단순히 개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상생으로 이루어진 후천의 평화로운 세상을 위한 일이라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원한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파괴적이며 상극적인 기운이다. 원한의 기운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할 뿐만 아니라 천지의 기운을 막히게 하고 세상을 파멸로 이끌 수도 있다. 이러한 내용은 역설적으로 한 사람의 원한을 풀어나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보여준다. 남에게 척을 짓지 않고, 나에게 생기는 원망의 감정을 풀어나가려는 태도는 상제님께서 행하신 천지공사로 이루어질 후천 선경(仙境)에 동참하는 매우 중요한 일인 것이다. 교법 1장 31절의 말씀 속에서 우리는 천지와 연결된 한 사람의 노력이 세상을 아름답게 바꿀 수도 있다는 의미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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