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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무인(春無仁), 추무의(秋無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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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무부 작성일2020.06.15 조회3,59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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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을 읽다 보면 농사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는 구절을 접하게 된다. 농한기에 봇돌을 미리 파놓았던 농부의 일도 그렇고, 선술을 얻기 위해 머슴살이를 하며 10년간 진심갈력(盡心竭力)으로 농사한 머슴의 이야기도 그렇다.01 『전경』에 소개된 일화에는 농사가 여러 가지 소재로 등장하지만, 특히 다음 구절에는 농사를 소재로 믿음의 길에 대해 교훈하신 내용이 나타나 있다.

 

 

또 상제께서 “춘무인(春無仁)이면 추무의(秋無義)라. 농가에서 추수한 후에 곡식 종자를 남겨 두나니 이것은 오직 토지를 믿는 연고이니라. 그것이 곧 믿는 길이니라” 하셨도다.

(교법 2장 45절)

 

 

  위의 구절은 상제님께서 언제 어디서 하신 말씀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대부분 농사로 생계를 이어가던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추수한 후 곡식 종자를 남겨 두는 농부의 마음은 분명 종도들에게 피부로 와 닿는 비유로 느껴졌을 것이다. 이 구절은 토지를 믿고 곡식 종자를 남겨 두는 농부의 마음을 통해 올바른 믿음의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해 교훈하신 내용으로 이해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전반적인 내용과 더불어 ‘춘무인(春無仁)이면 추무의(秋無義)라’는 말씀에 대해서도 궁금증을 갖게 된다. 인(仁)과 의(義)라는 개념이 농사와 연결되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춘무인이면 추무의라’라는 말씀에 담긴 의미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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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무인이면 추무의라’는 구절은 일차적으로 ‘봄에 씨를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결실도 없다.’라는 맥락으로 이해된다. 인을 봄에 뿌릴 씨로, 의를 가을에 거둘 열매로 연결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인의 한자 의미에는 과실의 씨라는 뜻이 있어 복숭아씨를 ‘도인(桃仁)’으로 살구씨를 ‘행인(杏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또한, 의 자는 ‘올바르다’는 의미로 주로 사용되나 무엇인가를 ‘이루는 것’이라는 의미로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구절은 봄에 씨를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결실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보다 더 깊은 의미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인과 의는 인간이 실천해야 하는 윤리적 덕목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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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과 의라는 덕목은 유교의 전통 속에서 뿌리 깊게 이어져 온 핵심적 가치이다. 인의 개념이 윤리적 덕목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건 공자(孔子)의 사상을 통해서다. 공자는 처음으로 인을 인간이 추구해야 할 이상적 덕목으로 제시했고, 공자의 사상을 이어받은 맹자(孟子)는 인과 더불어 의를 강조하며 의로움의 정치를 피력했다. 이후 인과 의 개념은 한(漢)나라의 유학적 기반을 형성하며 천인감응론(天人感應論)02을 주장했던 동중서(董仲舒, 기원전179~기원전104)에 의해서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다. 그는 인·의·예·지·신의 5상(常)을 목·화·토·금·수의 5행(行) 기운과 춘·하·추·동에 계하(季夏: 늦여름)를 더한 5계절에 배속시켜 자연과 인간의 감응관계를 설명하고자 했다.03

  그리고 송(宋)대 주자(朱子, 1130~1200)에 이르러 이러한 천인감응론적 사고는 학문적인 위치로 발돋움하게 된다. 주자는 인간이 어떠한 존재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인간의 본성을 우주 만물의 이치와 연결시켜 규명해 나간다.04 여기서 그는 존재의 의미로부터 가치의 의미를 유추해 내는 학문적 체계를 세워서 인·의·예·지의 중요성을 드러낸다. 즉, 인성(人性)의 덕목으로서 인·의·예·지는 춘·하·추·동과 같은 자연법칙으로부터 윤리적 근거를 찾게 된 것이다.05

  춘·하·추·동으로부터 유추된 인·의·예·지는 자연히 그 속성 또한 사계절의 성격과 부합하는 모습을 지니게 된다. 주자는 인을 ‘천지생물지심(天地生物之心)’, 즉 천지가 만물을 생하게 하는 마음으로 설명하였다. 이것은 봄에 싹이 트고 움츠렸던 생명이 자라나기 시작하는 모습을 인의 가치에 투영시킨 것이다.06 그래서 인은 생명을 아끼는 호생(好生)의 마음과 따뜻한 자애의 마음으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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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이 봄의 속성과 연결되는 것처럼 의는 가을의 속성으로부터 나온 덕목이다. 이 때문에 의는 가을에 열매가 알곡이 되기도 하고, 쭉정이가 되어 떨어지기도 하는 것과 같이 결실을 구분 짓는 판단과 결정의 가치를 말하게 된다. 『전경』의 “의즉결단(義則決斷)”07이라는 말씀은 “의는 강단(剛斷)의 류이다”08라는 주자의 해석과도 연결된다. 단(斷)은 가르고 절단하는 것이다. 결단이나 강단 모두 일을 결정하고 처리하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이렇듯 인과 의라는 덕목은 계절의 속성과 상응하는 인간의 윤리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인과 의가 봄에 뿌릴 씨와 가을에 거둘 열매로 비유되는 것은 이처럼 인의(仁義)의 덕목이 계절적 속성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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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속성으로 인해 인과 의는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농부가 토지를 믿고 곡식 종자를 남겨 두는 것도 씨를 뿌리면 결실을 얻는 결과가 보증되기 때문이다. 주목할 부분은 인과적 논리로 보면 인의 의미에는 의라는 결과가 이미 내포되어 있다는 점이다. 다음은 주자가 인을 포괄적인 의미로 서술하고 있는 내용이다.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 중 왜 봄이 여름·가을·겨울 세 계절을 포함하는가? … 단지 봄의 기(氣)만이 온후하므로 이에 천지가 만물을 생하는 마음을 볼 따름이다. 여름이 되면 생기(生氣)가 자라고, 가을이 되면 생기가 거두어지며, 겨울이 되면 생기가 감추어진다. 만약 봄에 사물을 생하는 마음이 없으면 여름·가을·겨울 세 계절은 모두 아무것도 없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이것은 인이 의·예·지를 포함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09 

 

 

  주자는 봄이 여름과 가을, 겨울의 세 계절을 포함하는 이치가 인이 나머지 덕목을 모두 포괄하는 이치와 같다고 설명한다. 그는 사계절에서 봄이 지닌 중요성을 토대로 인을 윤리의 보편적 원리로 격상시킨다.10 결국, 인은 여러 가지 윤리 덕목 중 하나가 아니라, 인간이라면 마땅히 추구해야 할 보편적 윤리의 대표 개념이 된 것이다. 그리고 주자의 인에 대한 이해방식은 조선 시대의 성리학자들에게도 그대로 계승되었다.11 

  그렇다면 이러한 인의 개념이 우리의 수도생활에서는 어떤 의미로 이해될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하여 도전님께서는 인의 포괄적인 성격과 그 실천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밝혀주셨다.

 

 

인(仁)은 자애의 마음으로 인도(人道)의 원(元)이 되니, 항상 자애의 마음을 베풀어 나가면 믿음의 발판이 되어 인정(人情)이 두터워지고 화합·단결이 쉽게 이뤄져서 성경신(誠敬信)의 인간 본연으로 동귀하는 것이다.12 

 

 

  인의 마음이 인도의 근본이 된다는 말씀은 우리의 실천 수도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애의 마음이 시발점이 되어 인간 본연으로 함께 돌아간다는 말씀은 인의 마음이 근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과 의는 그 속성상 상대적인 덕목으로 여겨진다. 의라는 글자가 지닌 옳음의 의미에는 옳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판단과 결정의 속성이 있다. 이는 만물을 사랑하는 인의 속성과는 분명히 비교되는 것이다. 

  하지만 인도의 근본으로 이해되는 인은 의라는 덕목에 바탕이 되는 마음이다. 이것은 곧 인의 마음이 바탕이 되지 않으면 의라는 덕목도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정한 의로움은 인이라는 바탕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자애의 마음이 없는 영웅의 도략은 좋은 결과를 맺지 못하고 오히려 사람들을 괴롭게 만들 뿐이다.

  나아가 대순사상에 나타난 인의는 ‘해원상생’의 진리를 통해 그 의미가 더욱 확장된다. ‘해원상생’은 상대방과 맺힌 원을 풀고 서로를 잘되게 하는 윤리이다. 이것은 사랑과 옳음 같은 고정된 가치가 아니라 상대방과의 관계 속에서 풀어가는 윤리를 추구한다. 이 때문에 『전경』에는 일반적인 의미와는 차별성이 있는 인과 의에 대한 정의를 찾아볼 수 있다.

  인에 대해서 상제님께서는 “치우치게 사랑하고 치우치게 미워하지 않는 것을 인이라 한다”13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자애의 마음뿐만 아니라 상대방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해원상생’의 가치로서 인을 바라본 것이다. 인은 사랑의 덕목이지만 그것이 치우친 마음일 때 오히려 그 사랑은 상대방과 소통하지 못하는 왜곡된 사랑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 이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인의 마음은 치우침이 없는 상태로 규정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의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옳고 전적으로 그르다고 하지 않는 것을 의라고 한다”14라고 하셨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의는 일반적으로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판단과 결정의 의미로서 이해된다. 하지만 이 말씀에는 옳고 그름에 관한 객관적인 판단보다는 상대적인 가치에 대한 중요성이 드러나고 있다. 이것은 ‘해원상생’이 상호의 이해를 통해서 성립되기 때문이다. 가령 옳은 명분을 좇는 의로운 마음도 지나치면 일방적인 강요가 되어 상대로부터 척을 짓고 상극적 관계를 만들 수 있다.

  이처럼 인과 의는 ‘해원상생’의 윤리 속에서 더욱 생명력을 얻게 된다. ‘해원상생’에는 편향된 사랑의 마음도, 지나치게 옳고 그름을 따지는 분별의 마음도 들어있지 않다. 오직 남을 잘되게 하는 편벽되지 않은 마음이 있을 뿐이다. 결국, 우리에게 인과 의는 ‘해원상생’을 통해서 실천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상제님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수도에 힘쓴다. 우리에게 인의 씨앗은 수도의 과정에서 요구되는 윤리적 실천이며, 큰 의미에서 ‘해원상생’의 실천일 수 있다. 그리고 의라는 결실은 올바르고 참된 인간으로서의 완성인 도통일 수 있다. 인간 완성이라는 대의(大義)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세상에 인을 실천해야 한다. 인의 마음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 인간 완성을 기약할 수 없는 것이다. 상제님께서는 “인 자를 너희들에게 붙여 주노니 잘 지킬지어다”(공사 2장 4절)라고 하시며 인의 실천을 특별히 당부하셨다. 우리가 포덕을 하는 것도 인을 실천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상제님께서 세상의 잘못된 것들을 바로잡고, 인류를 널리 구제하기 위해 행하신 ‘광구천하(匡救天下)’와 ‘광제창생(廣濟蒼生)’의 큰 뜻은 대인(大仁)을 실천하는 우리의 포덕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농부가 가을 결실을 위해 봄에 열심히 씨를 뿌리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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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행록 4장 42절; 예시 83절 참고.

02 하늘과 인간이 서로 연결되어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는 이론이다. 군주가 실정(失政)을 하면 하늘이 천재지변을 내린다는 재이설(災異說) 또한 이와 관련된다.

03 김일권, 『동양 천문사상 하늘의 역사』 (서울: 예문서원, 2012), pp.81~84 참고.

04 안유경, 『성리학이란 무엇인가?』 (서울: 새문사, 2015), pp.177~178 참고.

05 『주자집(朱熹集)』, 「인설(仁說)」, “其運行焉, 則爲春夏秋冬之序, 而春生之氣無所不通, 故人之爲心, 其德亦有四, 曰仁義禮智, 而仁無不包.”

06 『주자어류(朱子語類)』 권6, 「性理3·仁義禮智等名義」, “理無跡, 不可見, 故於氣觀之. 要識仁之意思, 是一箇渾然溫和之氣, 其氣則天地陽春之氣, 其理則天地生物之心.”

07 제생 43절, “春夏秋冬秋爲義, 義則決斷也.”

08 『주자어류』 권20, 「論語2·學而上」, “仁則爲慈愛之類, 義則爲剛斷之類.”

09 『주자어류』 권20, 「論語2·學而上」, “如春夏秋冬, 須看他四時界限, 又卻看春如何包得三時. 四時之氣, 溫敘寒熱, 敘與寒旣不能生物, 夏氣又熱, 亦非生物之時. 惟春氣溫厚, 乃見天地生物之心. 到夏是生氣之長, 秋是生氣之斂, 冬是生氣之藏. 若春無生物之意, 後面三時都無了. 此仁所以包得義禮智也.”

10 정상봉, 「공존(共存)과 공감(共感)의 근거: 인(仁)」, 『한국 철학논집』 46 (한국철학사연구회, 2015), p.95 참고.

11 신정근, 『사람다움이란 무엇인가』 (파주: 글항아리, 2011), pp.55~58 참고.

12 「도전님 훈시」 (1986.9.2).

13 교법 3장 47절, “不受偏愛偏惡曰仁”

14 교법 3장 47절, “不受全是全非曰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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